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의 여정말씀 앞에서의 시간은 바다를 건너온 긴 여정 같았습니다.열일곱 개의 질문은 작은 파도처럼 제 삶을 흔들었고,그 파도는 잠든 침묵을 깨우며 길을 열었습니다.요나는 제 안의 또 다른 얼굴이었고,그를 마주할 때마다 삶의 결이 드러났습니다.처음은 도망이었습니다.멀리 달아나고 싶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그러나 달아남조차 하나님의 추적이었고,그 추적이 결국 제 구원이었음을 요나는 가르쳐 주었습니다.그 다음은 회피와 분노였습니다.나의 옳음을 붙잡느라 하나님의 자비를 놓칠 때,요나는 제 어두운 거울이 되었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묻고
왜 아끼는가? (요나 4:10-11)“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길러낸 것도 아니한 박넝쿨을 내가 아꼈거늘, 하물며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는 이 큰 성읍 니느웨를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풀 한포기의 무게태양은 가차 없었다. 바람은 사막의 숨결처럼 뜨겁게 불어왔다. 요나는 고개를 떨군 채, 시들어버린 박넝쿨 자리에 앉아 있었다. 줄기는 꺾였고, 잎은 말라 떨어졌다.그러나 그 적막이, 요나에게는 더 큰 설득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 풀을 아꼈다. 그것이 살아 있었을 때 자신
왜 흔들리는가? (요나 4:6-9)"여호와 하나님이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갈가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임으로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라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옳으냐
왜 기대하지 않는가? (요나 4:5b)"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멈춘 자리, 꺼지지 않는 기대아직 오지 않은 일이 우리를 멈추게 한다. 기억의 날짜도 알 수 없는데, 그것은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는다. 오래된 장면이 먼지처럼 흩날리다 어느 날 불현듯 다시 떠오른다.우리는 알지 못한 채 무언가를 품고 살아간다. 무너지기를 바랐던 기억, 끝내 놓지 못한 장면. 지나간 것 같지만, 때때로 되살아나 눈앞에 선다.요나처럼, 우리도 그런 기대를 안고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스스로 엮은 초막 속에
왜 구경만 하는가? (요나 4: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결혼한 직후, 집이 없었다. 가난이 우리를 갈라놓았다. 그 시절, 새벽 기도 중 한 할머니가 다가와 오래 비어 있던 집이 있다며 원하느냐고 물었다. 군산 외곽, 회현이라는 동네였다.수십 년 빈집, 기울고 허물어진 집이었지만 내겐 선물이었다. 벽지를 바르고, 장판을 깔고, 화장실을 팠다. 세월이 흘러 자녀들과 다시 찾은 그 집은, 30년 전의 허름함 그대
왜 성내는가? (요나 4: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욘 4:4) 의분과 분노 사이분노는 천천히 다가오다, 한순간 번개처럼 번진다. 사랑이 무너지고, 믿음이 꺾이며, 정의가 외면당한 자리를 파고든다. 잿빛 폐허 위, 꺼진 줄 알았던 불씨가 다시 살아난다.하나님은 요나에게 물으셨다.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꾸짖음이 아닌 멈춤이었다. 감정의 뿌리를 묻는 질문이었다.[1] 이 물음은 오늘 우리에게도 온다. 무심히 쌓인 분노를 헤집으며, 오래 덮어둔 기억과 상처, 이름 없는 감정을 끌어올린다. 그
왜 나는 정당해야만 하나? (요나 4:2-3)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욘 4:2-3) 억울함이 부른 기도요나는 기도했다. 그러나 그 말은 기도가 아니었다. 속 깊이 눌러 둔 억울함이 문
