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의 역사는 무엇보다도 하나되게 하심이다.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은 제도 조직 이념 등으로 하나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유기적 조화이다.그래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성경은 몸의 하나됨으로 표현한다 (고전12:12-27 ‘몸’19회) 더 이상 더 적절함을 찾을 수 없는 완벽한 표현이다. 말 한마디 하는데 우리의 650개 근육 중 72개를 움직이지만 하나도 의식하지 않고 몸의 자율적인 조화로 이루어진다. 우리 몸의 신묘막측함이 하나님의 신비이다 (몸=우주)이러한 신비로운 하나됨을, 성령님은 단절되어 성격도 기질도 성향도 다른 개체들
오늘은 금지된 이야기 지옥을 나누어 보자. 1 성경적으로는 이 세상이 지옥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왕이 사탄이라고 했다 요12:31 14:30 16:11 고후 4:4 엡 2:2. 또한 이 세상은 주님의 나라가 아니라고 했고 요18:36. 사탄 자신도 이 세상은 자기가 통치하고 있다고 했다 눅4:62 구약에서는 ‘스올‘로 66회 ‘아바돈’ 11회 신약에서는 ’아부쏘스’ 9회 ‘하데스‘ 11회 ’타르타루스‘ 2회 ‘게에나’ 12회로 다양하게 표현되었으며 예수님은 ‘게에나’로 쓰셨다. 이 모든 이름은 한마디로 죽음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
구원을 어떻게 받는지에 대하여서 주님께서는 단 한번 아주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씀 하셨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리라” 마7:21. 구원 받음에 대한 다른 말씀들은 다 이 말씀의 주석에 불과하다기독교가 아주 좋아하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말씀에서 마7:21을 빼버렸기 때문에 믿는다고 ‘생각‘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로 전락되고 말았다. 기독교의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의 실제는 믿음으로 살기를 희망하지만 육신이 연약하여 돈으로 산다는 뜻이다. 이 왜곡의 불행은,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것은
성경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계시록 (구약:다니엘서 신약:요한 계시록)은 박해 기간에 기록 되었으므로 직접적으로 표현 할 수 없어서 상징을 이용해서 적혔다. 그래서 해석이 까다롭지만 어려운 내용은 아니다. 오히려 상징을 통해 진리를 단순하게 표현한 책이다계시록은 종말의 현상을 묘사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3년 반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나고 7년 후에는 무엇이 이루어진다 등 하는 것은 성경 계시의 원리를 모르는 왜곡이다성경은 현상 진행을 미리 알려 주는 점술책이 아니라, 겉으로 보이고 흐르는 이 현상 속에 감추어진 본질을 계시하
성경적 삶의 원리는 경자유전이다. 농토는 농사짓는 이의 것이다. 농지가 자본화 되는 것과 소작 제도를 금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은 인간 소유의 대상이 아니며 사용하는 자가 누리도록 베푸신 은혜이다.이 원리의 능력이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 예가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이다. 한국은 1949 제헌헌법을 제정할 때에 이 원리를 채택하였다.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국유화 시킨 토지들과 미 군정에 귀속된 토지들을 농민들에게 돌려주는 토지개혁을 한 것이다그러나 베트남은 지주들의 반대와 정치 부패로 토지개혁을 하지 못하
행 2: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 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행 2:31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 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위의 말씀은 오순절 성령 강림 후에 베드로의 말씀 증거의 핵심으로 ‘음부에 버리지 않는다’ ‘썩음을 당하지 않는다‘가 반복 된다먼저 음부에 버리지 않는다는 뜻을 보자. 음부는 구약에서는 스올, 신약에서는 하데스로 나오는 죽음의 세계이다. 모든 사람은
