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권 목사 칼럼 [Diagnose, 진단하다]

 

고레스(Cyrus) bc590-529 는 안샨이라는 메대의 작은 속국의 왕이었다. 559년에 바사, 549년에 메대, 547년에 리디아를 539년에 바 벨론을, 이어서 중앙아시아를 정복하였다. 그야말로 빛의속도로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의 왕이되고 페르시아 제국의 건국자가 되었다 (자료 : 대영박물관 52관의 Cyrus Cylinder)

성경은 이 고레스를 메시아(사 45:1) 하나님의 목자(사 44:28)라 하신다. 중요한 것은 고레스는 여호와와도 모르고 야훼 종교를 섬기는 자도 아니다. 즉 메시아와 하나님의 목자는 종교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종교와 아무 상관이 없는 자를 이스라엘의 메시아라 선포하신 것이다

고레스의 가족은 제국의 싸움 통에 고향을 탈출하여 안샨의 이민자가 되어 자라났고, 그 소국의 왕이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고레스가 본 삶은 처참한 것이었다. 제국에 정복 당하면 재산을 빼앗기고 노예가 되고 가족 조차도 헤어지는 짐승보다 못한 삶이 되는 것이 앗수르와 바벨론 제국의 삶이었다

그가 본 것은 한가지, 사람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정복하는 지역의 모든 백성에게 자유를 선포하고(종교적 자유 포함) 군대의 약탈을 금지하고, 노예를 금지시켰다. 노동자의 임금을 보장하고, 자치를 허용하고 도와 주었으며, 각 민족의 고유성을 존중하였다. 그 결과로 70년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이 이루어졌다

BC 538 제국 안의 모든 포로로 잡혀 온 노예를 해방하고, 그동안에 받지 못한 임금을 지불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자는 귀향을 도와 주었다. 그가 정복한 나라들의 절반도 그가 직접 가지 않았으며, 정복한 나라들의 절반은 스스로 문을 열고 환영하였다

그리스 역사가 제노폰은 “ 피정복자와 주민들을 존중하고 그들을 친자식처럼 돌보며 백성들은 아버지 처럼 경외했다“라고 기록했다. 헤로도토스 크세노폰 마키아벨리는 “진정한 자질로 군주가 된 왕” 즉 무력의 정복이 아니라 백성의 마음을 얻은 지도자라고 적고 있다

마 8장에는 하인의 고통을 안타까워하여 예수님께 나온 백부장이 있다. 당시 하인은 노예인데 노예의 아픔을 공감하여, 자신이 예수님께 나와 그의 치유를 간구하는 마음을 보고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 하였다”하셨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고넬료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외적조건 종교 국적 등)를 보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다”라고 하였다

고레스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과 백부장에 대한 주님의 선언과 베드로의 선언 속에 흐르는 중심은 ‘구원은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로운 삶으로 오는 것이며, 그 삶은 이 땅을 아파 하시는 하나님의 가슴을 받은 가슴에서 피어나는 것이다‘이다

종교인들은 죄인된 사람은 의롭게 살 수 없다는 망언으로 선과 의를 살지 않음을 정당화한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참조하시고 다스림의 권세를 위임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죄를 지은 후에도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라고 하셨다

죄는 단절이고 의는 하나됨이다 (엡 2:11-22) 의의 출발은 너의 아픔에 공감(empathy)하는 것이다. 고레스의 공감, 가버나움 백부장의 공감, 고넬료의 공감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역사는 피어났다. 하늘과 땅의 통이 열렸다(마 16:19 18:18)

예수님은 “나는 긍휼을 원하고 제사(종교)를 원하지 않노라” 하는 호 6:6을 2번 인용하셔서 갈릴리 사역의 두 기둥으로 세우셨다 (마 9:13 12:7)

교회는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는 한 몸이다. 기독교가 교회라고 부르는 것은 교회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사람다운 삶을 사는 사람이 되기위해서 이다. 간판만 교회가 아니라 인격이 교회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가슴과 공감이 아니라, 세상의 욕망에 삶겨진 기독교 회복의 출발은 먼저 말씀과의 공감이다. 말씀의 문자가 아니라 말씀의 영(고후 3:6) 즉 말씀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가슴을 느끼는 것이 출발이다. 사람에게 맞추어 인기끄는 설교가 아니라,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하나님의 음성만을 전달하는 선지물결이 일어나야 한다.

이학권 목사 / <하나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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