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권 목사 칼럼 [Diagnose, 진단하다]

 

죄에 억눌린 삶은 생기를 빼앗겨, 생명을 알지 못하고 먹고 살기의 생존되어 허덕인다

1. 생명 피어남을 모른다. 생명은 아픔과 고난 속에서도 피어나는 기쁨이 있다, 힘들고 어려워도 자녀 양육에 보람을 느끼듯. 생명이 주는 열정과 인내를 상실한 생존은 천박한 욕심 부리기와 불안으로 찌들어 버렸다

2. 삶을 문제 해결로 전락 시켰다. 문제 없이 편한 것이 목표가 되어, 삶의 모든 것은 해결해야 되는 짐이 되었고, 현상의 문제는 돈으로 해결되니 돈이 나요, 삶이요, 신이 되어 버렸다. 어려운 도전에도 ‘나’로 극기하여 가치와 의미를 누리며 ‘나‘로 장성하는 것이 생명인데, 그저 살기에 급급 할 뿐이다

3 관계를 상실 했다. 모든 관계가 거래로 전락되어 계산 뿐 설레임의 감동은 없다. 희생과 헌신이 불가능하니 참 나도 참 너도 없다. 허상의 욕망만 어지럽고 생명의 익어감이 없다. 겉 조건과 상황 뿐 하나되고 함께하는 존재의 신비는 사라졌다

말씀은 죄의 권세를 깨고, 잃어버린 생명을 살리고 일깨운다

1. 마취된 가슴을 열고 아픈 진실을 고백 할 수 있다. ”나를 긍휼히 여겨 주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무기력, 조소적, 포기의 ‘다 그런거야’를 물리치고, 그렇지 않다고 생명은 여전히 아름답고 신비하기에 ‘새 삶‘을 구한다

2. 우리를 죽이는 ‘묻어버린 죄의식‘ 속에서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는다. “이스라엘 자손이 고통으로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출 2:23. 우리가 부르짖을 때 하나님의 가슴은 열리고, 막혔던 하늘과 땅은 다시 ‘통’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고백하고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긍휼이 열려 죄가 용서되고 다시 하나되는 위대한 이야기는, 선지적으로 시작되어 제사장적으로 마감된다

1. 출발은 선지적 즉 하나님의 진노이다. “내가 어찌 너를 용서 하겠느냐” 렘 5:7 “내가 어찌 벌하지 아니 하겠느냐” 렘 5:9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아시고 아픔으로 분노하셨다. 무의미한 것 같은 내 삶이 하나님 가슴에 소중함을 만난 것이다. “내가 책망 할 때마다 네 가슴이 찢어진다” 렘 31:20. 무가치한 것 같았던 내 자신이 하나님 보좌의 소중한 가치임을 만났고, 이 하나님의 눈물이 새 가능성을 여셨다

2. 해결은 제사장적, 즉 하나님의 품으심이다.  죄의 단절에서 하나됨은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현상 영역이 아니다. 제사는 현상의 행위 속에 본질을 담는 신비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길로의 제사를 통해 우리의 의식(ritual)에 하나님의 임재가 현현된다. 현상과 본질의 거룩하고 신비한 연합이 이루어지고, 죄의 단절은 새로운 하나됨으로 또 한번 새 출발을 받는다

제사에서 내 죄를 자기 가슴에 품어버리는 하나님, 돌아온 탕자를 아무 정죄 없이 기뻐하시는 아버지, 나의 조건과 상황이 아니라 내 존재를 사랑하시는 십자가를 만난다. 이 연합에서 진정한 나됨이 회복되고, 심령이 가난해져 아픈 이 땅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생명이 열린다

 

소금과 빛의 삶을 살기 원하며, 종교의 의를 넘어 참된 의를 살고,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려면 목이 메이고, 오른 뺨을 맞으면 왼편도 돌려대고,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를 위해 기도하며, 내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나도 온전하기를 전심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린다

 

우리는 결코 보상 할 수 없고, 흠 없는 제물도 없기에, 하나님 자신이 화목제물되신 품음에 안긴 연합에서 우리는 진정한 나를 만나고 ’생명‘을 회복 받는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히 10:22

이학권 목사 / <하나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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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사라진 말씀 8' 마감을 '선지적으로 시작되어 제사장적으로 마감된다' 부연 설명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A : 기독교는 입술로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면 죄사함 받고 구원 받는다고 합니다.

그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성경으로는 구원 받는 자는 먼저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만납니다. 그 진노는 미움이 아니라 사랑의 아픔입니다. 그 사랑으로 아픈 하나님의 가슴을 만나지 않은 자는 하나님과 하나로 연합 될 수 없습니다.

그 아픔을 만난 자는 십자가가 아픔으로 나를 용서하고 내 죄를 품는 사랑임을 만나 십자가를 받습니다. 그때로부터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과 하나 된 것을 가꾸고 더욱 하나되는 길로 삽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의 진노(선지적)로 출발되어, 우리를 위하여 자신이 제물되어 우리를 받으신 십자가의 제사(제사장적)에서 완성된 것입니다.

종교인은 하나님의 진노를 만나기는 커녕 피하고 입술로만 죄인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죄인됨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개념으로만 이해하지 결코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습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 자기 이익 중심이고, 끝까지 자기 에고로 삽니다.

위 내용은 어느 독자의 질문에 대한 답을 전체적으로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 재 편집한 내용입니다. - 편집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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