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권 목사 칼럼 [Diagnose, 진단하다]

 

말씀이 사라진 결과는 순종의 소멸이다. 말씀을 받는 자도, 말씀을 사는 자도 없어진 종교의 비극이다.

순종은 하나님의 복이 성육되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할 유일한 것이 순종이다. (the only human business)

순종에서 만물은 복되고 조화로워지며, 삶은 안식과 평강을 누리며 생명으로 장성하며,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운행 역사하시면 피어나는 ‘좋았더라 좋았더라 심히 좋았더라‘이다.

순종은 우리의 눈물겨운 노력이 아니라 사랑에 사로잡힌 영혼의 기쁜 자원함이다. 인간의 영혼은 사랑의 음성을 기다린다 (yearn to be addressed) 사랑의 목자 음성을, 양은 듣고 즐거이 따르는 것이다.

말씀이 보장 (guarantee)으로 전락되어 ‘지켜드리면 내 원함이 채워지는‘ 욕망 충족의 기제가 되고, 비난 (censure)으로 전락되어 ‘왜 안지켜 혼날래’가 되고 말았다. 말씀은 유효성 잃은 구식 (old fashion)이고, 고압적 (heavy hand)이고, 시대의 뒤떨어져 (outmoded) 삶과 상관성을 상실했다.

말씀은 어렵게 만든 내 세계에 대한 부정과 거부가 되고,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구름 잡기가 되어 순종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말씀의 선포에서 3가지가 선명하게 계시 될 때에 순종은 기쁜 자원함이 된다

1.  옛 세계를 깨어버리는 새 세계의 위험하고도 모험적인 개입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오셔서 생명으로 죽음을 이기심으로, 죽음의 권세에 사로잡힌 세상 (세상의 최고형은 사형)을 자유케 하셨다.

이제 우리는 죽음을 향해 산다. 죽음을 피하려고 온갓 현상적 기제 (돈 힘 소유 등)를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서 완성되는 내 존재, 내 인격, 내 삶의 가치를 위해 살게 되었다.

내 생명 가치를 세우는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길을 따르게 되었다.

2.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려 여신 새 세계의 도래를 바라 본다. 이리와 어린양, 사자와 살진 짐승, 어린 아이와 독사가 함께해도 해됨도 상함도 없는 모두가 하나님을 ‘야다‘하는 세계를 바라본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님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다스릴 나라를 가슴에 품고 향하므로, 세상에서 자유하여 하나님 안에 완성 될 나를 피우고 가꾼다.

3.  가장 중요하게 현재 우리의 삶은 약속의 완성인 하나님의 개입 (초림)과 섭리의 완성 (재림) 사이에 있음을 본다.

욕망을 채우는 현상의 허무와 영원한 가치를 가꾸는 생명의 영광이 선명해 진다. 우리를 죽음에서 건지신 하나님의 개입을 기뻐하며 (celebrate intervention) 임할 완전한 새로운 세계를 소망 한다 (awaits transformation)

순종은 선악과적 설득 (정죄) 강압적 강요 (저주)로 일어나지 않으며, 위의 3가지의 ‘봄‘이 열릴 때 가슴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이학권 목사 / <하나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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