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 사상의 핵심이자 결론은 귀일(歸一) 속에 있다. 귀일, 그 말은 하나에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 ‘하나’가 뭔지를 묻고 찾고자 지금껏 여러 말을 해왔다. 여기서 귀일은 통일과 많이 다르다. 상호 다른 것을 원만하게 조정하는 것이 통일이다. 이 과정에서 타협과 대충, 속임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귀일은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온통 하나’가 되는 길이다. 근원으로 돌아갈 때 남북도 하나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현상적으로 다양한 종교들 역시 귀일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서구 종교다원주의와 다석 사상이 같을 수 없는 이유이다.
평소 다석의 글을 읽으면서 큰 물음이 생겼다. 불교, 유교의 경전을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기독교를 풀이하고 죽음과 부활의 뜻을 펼쳤던 다석 이었지만 정작 동학, 천도교에 대한 그의 언급을 찾을 수 없었던 탓이다. 간혹 말씀이 있었으나 긍정적이기 보다 오히려 부정적 톤이 강했다. 이점은 그의 제자 함석헌에게서도 예외 없이 그대로 이어졌다. 심지어 폄하하는 내용까지 찾을 수 있다. 한글을 천문이라 말하며 그 뜻을 가르쳤으나 최초로 한글 경전을 갖고 시작된 동학을 낯설게 느낀 이유가 많이 궁금했다.평소 필자는 동학과 다석 사상은 같은 뿌리
다석은 1959년도 11월 경 를 통해 독일의 신비 영성가 마이스터 에카르트를 두 차례나 연거푸 다루었다. ’없이 계신‘ 하느님을 인간의 바탈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평소 지론을 신(Gott)과 신성(Gottheit)을 구분하고 자신을 찾는 것이 하느님을 아는 것이라는 서구 신비사상 속에서 확인했던 까닭이다. 필자 역시 이 점에 공감하며 이런 구조 속에서 양자를 비교 성찰할 의욕을 느낀다. 하지만 논리적 구조에서만이 아니라 누구 게나 주어진 바탈로서의 ’얼‘이 삶을 통해 구체화되는- 길을 가다 길이 되라- 白死千難(백
지난 장에서 우리는 견물생심에 반하는 ‘見物不可生’(견물불가생), 물건을 보고도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상태를 논했다. 욕망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현실과 맞서는 주체적 인간태도를 다석의 말로 표현한 것이다. 주지하듯 홀로세 말기의 지구생태계가 자본주의 폐해로 기후붕괴시대에 접어들었다. 물건에 마음이 홀려 인류가 욕망 덩어리로 살 경우 2050년 거주 불가능한 지구가 될 것이란 경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자연의 질적 파괴가 임계점을 넘어선 탓이다.이런 난제를 해결키 위해 기독교 내부에서 여러 형태의 생태신학이 등장했다. 우주적 그리스도론
다석의 인간론을 쓰려하니 이미 앞에서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기독교에서 기독론- 예수이해 –이 인간 문제 해결을 위한 궁극적인 상수였던 까닭이다. 하지만 다석의 경우 인간을 예수에 종속시키지 않았다. 기독론을 유일무이한 절대적 교리로 여기지 않은 결과였다. 예수처럼 인간도 ‘빈탕(없이 있음)’의 독생자로 여겼을 뿐이다. 이웃 종교들도 하늘로부터 받을 것은 모두 다 받았다 했으니 기독교든 불교든 인간 이해에 있어 종교 간 차이도 없다.지난 세월 형성된 서구 기독교의 두 유형, 가톨릭과 개신교의 두 신학원리들- 존
다석의 하느님 이해 –없이 계신 이- 가 서구사고에서 낯설 듯이 그의 예수론 또한 전통적 서구신학의 틀에서 많이 빗겨나 있다. 죄를 위해 대신 죽었다는 서구 기독교의 핵심교리인 대속론을 전혀 달리 해석했던 까닭이다. 이는 인간이 탄생 시부터 죄를 품었다는 원죄론에 대한 부정과 맥을 같이 한다.최근 서구에서 적극 논의 되는 바, 원죄보다는 원은총(Original biessing)을 강조하는 편이다. 물론 다석도 인간 죄성을 인정했다. 인간 몸의 속성(기질)과 연관된 貪嗔痴(탐진치) 즉 욕심내고, 분노하고 치정에 얽힌 인간 삶의 실상을
이번 글에서는 다석의 하느님 이해, 곧 그의 신관을 살펴보겠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다석은 '있음'보다 '없음'을, 빛보다는 어둠을 우선시했다. 많은 저녁(밤)을 뜻하는 다석이란 이름 속에 이런 의미가 담겼다. 이는 서구 기독교나 그쪽 철학 사상과 견줄 때 대단히 낯설다. 하지만 다석은 이를 대립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없이 있는 하느님’이란 말이 적시하듯 없음과 있음은 결코 양자택일적이지 않다. ‘없음이 곧 있음'이고 ‘빛이 곧 어둠’이란 것은 서구 논리들, 동일률이나 배중률로는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이를 적시하는 다석의 예를
지난 호에서 말했듯이 다석은 한글을 ‘천문(天文)’, 곧 ‘하늘의 소리’라 하였다. 이것은 백성을 가르치는 소리, 훈민이라 언급했던 창제자 세종의 감각을 뛰어넘는 한글 이해라 할 것이다. 최근 한글을 자국어로 택한 소수민족도 있다고 들었다. 최근 BTS의 인기에 힘입어 세계인들이 한글 가사로 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으니 한글이 한류의 핵심이 될 미래를 기대해 본다. 감신대를 은퇴한 구약학자 방석종은 몇몇 음역 표기를 보충할 경우 한글이 세계 공용문자로 사용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한글이 사람을 하늘로 부르는 소리라면 그 뜻과 소리
이번 호에는 다석에게 영향을 주었던 동시대 사상가 및 사조들에 대해 언급을 할 것이다. 앞선 글에서 다석의 영향사를 에 이르기까지 종적 차원에서 설명했다면 여기서는 다소 시차는 있지만 횡적 관계망 속에서 다석 사상을 조망할 생각이다. 아무리 천재적인 사상가라 할지라도 시대의 영향 없이 홀로 우뚝 설 수는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다석 유영모에게 직간접적인 큰 영향을 주었던 사상가들을 재차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신채호, 여준, 레오 톨스토이, 간디 그리고 우찌무라 간조 등. 이들 영향력이 날줄 씨줄로 엮이면서 다
몇 차례에 걸쳐 지에 다석 유영모(1890-1981)에 관한 글을 쓰게 되었다. 지면을 허락하신 관계자분들께 감사하며 방대한 다석 사상의 핵심을 간추려 전달코자 노력할 것이다. 이번 첫 글에서는 다석을 ‘다석’ 되게 했던 그의 사상적 배경을 살피고 필자가 다석을 연구하는 이유에 대해서 정리하겠다. 그간 필자는 고 김흥호 선생과 함께 펴낸 을 비롯하여 ,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