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뜻덕소교회 김영숙 사모, 2025 목회자 멘토링 컨퍼런스에서 사모 이야기 나눠
시카고에서 열린 ‘2025 목회자 멘토링 컨퍼런스’에서 높은뜻덕소교회 김영숙 사모는 사모로 걸어온 길을 담담히 풀어놓으며, 현장에 모인 사모들과 목회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공감을 전했다. 그의 이야기는 간증을 넘어, 한 사모가 지나온 상처와 회복, 고독과 동행의 시간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고백이었다.
강의는 신학대학에 진학했던 이유를 솔직히 나누는 것으로 시작됐다. 김 사모는 “처음부터 목회를 계획하고 신학교에 가려 했던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독교 교육을 전공한 이유는 그저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역을 “조금 더 멋지게, 조금 더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1985년 당시 신학교의 분위기는 그에게 낯설고 부담스러웠다.
“깃털 달린 코트를 걸치고 ‘성스러운 표정’을 하고 다니던 신학생들 사이에서, 나는 저들과 다르다는 거리감이 컸습니다.”
그에게 전환점이 된 것은 지금의 남편 오대식 목사와의 만남이었다. 친구의 소개로 만난 그는 “비누 향기가 날 것 같은 사람”이었고, 신학교에서 봐온 ‘거룩한 이미지’와 전혀 달랐다. 무엇보다 “사역하다 힘들면 내 옆으로 와서 기대도 되고, 울어도 된다”는 한 문장이 결혼을 결심하게 만들었다.
신대원 2학년 때 결혼한 그는 곧바로 현실적인 사역의 한복판에 섰다. 전도사였던 남편은 청년들을 집으로 자주 데려왔고,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라면·떡볶이·김밥·맛탕을 만들어 나누는 일이 자연스러운 사역이 되었다.
“그때 알았어요. 같이 먹어야 마음이 열린다는 것을. 밥을 함께 나누면 복음이 자연스레 스며듭니다.”
그러나 사모의 삶은 따뜻한 순간들로만 채워지지 않았다. 청년들이 남편을 중심으로 모이고 따르는 모습을 보며, 그는 점점 ‘혼자인 사람’이 되어갔다.
“남편이 있는데 없는 것 같은 삶이었어요. 나는 왜 늘 뒤에 있어야 하는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깊어졌습니다.”
전환은 뜻밖의 순간에 찾아왔다. 동경신학대학에서 유학 중이던 남편의 절친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며, 그가 시작하던 한인교회를 이어 달라는 요청이 온 것이다. 남편의 오래된 선교 서원 때문에 부부는 일본으로 향했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언어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린 자녀를 데리고 선 일본은 낯설고 차가웠다. 교회에 모인 이들은 유학생도 있지만 상처가 깊은 이들이 많았고, 그들의 분노와 하소연은 대부분 사모에게 향했다.
“어떤 집사님은 ‘사모님 역할 중 하나는 단단한 쓰레기통이 되는 겁니다’라고 했어요. 잔인한 말 같았지만 정확한 말이었습니다.”
밤 11시, 12시에 걸려오는 전화는 대부분 “오 목사 바꿔 달라”는 요청이었다. 남편을 대신해 전화를 받고, 만나고, 새벽까지 상담을 이어가는 날들이 많았다.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갔고, 우울은 깊어졌다.
“‘내가 없어지면 이 모든 관계에서 빠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극단적인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그때 남편은 그의 상태를 알아채고, 기독교상담 과정을 함께 공부하자고 제안했다. 매주 네 시간씩 학교로 향하는 길은 “겨우 숨을 쉬는 시간”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남편이 교인의 편이 아니라 ‘내 편’으로 나를 바라봐준다고 느꼈습니다. 그 시간이 제게 회복의 시작이었습니다.”
일본에서 5년을 섬긴 뒤 한국으로 돌아온 부부는 김동호 목사와 팀목회를 동안교회·높은뜻숭의교회 등 다양한 사역의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배웠다. 마지막으로 분리개척을 선택해 현재의 높은뜻덕소교회 사역을 이어가게 됐다.
한국에서 대형교회 사역을 경험하며 그는 또 다른 어려움과 마주했다.
“교인이 3천 명이 넘는 대형교회에서 사역하며, 장례식에 가는데 함께 울어야 할 분의 이름과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제 자신을 보았어요. 그때 이 자리는 우리 자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경험은 그의 삶과 사역을 돌아보게 했고, 사모로서의 정체성과 부르심에 대해 깊은 성찰을 남겼다. 결국 부부는 교회의 규모보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선택했고, 지금은 분리개척한 높은뜻덕소교회에서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강의 후반부에서 김 사모는 사모의 역할을 샌드백과 캔버스에 비유했다.
“사모는 맞아주고 버티고 되튀겨 내보내야 하는 샌드백의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편과 자녀, 성도들의 사랑과 기대가 그려지는 캔버스 같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사모들이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을 읽고,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취미를 가지며, “한 달에 한 번 나만을 위한 4시간”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 건물만 성전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도 성전이라는 사실을 저는 너무 늦게야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강의 후 이어진 나눔 시간에서 공통된 고백은 하나였다. “사모의 길이 눈물과 상처로 가득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영광의 길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번 강의를 통해 김영숙 사모는 다음 세대 사모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여러분이 저희 세대처럼 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상처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목사님과 성도 사이의 틈을 메워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 길이 힘들어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함께 걸어가십니다. 무엇보다 여러분은 먼저 ‘하나님의 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