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권 목사 칼럼 [Diagnose, 진단하다]

 

구원을 어떻게 받는지에 대하여서 주님께서는 단 한번 아주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씀 하셨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리라” 마7:21. 구원 받음에 대한 다른 말씀들은 다 이 말씀의 주석에 불과하다

기독교가 아주 좋아하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말씀에서 마7:21을 빼버렸기 때문에 믿는다고 ‘생각‘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로 전락되고 말았다. 

기독교의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의 실제는 믿음으로 살기를 희망하지만 육신이 연약하여 돈으로 산다는 뜻이다. 이 왜곡의 불행은,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되고만 것이다. 만약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주님은 살 수 없는 헛된 말씀을 하신 어처구니가 되고 만다.

주님이 어처구인지 기독교가 어처구니인지 살펴보자

주님께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리라 하신 말씀이 산상수훈의 결론부분 말씀이다

산상수훈은 마태복음 5-7장으로 5장 인간론 6 장 인생론 7장 종말론으로 되어 있다. 5장 인간론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현현시키는 존재이다, 그래서 결론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다 마5:48 

6장 인생론은 삶은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 꿈을 꾸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이 너희는 먼저 하늘 나라와 하늘의 의를 구하라는 것이다 마6:33

7장 종말론은 사람은 생애를 살고난 후에 그 열매를 따라 나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썩지 아니하는 열매(가치와 의미)를 맺은 사람과 에고의 욕망을 살아 썩는 열매(사람에게 보이기)를 맺은 자가 ‘영원히‘ 나뉜다는 것이다

창3장 후에 본질을 상실하고 사람에게 보이려고 (마6:1) 나뭇잎 치마 (창3:7) 만들기하는 허무한 삶 (전1:2)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나님 형상을 살라는 것이다. 돈의 종노릇하는 삶에서 돌이켜 다스림(나됨의 주체성)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이 삶은 혈육으로 세상을 사는 (돈의 권세 아래 사는) 자에게는 불가능하므로 종교가 만들어졌다. 종교는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길 수 있다고 주님을 어처구니로 만들었다.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삶은 윤리적 의미 이전에 존재의 새 차원을 말하는 것이다. 높은 윤리를 살라는 것이 아니라 새 차원 (하나됨)을 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형상 (3위1체적 하나됨)을 사는 자는 거듭난 것이고, 하나됨을 살지 않는 자는 거듭나지 않은 것이다, 종교 행위로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이 하나된 새 차원의 중심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신6:5, 요14:21. 사랑하면 알고 닮고 싶고, 무엇보다도 하나되고 싶다. 하나님의 성품과 섭리를 알고자 묵상하며, 하나님을 좋아하고 따르고 같이하고 싶어진다. 생명의 가장 아름다운 복이다.

불행하게도 종교에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잘해 드리고 하나님 비위를 맞춰드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하고,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일에 관심은 ‘나’ 뿐이다.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대단하나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두 마음을 품어 허무만 거두는 불행한 사람들이다. 하나됨이 없이 영원히 단절된 한 알 그대로의 저주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초월의 비밀은 아픔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만남으로 가슴이 깨어진다. 사랑하지 못해 깨어진 아픈 가슴에 사랑이 피어나는 신비를 피운다. 사랑과 아픔은 정비례 하여 사랑하는 만큼 아프고 아픈 만큼 사랑하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과 하나됨이며, 하나됨의 길은 사랑이며, 사랑은 아픔이다. 종교는 하나님으로 의롭고, 구원을 확신하고, 자기만 옳지만 결코 아파하지 않는다, 종교의 아픔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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