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권 목사 @ 하나임교회

구원의 실제는 높은 에너지 레벨이다. 에너지 레벨이 높아야 실제를 직면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건강한 부부는 문제를 정직하게 나누고 극복하지만 불건강하면 문제를 회피하고 덮을 뿐 해결하거나 극복하지 못한다

실제의 직면은 ‘생명’으로만 가능하며,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이기 때문에 어떤 문제라도 반드시 극복한다. 생명은 죽음까지도 직면하여 극복함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낮은 에너지의 ‘생존’은 부활은 커녕 죽음을 피하려다 죽음에 영원히 삼켜져 버린다

생각으로 하는 종교 생활은 낮은 에너지 레벨이다. 생각은 뇌의 작용으로 실제를 직면하지 않고, 나 중심으로 세계를 왜곡 시키고 피하는 기제이다. 이솝우화에 높이 달린 포도를 따먹지 못하는 여우가 돌아서면서 “에이 어차피 시어서 못먹어“  하는 것과 같다

에너지 레벨이 낮으면 ‘편하려‘ 한다. 문제를 극복하기 보다는 문제를 덮어서 없는 척 한다. 에너지 레벨이 낮으니 편하려 하고, 편함만을 추구하니 에너지 레벨이 낮아지는 악순환을 삶에서 반복 한다

그래서 종교는 기복 신앙이 될 수 밖에 없다. 하나님 믿어 무병장수 하고 만사형통 하는 것 즉 편한 것이 소원이다. 그러니 돈을 섬길 수 밖에 없다. 이 물질화된 세상의 문제는 다 돈으로 해결되니, 입술은 주여 주여 하면서 마음은 돈돈돈 한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꿈도 못 꾼다

구원의 출발은 하나님과 하나됨이다. 단절에서 회복되어 하나님과의 사귐이 시작 된 것이다. 우리의 에너지는 생명 에너지로 인격적 에너지이다. 하나님은 높은 인격이시며 높은 에너지 이시니, 하나님과의 사귐은 우리의 생명을 높은 에너지 레벨로 오르게 한다

하박국 선지자는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라고 노래 하였다. 구원 받은 자는 자신의 높은 지경을 살게 된다. 높은 에너지 레벨의 ‘더 큰 품음’과 ‘더 깊은 누림’을 살게 한다

낮은 에너지 레벨의 사람은 편함이 중요하고 불편함을 견디지 못한다. 복음서에는 하인의 중풍 병을 고쳐 달라고 주님께 나온 백부장이 있다. 낮은 에너지의 사람은 곁의 사람이 안보인다. 특별히 자기보다 낮고 없는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  백부장은 하인이 누워 있으면 손해임에도 불구하고 화는 커녕 오히려 돌보는 품음을 보였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는 아주 낮은 레벨이다. 세상은 먹고 마시고 입기를 명품이네 five star네 하며 특별한 것처럼 만들어서 평생에 그것에 목숨을 걸고 살게 한다

편한 삶이다! 이 세계의 무수한 문제들 또 기독교의 거짓과 추함은 생각과 말로만 안타까워 할 뿐 직면하지도 싸우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좋은 일이지만 우선 내가 먼저 편한 후에 ‘언젠가는’ 할 일일 뿐이다. 주의할 것은 그 편한 삶이 진정 편함이 아닌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 우리의 생명 레벨을 높여 높은 에너지를 살게 한다. 고난과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로 받는다. 섭리에는 그 고난을 극복함으로 더 높은 가치가 창조되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아름다운 비밀이 들어 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이순신 장군은 좋은 본이다. 고난의 상황에서 편하려고 타협하거나 피하지 아니하고, 어렵지만 극복하여 높고 아름다운 가치를 창조 하셨다. 이것이 떳떳하고 높은 자부심으로 사는 진정한 편함, 샬롬을 사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삶이 구원 받은 삶이요. 그리스도인의 삶이요. 내 존재의 높은 지경을 사는 하나님의 자녀된 삶이다

낮은 에너지의 삶을 살면서 구원받았다 하는 것은 성경을 폐하고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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