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권 목사 칼럼 [Diagnose, 진단하다]

 

이학권 목사 

주일 아침은 이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시간이다.

모든 것을 물질화 시켜 (돈으로 환산) 사람마저 도구로 전락되어, 살수록 왜소해지고 무력해져 허무만 가중시키며 사람을 억누르는 세상에 지진이 일어나는 시간이다.

그렇게 짓눌린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생명의 존귀함을 노래하며 모이는 시간, 왜소해진 사람들이 기도하며 함께하는 시간, 소망 사라진 세상에서 하늘의 꿈을 바라보며 절망을 거부하는 믿음의 시간이다.

전쟁이 터지고 환경이 파괴되고 인신매매와 부정부패가 극성을 부리고 힘이 전부인, 혼동과 공허와 흑암의 세상에 하나님의 ‘좋았더라‘가 동터오는 시간이다. 모든 것이 단절 된 세상에서 십자가의 하나됨을 선포하는 시간이다.

 

Reduced 세상 속에서 reduced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자부심이 회복 된다. 평면으로 flattened되고 인격성 (wholeness)을 빼앗긴 사람들의 가슴에 저항의 불꽃이 피어난다. 공식화 획일화로 개인의 존엄성을 말살시킨 세상에 생명의 quantum leap가 일어나 생명의 기상이 드높아진다.

말씀이 피워내는 영광스러운 전환을 보라!

1  Human Nakedness (적나라한 인간)

돈, 성공, 힘에 억눌리고 정죄되어 Nobody되고, 세상의 Thou shall로 죄책감에 짓눌려, 나뭇잎 치마 만들어 가리기에 급급하고 종교의 탈 쓰고 보이기 뿐인(마 6:1) 무기력한 삶이 나로 당당히 하나님께 나아간다. 

죄, 악, 거짓을 고백하며 감춤 없이 가림 없이 하나님의 긍휼을 의뢰하여 나를 용서하고 나를 용납한다. 부족한 모습대로지만 정직한 나를 살기에 내가 자라난다. ‘가려라, 보여라‘ 마귀의 거짓이 물러가고 아버지 앞에 용납 받은 내가 너를 너로 용납하여 우리가 된다.

아버지의 긍휼로 ‘나‘로 살기에 당당해져, 마귀의 거짓과 위선에서 자유해진다

2  애굽 궁정을 떠나 광야로 나아간다

세상의 계산과 거래로 야생성(wildness)을 잃어버린 가슴이 뜨거워 진다. 이것 저것에 제한되어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아니든 삶에 생기가 솟아난다. 애굽 궁정의 편함과 기름짐을 뒤로하고 광야로 나가는 가슴에는 산 생명의 꿈이 빛난다.

다시는 길들여 질(domesticated) 수 없다. 생명의 야생성이 38년된 병자를 일으켜 자기 자리를 들고 걸어가게 한다. 현실 도피가 끝나고 아픔도 직면하는 생명 기상이 푸르러진다.

3  로마 한 복판 (Pax Romana)에서 꿈꾸는 새 왕국

완벽하게 체계화되고 통제된 조직 속에서 수상스러운 이야기가 피어나고, 생명의 자유를 노래한다. 선 의 사랑을 살고 싶은 생명의 본성을 가꾸며, 물질과 힘이 아니라 나눔과 섬김으로 인격을 성숙시켜, 성화되는 영광을 산다.

분명히 땅을 사는 삶이 하늘과 ‘통’하여,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생명의 본래’ (nature of life)의 ‘통‘이 열려 단절이 끝나고 하나된 축제가 열린다.

말씀으로 열리는 진실, 야성, 꿈의 핵융합이다

이념 설득, 진영 논리, 도덕 교훈, 교리 해설, 문제 해결책, 속풀이 유머로 전락된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는 불경은 끝나야 한다. ‘말씀의 전달’이 회복되어, 인간의 조리 기술로 전락된 설교의 잃어버린 ‘선지성‘ (prophetic)을 세워야 한다.

우리가 만들고 안주해 온 세계의 deadness를 고발하고, 빼앗지 않으면 빼앗김 밖에 없는 삶의 평면성을 깨고, 무한 입체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본질세계가 증거되어 눈의 비늘이 벗겨지고 가슴마다 뜨거운 불꽃이 피어나야 한다.

예배는 모든 것 이 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혼에 울려퍼지는 생명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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