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권 목사 칼럼 [Diagnose, 진단하다]
말씀은 우리 안에 잠들어 버린 하나님의 형상, 사람다움 (I am)을 일깨우는 유일한 것이다.
세상이 진리라고 정하면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 안주된 세계 (settle world)에 지진을 일으킨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고 아는 대로만 들으려 하는 우리를 하나님의 새 세계로 내동댕이쳐 버리는 충격이 들어 있다. 애굽 궁중의 편하고 길들여진 삶을 광야에 내던지는 회오리 바람이다.
혁명의 꿈으로 두근거리는 가슴, 감추어진 신비를 일깨워 누리는 환희, 절대가 아닌 것이 절대된 속박에서 자유한 노래와 춤, 유일한 절대인 용서와 사랑과 긍휼을 신뢰하여, 진리를 따르는 생명의 용기를 피워낸다.
거짓 기득권이 깨어지고 평등이 강물처럼 넘치는 한나와 마리아의 노래, 모든 것 사자와 어린양까지도 하나되는 이사야의 꿈, 영적 성전에서 하나님의 풍요가 흘러 온 땅이 생명으로 충만해지는 에스겔의 환상, 무엇보다도 단절과 죽음이 끝나고 만물이 하나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나사렛 예수의 꿈이 열리게 한다.
너무 오랫동안 전락되었고 (reduced) 하찮아졌고 (trivialized) 세상 살기로 길들여졌다 (domesticated).
말씀을 말씀으로 받기엔 너무 부담스럽고 말도 안되고 시간도 없고 삶은 힘드니까. 말씀을 부인 하지는 않지만 삶으로 살기에는 너무 지나친 부담과, 실제로 받기에는 말도 안되는 충격이니까. 6일 동안 하나님이 실제가 아닌 삶을 살며 소비와 드라마와 술과 돈의 위로로 살든 우리에게 불가능한 새로움이니까
말씀을 말씀으로 증거하면 사람들이 떠나니까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 좋아하지 않으니까 (예수님의 유대 사역) 사람들이 듣기 즐겁고 받기 좋고 심지어 수준 높은 문화인처럼 느끼게 해주는 설교 entertainment가 되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사람을 모으는 것이니까. 그러고도 불경하게 복음을 증거 한다며 세례요한과 나사렛 예수를 모욕한다.
결과적으로 말씀은 그 위험성을 상실해 버리고, 우리에게 잘 맞추어 안주시킨 종교 이바구가 되고 말았다.
도깨비 방망이 : 기복 신앙
문제 해결책 : 긍정적 사고 등 싸구려 심리학
교리 정당화의 도구 : 보수, 근본주의
사회 정치 이론 : 진보, 자유주의
기독교 교세 확장 도구 : 복음 주의
무엇을 해야 되는 것도, 무엇을 할 필요도 없다. 말씀이 말씀대로만 전달되면 말씀이 운행 역사 하시며 스스로 ‘좋았더라’를 피운다.
말씀은 증명할 필요도 없고, 그 마력을 불러내려는 요상스러운 종교 짓거리를 할 필요도 없다. 성경을 잘 모르고 많은 오해를 가지고 있어도 사람의 영혼은 여전히 말씀에 목말라 하고, 말씀을 만나고 그 음성을 듣고 싶어 한다 : 우리 영혼은 아직도 다음의 것들을 목말라 한다.
1 주저함 없는 하나님 중심적 선언 (shamelessly theological) : 모든 분야에서 거짓 권세가 어지러운 세상에서, 우리의 영혼은 여전히 진정한 권세를 그리워하고 있다.
2 노골적인 진리성 (candidly kerygmatic) : 정작 진실은 말할 수 없고 돌려서 말하고 감추는 세상에 던져지는 하나님의 돌직구를 우리는 은근히 기다리고 있다.
3 순진스런 종말성 (naïvely eschatological) : 끝을 외면하고 영원할 것처럼 헛된 권세를 부리고 부끄러운 자랑을 천박하게 휘두르는 세상에서 우리는 선과 의의 진정한 승리를 바라고 있다.
겉사람의 취향 맞추기에 급급한 종교는 결코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이기적이고 계산적이고 천박한 것 같아도 그 영혼 속에는 아름답고 싶고, 사랑을 갈망하고, 진리를 살고 싶은, 폐할수 없는 영혼의 갈망이 아직 빛나고 있다.
이학권 목사 / <하나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