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권 목사 칼럼 [Diagnose, 진단하다]

 

기독교의 핵은 성직자 (개신교는 목사 가톨릭은 신부) 이다. 목사나 신부가 없는 교회나 성당은 상상이 안된다

불행하게도 성경에는 성직자가 없다. 한글 번역에 목사들 또는 감독자들로 번역된 poimen은 단 3번 밖에 나오지 않는다 (행 20:28 벧전 5: 2-3 엡 4:11) 모두 복수로 나오는 성도들의 섬김이지 개인적 직책이 아니다.제사장 priest 역시 3번 나오는데 (계 1:6 5:10 20:6) 모두 성도들을 지칭 한다

사도 공동체의 장로들 presbyters은 ’어른들‘ 이었고, 감독들 overseers은 bishop이 아니라 ‘두루 섬기는이들’ 이었고, 집사들 deacons은 ‘섬김이들’ 이었다. 그들은 특별한 훈련을 받지도 특별한 복장을 입지도 특별한 용어나 상징을 쓰지도 특별한 행동 방식을 하지도 않았다

2세기까지 교회에는 지도자가 있었지만 직책이 아니었고 지도력이 있었지만 계급이 아니었다. 

사도 공동체의 폭발적 에너지는 처절한 계단식 제국 안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임재 안에 모였기 때문에 어떤 구분도 차별도 없이, 사람임 만으로 그 존재를 대접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말 2:10이 이루어져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8가 되었다

사람의 갈망이 나의 조건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그 존재 자체의 존엄성으로 대접 받는 것이다. 인류 역사 어느 곳 어느 시대에도 없던 역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사도 공동체 안에도 순회 사역자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머무르지 않으며 운영에 관계하지 않고 오직 말씀과 기도의 사역이었다

사도 공동체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 본래의 정신이 희석되기 시작했다.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Ignatius는 감독을 세움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그는 순교하러 로마로 잡혀 가면서 7개의 편지를 썼는데 그중 6개는 “감독을 주님으로 여기라, 감독을 하나님의 분신으로 여기라“는 당부였다

그 외에도 카르타고의 시프리안 Cyprian은 제사장 성전 재단 희생제도 등의 구약 제도의 부활을 주장했다

이러한 혼란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사람이 콘스탄틴 황제이다. 콘스탄틴는 감독들에게 특권을 부여하므로 제국 통치에 이용하였다. 니케아 공의회 후에는 감독을 죄를 사할 수 있는 대제사장으로 선포하고, 감독 > 장로그룹 > 집사그룹 > 평신도들의 피라미드 체계를 기독교 안에 세웠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는 하나님이 임명한 사람을 통해야 한다”고 감독의 절대권을 세우고 제국과 기독교는 함께 손잡고 공교한 조직이 되었다

5세기에는 만인 제사장의 위대한 성경 선포는 사라지고, 성직은 제국의 후원을 받으며 돈과 지위가 보장되는 성공의 상징이 되자 그 특별성을 위하여 독신제도 등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윌 듀란트 Durant (대표적 교회사가)는 “기독교는 이교 신앙과 의식을 흡수하고, 로마의 조직을 물려 받아 승자의 조직이 되었다. 그리스 철학과 여기저기서 흡수한 종교의 혼합물이 기독교를 만들었다” (Caesar and Christ p618)

콘스탄틴은 사제들에게 제국의 귀족과 같은 위치를 주고 면세 혜택을 주고 고위 관리의 복장을 입게 했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80년대 후의 한국 기독교처럼)

 

이제 기독교는 박해 받으며 세상을 회심 시키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 기독교를 회심시켜, 신앙은 잘 먹고 잘 살고 출세 성공의 길이되고 그런 간증들이 홍수처럼 넘쳐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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