이학권 목사 칼럼 [Diagnose, 진단하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행 2:38.
회개하여 = 종교에서 생명 살기로 돌이켜
세례를 받고 = 교회 (not 기독교 조직 but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어
죄사함을 받으라 = 단절된 삶을 끝내라
성령의 선물 = 하나님과 하나된 지체됨
사도 공동체 (초대교회로 부르나 기독교적 명칭으로, 성경적으로는 사도 공동체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 신약 성경이 기록된 시대)는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선명 하였다.
그것은 죄(단절)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하나됨을 회복 받는 것이었다. 즉 하나님과 하나됨을 선택한 자들의 고백과 공동체적 확증(세례)을 통해 그리스도 안의 한 몸이 되는 것이었다.
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선택으로 마치 결혼 서약 같은 것이다. 결혼 서약은 신랑과 신부가 하나됨을 선택하여 고백하고 예식을 통해 확증 한다. 이 하나님의 선택은 한 운명됨을 선택하는 것이다. 결혼하면 남편과 아내가 한 운명체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하나됨을 선택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한 운명이 되는 것이다 : 십자가의 운명을 사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고(자기 개인 운명이 아니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주님과 한 운명이 되어)을 따르는 것이다” 마 16:24.
자기 십자가는 고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나를 피우는 도전과 고난을 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자신을 메시아로 부르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 같이, 우리도 자기 십자가를 짐으로 나의 나 됨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 한 몸 됨, 한 운명 됨이 사도 공동체 시대가 지나고 콘스탄틴 기독교가 되면서 사라져 버렸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 증거하는 그리스도인(그리스도의 생명-운명을 사는 성도)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자기 운명을 더 낫게 복되게 하려는 기독교 종교인들이 나타났다.
사도 공동체의 ‘주는 그리스도시요‘하는 고백은 하나님과 하나님을 선택하는 고백이었지만, 콘스탄틴 기독교의 고백은 하나님을 믿어 좀 더 잘 살고 복 받겠다는 고백이었다.
물론 종교인들은 가능한한 하나님을 잘 믿고 의를 살고 선을 행하려 한다. 그러나 그 주체는 자기 자신으로 자기가 의롭고 복 받고 싶은 것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이 없다. 신앙은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삶에서, 생존의 이익과 복의 추구로 전락되었다. 하나님이 종교의 신, 수호신으로 전락 된 것이다.
즉 하나님과 하나 된 적이 없다. 잘 믿고 선하게 살려고 하지만 (주로 말과 생각으로만) 소속은 여전히 마귀가 통치하는 세상이고 삶은 생존일 뿐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아니다, 여전히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평생 기독교 생활을 나름 신실되게 하고도, 성화가 되지 않고, 하나님과 실제적 관계가 없으며, 임재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이다.
더 나아가서 기독교가 세상의 소망이 되지 못하고, 길과 진리와 생명을 증거 하지도 제시 하지도 못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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