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권 목사 칼럼 [Diagnose, 진단하다]
“우리가 원시 기독교 (사도 공동체)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는 제도들은 대게 중세에 속한 것이다” 에드윈 해치 (영국 신학자)
지금 기독교의 세례(또는 침례)는 예수님과 사도 공동체의 세례와는 전혀 다르다
대게 회심 후에 일정 기간의 교육을 받은 후 문답에 합격하면 세례를 받는다. 그러나 사도 공동체 때에는 믿는 즉시 세례를 받았다.
행 2:37-41 ‘어찌할꼬’ 후 즉시 8:12 사마리아 사람들 복음 받고 즉시 8:27-38 에디오피아 내시 깨달은 즉시 9:18 바울의 눈에 비늘이 벗어 진 즉시 10:44-48 고넬료와 온 집안과 모인 사람들이 말씀을 받은 즉시 16:14-15 루디아와 온 가족이 말씀을 받은 즉시 16:31-33 빌립보 간수와 온 가족이 믿은 즉시 18:8 회당장 그리스보와 온 집안이 믿은 즉시 19:1-5 에베소 성도들이 말씀 받은 즉시 22:16 주님을 만난 후 즉시(바울의 간증)
뿐만 아니라 세례 받음 = 구원 받음이었다
막 16:16 믿고 세례 받음 = 구원 받음
행 2:38 JC이름으로 세례 받음 = 죄사함 받음
22:16 주이름 불러 세례 받음 = 죄씻음 받음
벧전 3:21 물 = 너희를 구원하는 표 = 세례
다시 말하면 지금 기독교의 세례는 종교 입문 의식이다. 삶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대부분 삶은 바꾸지 않고 종교적 교리 제도 법을 배워서 그것을 존중하는 조직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반면 사도 공동체의 세례는 개념적 종교 이해와는 전혀 상관 없이 삶의 방식을 바꾼 것이다. 두 세 가정이 주님의 이름으로 임재 안에 모여서 서로를 존중하는 하늘 가족의 삶을 사는 것이었다. 세상의 조건과 구분을 넘어 그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사랑) 하나됨을 사는 것이었다. 세례 받으면 그 하나됨으로 들어와 한 지체가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창조 안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 서로의 조건을 넘어서 존재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의 선명한 예가 혈육의 가족이다.
혈육의 가족이 온전치 못해도 그래도 서로를 가족임만으로 용납하고 존중 한다. 그래서 현상 세계의 가장 강력한 것이 가족이다. 모든 조직 제도, 심지어 제국도 무너지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무너지지 않는 것이 가족이다.
사도 공동체의 믿음은 모든 세상적 구분과 차별을 넘어 그 조건에 상관 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형상의 존귀함을 품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다
갈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사람이 강해질 때는 하나 될 때이다. 부부가, 친구가, 동네가, 나라가 하나 될 때마다 초월적 힘을 발휘한다. 불과 한 세기 안에 로마를 뒤집은 사도 공동체의 강력이 바로 이 하나됨에서 피어난 것이다.
기독교는 개인 구원이다. 신앙을 고백한 사람만 구원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그럴듯한 평면 진리이다. 사람은 ‘함께’라는 입체가 없이 개인이 될 수 없다. 성경적으로 개인은 공동체 안의 개인이요, 우리 안의 나이다
성경적 회심이 가족적인 것이 바로 그 이유다. 행 10: 44-48 고넬료와 온 가족이 함께 구원 받았으며 16: 14-15 루디아 와 온 가족이 30-33 빌립보 간수와 온 가족이 18:8 회당장 그리스보와 온 가족이 구원을 받았다
세례가 종교 의식인 이상 삶이 전환되는 생명 구원, 즉 하나님의 가족됨, 그리스도의 몸이 됨은 결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