왜 다시 제자리인가? (요나 4: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광장의 끝에서회개의 광장 끝에 단 한 사람이 남아 있었다.모두가 울고 웃으며 서로를 껴안을 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환호가 파도처럼 번졌고, 감격이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지만, 그는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모두가 살아남은 거리에서, 그는 외로웠다. 마치 회개의 광장 끝에 남겨진 낡은 조각상처럼, 그의 존재는 그곳에 있었지만, 누구의 시선에도 닿지 않았다.광장의 중심에서 환호가 퍼질 때, 그는 그 자리에서 밀려났다.사람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며 웃는 순간, 그는
왜 변화되어야 하는가? (요나 3:1-10) 요나서는 마치 데칼코마니 같다. 종이에 물감을 떨어뜨리고 접었다 펴면, 예상치 못한 무늬가 거울처럼 마주 보며 펼쳐진다. 요나서의 구조도 그렇다. 1-2장과 3-4장은 서로를 비추며 반복된다.[1]첫 번째 요나는 다시스로 도망쳤다(욘 1:3). 두 번째 요나는 니느웨로 향했다(욘 3:3). 처음 말씀을 들었을 때 그는 뒷걸음쳤지만(욘 1:1-3), 세 번째는 그 말씀을 따라 앞으로 걸었다(욘 3:1-3). 처음의 요나는 폭풍과 바다의 위협 속에 있었지만(욘 1:4-16), 두 번째의 요나
왜 사는가? (요나 2: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1]모래 위에 쓰인 질문모래 위로 파도가 밀려든다. 지워졌다가 다시 떠오르는 것들, 그게 그 질문의 모양이다. 삶이 한 줄씩 다시 써 내려지는 그 모래 위에, 물음 하나가 남는다. 왜 사는가 해가 막 떠오른 해변처럼, 대답은 멀리 있었고 삶은 젖은 채 기다렸다. 요나는 다시 육지에 서 있었다. 사흘 밤, 어둠의 뱃속을 지나 도달한 빛이었다. 모래 위에서 제 발로 서는 일, 신비다. 손끝에는 아직 짠물이, 옷자락에는 비린내가 들러붙어 있다.
왜 은혜인가? (요나 2:2-9) 어떤 말은 들려오기 전에 먼저 다가온다. 은혜라는 말이 그렇다. 손 내민 적 없는데 먼저 와 닿고, 구하지 않았는데 스며드는 따뜻함. 요즘 나는 그 말 하나에 기댄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 간 이식이 난관에 부딪힌 다음날이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은 나를, 더 깊은 바닥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생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사이렌 소리와 함께 밤을 깨우며 우리는 국립암센터로 달려갔다.불과 하루 전, 간 이식을 주려던 희망이 무너진 그 벽은 그날 새벽엔 바닥 축에도 끼지 못했다. 아직도 중환자실 안에
왜 바닥인가? (요나 1:17–2:1¹) 요나는 바다에 던져졌다. 그의 몸이 가라앉는 그곳에서, 태초의 혼돈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² 빛과 소리가 사라진 그곳에서, 그는 살아 있는 모든 것과 단절되었다. 산의 뿌리 아래, 땅의 빗장이 닫힌 곳. 단순한 침몰이 아니라 버림받는 존재로의 추락이었다.예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로부터의 단절을 절규하셨다. 요나처럼, 철저한 버림의 순간이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 15:34). 바닥은 철저한 단절의 자리였다.요나는 죽음 안에서야 단절의 진의를 깨달았다. 하나님을 떠났던 자
왜 나는 희생해야 하나? (요나 1:11-16) 밤은 칼날처럼 내려앉았다. 물살은 성난 짐승처럼 뒤척였고, 배는 곧 허물어질 듯 신음했다. 선원들의 눈동자만이 언어였다. 정적은 팽팽했고, 물살도 숨을 참았다. 그 틈을 가르며 누군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11절) 요나의 눈빛은 바다처럼 출렁였다. 격랑의 무게가 뼛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는 입술을 열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12절) 그 말은 물처럼 흘렀고, 돌처럼 가라앉았다. 선원들은 물결의 등을 밀치며 끝까지 버텼