창세기 1장에는 좋았더라 (토우브)가 7번 나와 완전하게 선한 (good) 하나님의 창조를 보여 준다. 이 토우브가 2장에서 18절에 다시 나오는데, 18절 전에 4번 형용사적 용법으로 나오며 선언적 용법으로 다시 나오는 것은 18절이다이 여덟 번째 선언은 부정적으로 “로우 토우브 not good” 이다. 무엇을 좋지 않다 (배드) 선언하느냐 하면, 히브리어 배드는 악 (evil)의 개념으로 단절, 분열, 부분적 즉 whole이 아님을 뜻한다하나님께 악은 단절이며 선은 하나됨이다그래서 성경의 회복 (구원)은 단절의 회복 즉 하나됨이
창세기 1, 2장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주를 창조 하셨는가 하는 물리적 생물학적 설명이 아니다. 어떻게 라는 명제는 지극히 근대적 개념으로 성경이 계시되던 시대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진화론과 싸우는 창조론은 인간이 하나님의 권위를 세워 주겠다는, 우상숭배적 어리석음이다창세기 1, 2장은 인간론이다. 온세계 역사를 향해서 인간의 본 모습과 참 가치를 선포함으로, 우리의 인간답지 못함에서 진정한 사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으로 돌이키게 하는 것이다 (눈치가 있는 사람이면 그 진정한 사람의 모델과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창세기 창조는 1:1-2:3과 2:4-25 두개의 기사로 나타난다첫 번째 기사는 우주의 창조로, 핵심은 사람의 창조 (26-31절) 이다. 예를 들면 14-19절은 별들의 창조가 나오는데 해와 달을 해와 달이라고 하지 않고 greater light and less greater light 이라고 복잡하게 표현 한다그 당시 해 달 별은 전부 신이었다. 태양은 이집트신, 달은 바벨론신, 별들은 가나안 국가들의 신이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들은 신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창조하신 크고 작은 빛‘에 불과하다는 것이다사람 창조의
하나님과 사람의 핵심적 차이는 먹음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께 먹음은 삶과 존재의 중심인데, 사람은 그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혀끝 만족 시키고 에너지 확보와 이익 관계 만들기 정도로 생각한다사람은 맛나고 기름진 것을 배터지게 먹는 것을 잘 먹는다라고 하고, 하나님은 한조각의 빵을 사랑으로 나누어 먹는 ‘일용할 양식의 먹음’을 잘 먹는다 하신다움직이지 못하는 식물 광물 세계와 달리, 동물의 세계는 공간 사용이 존재의 근간이다. 그리고 인격적 존재인 우리의 공간 사용의 중심은 식탁이다동물 세계도 같이 먹음이 있지만 그 ‘함께 먹음‘이 생
“우리가 원시 기독교 (사도 공동체)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는 제도들은 대게 중세에 속한 것이다” 에드윈 해치 (영국 신학자)지금 기독교의 세례(또는 침례)는 예수님과 사도 공동체의 세례와는 전혀 다르다대게 회심 후에 일정 기간의 교육을 받은 후 문답에 합격하면 세례를 받는다. 그러나 사도 공동체 때에는 믿는 즉시 세례를 받았다.행 2:37-41 ‘어찌할꼬’ 후 즉시 8:12 사마리아 사람들 복음 받고 즉시 8:27-38 에디오피아 내시 깨달은 즉시 9:18 바울의 눈에 비늘이 벗어 진 즉시 10:44-48 고넬료와 온 집안과 모인
기독교의 핵은 성직자 (개신교는 목사 가톨릭은 신부) 이다. 목사나 신부가 없는 교회나 성당은 상상이 안된다불행하게도 성경에는 성직자가 없다. 한글 번역에 목사들 또는 감독자들로 번역된 poimen은 단 3번 밖에 나오지 않는다 (행 20:28 벧전 5: 2-3 엡 4:11) 모두 복수로 나오는 성도들의 섬김이지 개인적 직책이 아니다.제사장 priest 역시 3번 나오는데 (계 1:6 5:10 20:6) 모두 성도들을 지칭 한다사도 공동체의 장로들 presbyters은 ’어른들‘ 이었고, 감독들 overseers은 bishop이 아
콘스탄틴 기독교는 설교의 제국이요, 설교는 그 중심이다. 놀라운 것은 설교를 듣고 이해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중심이다. 삶은 없고 교리의 오묘한 이해에 빠져서, 설교를 잘하는데를 찾아 파리떼 처럼 몰린다그러나 설교는 구약에도 신약에도 없으며, 어떤 선지자도 예수님도 사도도 설교한 적이 없다. 설교는 정기적으로 같은 설교자가 같은 수동적 청중에게 연설의 형식으로 가르치는 것이다.성경의 말씀은 선지자 예수님 사도 등 누가 전했던지, 계시가 필요한 삶의 상황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다. 말씀을 전하는 자는 전달자로써 저들에
