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권 목사 칼럼 [Diagnose, 진단하다]
성경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계시록 (구약:다니엘서 신약:요한 계시록)은 박해 기간에 기록 되었으므로 직접적으로 표현 할 수 없어서 상징을 이용해서 적혔다. 그래서 해석이 까다롭지만 어려운 내용은 아니다. 오히려 상징을 통해 진리를 단순하게 표현한 책이다
계시록은 종말의 현상을 묘사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3년 반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나고 7년 후에는 무엇이 이루어진다 등 하는 것은 성경 계시의 원리를 모르는 왜곡이다
성경은 현상 진행을 미리 알려 주는 점술책이 아니라, 겉으로 보이고 흐르는 이 현상 속에 감추어진 본질을 계시하는 것이다. 역사의 평면만 보면 불공평하고 선과 의가 없는 것 같지만, 그 본질의 깊이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섭리가 흐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선과 의를 살면서, 그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구함으로 살기에 종말적 삶이 된다
1 성경의 종말론은 실현된 종말론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약속하신 종말이 시작된 것이다. “말세에 (하 에스카타스 헤메라 : the last days)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의 부어주리니” 행2:17. 성령께서 오신 것은 계시가 완성 된 것으로 더 이상 계시의 진전은 없고, 완성된 계시를 받는 자와 배척하는자로 나뉨이 출발 된 것이다
지금은 심판의 시간이다. 우리 하루 하루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든지, 세상을 믿든지로 나누어 지고 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3:18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종교 단체 속하여 종교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요14:23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 마7:21. 선과 의가 왜곡 되고 불의가 넘치는 세상에서 오직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하기에 그리스도를 믿어 그 의를 사는 것이다.
2 모든 시한부 재림설은 오류요 이단적이다
성경의 시간은 본질의 시간으로 현상적 시간으로 환산 되지 않는다. 열매가 무르익는 것은 여러 가지 요소가 입체적으로 조화된 생명 성숙의 때인데, 이를 현상의 평면적 시간으로 정해서 몇월 몇일에 열매가 무르익는다 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계시록의 표현은 종말에 어떤 현상이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를 적지 않고 (현상을 미리 알리는 점술이 아니고) 역사의 마감을 본질적 면에서 계시함으로 차원의 나뉨을 증거 한다
거짓과 진실은 같은 차원의 다른 면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것이다. 본질은 전체 (whole) 이므로 거짓이 있을 수 없다. 거짓이 있을 수 있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부분적인) 평면세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거짓은 껍질의 1차원이요 진리는 무한 차원의 입체이다.
현상 세계에서는 진리가 깊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거짓과 진리를 분별하는 일이 쉽지 않아, 가라지를 뽑으려다 알곡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종말이 완성 될 때 즉 현상 역사가 끝나면 진리는 더 이상 감추어지지 않고 완전한 본체를 드러내고, 깊이 없는 거짓 현상은 소멸됨으로 영원히 나뉜다
이때 현상은 소멸 되지만 거짓을 만들어 온 의식은 그대로 있다. 예수님은 이것을 영원히 ‘한 알 그대로‘라고 표현 하셨다. 영원히 피지않은 생명 씨앗이다.
한국 기독교가 좋아하는 휴거는 성경에 없으며, 비성경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조잡한 이야기다. 종말은 그런 현상적 분리가 아니라, 본질의 완성으로 영원한 실재의 현현이다
3 건강한 재림 신앙은 하루하루를 종말로 사는 것이다
선생님이 자습을 시키고 나갔다 오시는데, 선생님이 언제 올지만 신경쓰는 학생은 불량하다. 선량한 학생이라면 선생님이 언제 오시든지 자신은 자신이 할 일에 충실 할 뿐이다
본질의 시간은 현상의 시간으로 환산되지 않음으로 “그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24:36.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의 가슴을 현상적으로 환원시 시켜 자기 옳음의 도구로 삼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자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