왜 그것이 딜레마인가? (요나 1:10) 요나는 속을 찌르는 바늘처럼 서 있었다. 미세한 떨림이 몸을 휘감았다. 아무도 다가서지 않았다. 선원들은 신의 이름을 흩뿌리며 짐을 던졌다. 짐들은 물 아래로 사라졌고, 절망은 말없이 번져갔다. 요나의 침묵과 선원들의 혼란 사이, 바다는 어딘가 기이하게 잠잠했지만, 그것은 진실이 드러나기 직전의 정적이었다. 그때, 세상을 찢듯, 질문 하나가 떨어졌다."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하였느냐." (요나 1:10)제비는 요나를 겨누었다. 요나는 알았다. 이 풍랑이, 이 어둠이, 이 무너짐이, 자신의 것임
요나는 도망쳤고, 하나님은 추적하셨다.《요나서로 묻는 17개의 질문》은 요나에게 던진 하나님의 물음을 오늘의 우리 삶으로 다시 불러낸다. “왜 피하는가, 왜 자려느냐, 왜 성내는가…” 이 연재는 도망치는 나, 그리고 끝까지 따라오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될 것이다. - 조원태 목사 -왜 그것이 우선인가? (요나 1:7-9) 바다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 순간은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제비가 던져지는 순간, 시간은 멈춘 듯했다. 바다는 여전히 요나를 향해 흔들리고 있었고, 요나의 중심도 함께 흔들렸다. 말이 없던 자, 끝내
요나는 도망쳤고, 하나님은 추적하셨다.《요나서로 묻는 17개의 질문》은 요나에게 던진 하나님의 물음을 오늘의 우리 삶으로 다시 불러낸다. “왜 피하는가, 왜 자려느냐, 왜 성내는가…” 이 연재는 도망치는 나, 그리고 끝까지 따라오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될 것이다. - 조원태 목사 - 왜 자려느냐? (요나 1:5-6) 그날 바다는 조용했다. 해면 아래로 묻힌 오래된 고백처럼, 파도도 바람도, 죄의식도 숨을 죽이고 있었다. 배 밑칸, 그 빛조차 닿지 않는 저층의 어둠. "요나는 배 밑층으로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든지라"(요나 1:5
요나는 도망쳤고, 하나님은 추적하셨다.《요나서로 묻는 17개의 질문》은 요나에게 던진 하나님의 물음을 오늘의 우리 삶으로 다시 불러낸다. “왜 피하는가, 왜 자려느냐, 왜 성내는가…” 이 연재는 도망치는 나, 그리고 끝까지 따라오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될 것이다. - 조원태 목사 -왜 막으시나? (요나 1:4) 그날 바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숨을 죽이고 있었다. 욥바의 낡은 항구는 긴 꿈에서 막 깨어난 사람처럼 나른했고, 출항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부드럽고 평온했다. 바다는 천천히 숨을 쉬듯, 숨을 들이마
연재를 시작하며글은 바다를 닮았습니다.한 글자 한 글자가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밀려나고, 그 밀려남과 밀려듦 사이로 어떤 이야기는 떠오르고, 어떤 침묵은 가라앉습니다.밀물과 썰물처럼 출렁이는 말들이 항구에서 여객선을 타고, 물고기 뱃속을 지나, 어느 도시의 골목까지 우리 안의 이야기를 데려왔습니다. 그건 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삭임이었습니다. 그 중심에 요나가 있었습니다. 작년 여름, 뉴욕주 북쪽 호숫가.파도가 잠든 물가에 자리한 실버베이 YMCA의 낡은 책상에서 요나서를 읽었습니다 물비늘처럼 반짝이는 구절 하나가 내 안의 침묵을
요나는 도망쳤고, 하나님은 추적하셨다.《요나서로 묻는 17개의 질문》은 요나에게 던진 하나님의 물음을 오늘의 우리 삶으로 다시 불러낸다. “왜 피하는가, 왜 자려느냐, 왜 성내는가…” 이 연재는 도망치는 나, 그리고 끝까지 따라오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될 것이다. - 조원태 목사 -왜 피하는가? (요나 1:1–3)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욥바 항구. 한 남자가 숨 가쁘게 배에 올라탄다. 선창가에 길게 늘어선 밧줄들과 비릿한 내음 사이로, 그는 등을 돌린 채 서 있다. 이름은 요나. 이스라엘의 예언자, 하나님의 사람 요나였다.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