종교의 핵심 문제는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호 6:3 6 사 1: 2-3 마 9:13 12:7). 성경의 하나님은 숭배 받기를 원하지 않을 뿐 아니라 숭배를 증오 하신다 (사 1: 11-17 66: 3-4)모든 신들은 숭배 받기를 좋아하고 숭배를 통해 숭배자들에게 복을 준다 (이것으로 그들은 참 신이 아님이 증명 되었다)성경의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 I am I am 이 시다. 숭배는 숭배자들이 숭배 대상의 가치를 확증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치 확증이 필요하지 않으시다. 하나님은 이 온 우주 영원에서 존재의 담보를 필요로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국교화 하자 제일 먼저 만들어진 것이 예배이다. 기독교가 국교가 되자 당시 90% 이상이던 이방 종교들은 기독교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강제는 아니었지만 제도적 보호, 세금 면제, 성직의 특별 지위 인정 등의 이익을 위하여 대다수가 전환 했다.성경과 사도 공동체의 신앙을 모르는 그들이 한 것은 자기들 신전에서 신상을 떼어내고 십자가를 세우고 신전 마당에는 자기 신의 동상 대신 마리아상을 세웠다. 그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신전 제사 의식을 예배로 바꾸었다.집에서 몇몇 가정이 모여 말씀과 찬송과 기도를 나누며 (고전
종교와 신앙이 같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지금 기독교의 핵심 문제는 종교를 신앙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종교는 주술, 주문, 마법, 비기 등을 통하여 나보다 큰 힘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공식 종교(?)가 되면 교리, 공적 제의, 종교적 전통이나 관습을 통하여 공적 신(?)의 도움을 받는다. (믿거나 말거나)신앙은 인격을 성숙시킨다. 성경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위임받아 사랑으로 만물을 다스리는 섭리의 중심이다. 이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는 핵심은 인격 성숙이다.성경의 독특성은 인격의 성숙이 도 닦기, 비
디오클레시안은 노예에서 황제에 까지 오른 강력한 황제로써 가장 강력한 박해를 하였다. 모든 성경은 소각하고, 모임을 가진 집은 파괴하고, 지도자는 사형을 시키고 303 칙령을 통해 모든 사람은 로마신의 제의에 참석해야 하며 어길 경우에는 사형이나 강제 노역에 처하는 조직적 박해를 했다디오클레시안 황제가 퇴위하면서 콘스탄틴의 아버지 콘스탄티우스는 콘스탄틴의 어머니 헬레나를 버리고 서방 황제인 맥시미아누스의 딸과 결혼하여 서부 황제가 되었다 (당시 로마는 동서 두 황제와 4명의 부황제 체제)그 아버지가 사망하고 콘스탄틴은 306 서부
콘스탄틴 기독교라 하면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화 시킨 이후의 기독교를 말하는 것이다. 교회사에서는 제국 교회(Imperial Church)라고 하지만 그것은 바르지 않다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해서만 세워진다. 하지만 기독교는 사람에 의해서 세워진 종교이다. 그러므로 콘스탄틴의 의해서 세워진 로마 제국의 국교로써의 기독교는 종교이지 결코 교회가 아니다무엇보다도 콘스탄틴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그는 태양신을 숭배 했다. 그래서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이전 했을 때, 성 소피아 성당 광장에 주님의 모습을 넣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행 2:38.회개하여 = 종교에서 생명 살기로 돌이켜세례를 받고 = 교회 (not 기독교 조직 but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어죄사함을 받으라 = 단절된 삶을 끝내라성령의 선물 = 하나님과 하나된 지체됨사도 공동체 (초대교회로 부르나 기독교적 명칭으로, 성경적으로는 사도 공동체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 신약 성경이 기록된 시대)는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선명 하였다.그것은 죄(단절)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하나됨을 회복
죄에 억눌린 삶은 생기를 빼앗겨, 생명을 알지 못하고 먹고 살기의 생존되어 허덕인다1. 생명 피어남을 모른다. 생명은 아픔과 고난 속에서도 피어나는 기쁨이 있다, 힘들고 어려워도 자녀 양육에 보람을 느끼듯. 생명이 주는 열정과 인내를 상실한 생존은 천박한 욕심 부리기와 불안으로 찌들어 버렸다2. 삶을 문제 해결로 전락 시켰다. 문제 없이 편한 것이 목표가 되어, 삶의 모든 것은 해결해야 되는 짐이 되었고, 현상의 문제는 돈으로 해결되니 돈이 나요, 삶이요, 신이 되어 버렸다. 어려운 도전에도 ‘나’로 극기하여 가치와 의미를 누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