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영원 무한한 가치이며, 구원 받으면 반드시 그 가치가 피어나 거듭남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초월적 새 생명이 피어난다

이 새 생명에는 3가지 절대 요소가 있다

첫째로 하나님과 하나됨이다. 단절되었던 관계가 십자가로 회복된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되면 하나님 인격의 강력한 사랑으로 인격의 현저한 성숙이 일어난다. 진실 밀도가 상승하여 진리의 자유가 확장 된다 즉 성화된다

둘째는 성령님의 내주이다. 성령님이 아니면 예수를 주라 고백 할 수 없다. 불안과 염려가 현저하게 감소되고 주님 안의 평강과 안식이 상승한다. 물질에 대한 욕망이 스러지고 돈의 영향력이 놀라울 정도로 줄어 들어 ‘나됨’이 명확해 진다. 비로서 내가 싸울 선한 싸움, 달려갈 길, 지킬 믿음이 선명해지고 나에게 ‘내가 살 이유‘가 뚜렷해진다

셋째는 ‘나됨‘의 혁신적 변화다. 구원 받지 않으면 나는 물질로 규명된다. 즉 나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내 육체여서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건강한지, 얼마나 능력 있는지, 물질을 얼마나 소유했으며 어떤 소비를 할 수 있는지, 어떤 물질로도 환산이 되는 돈이 얼마나 있는지가 나를 규명한다

구원 받으면 육체로 살지만 육체가 ‘나’아니고, 나의 영이 ‘나‘이다. 육체는 참나 즉 육체를 벗은 후의 영원한 나를 피우는 섭리 기제이지 나 자신이 아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섭리는, 모든 상황 속에서 육체를 통해 내 생명을 피우고 자라게 하는 것이다. 고난은 극기하고 기쁨은 누리고 서로의 희노애락을 공감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 씨앗 (하나님 형상)을 싹 틔우고 자라게하는 것이다. 내 육체로 피워내야 내 생명이, 내 유업이 되기 때문이다, 로봇이 아니라

한마디로 사회적인 경쟁과 대립을 통하여 나를 증명하는 단절의 삶, 성공과 출세에 노예 될 수밖에 없는 삶을 비로소 넘어선다. 그냥 나를 누리며 어울려 우리되는 생명의 연대성을 누리기 시작한다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꽃 한송이만도 못한 ‘만들기’가 끝나고,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피우는 ’누림‘이 출발된다. 저주가 스러지고 복이 피어난다. 예로 부부가 서로 만들려고 하면 갈등이 심해지고 서로를 누리면 하나됨이 깊어진다

이 3가지 요소는 구원 받았다면 반드시 피어난다. 물론 어릴 때는 미성숙하게 나타나지만 살아갈 수록 뚜렷해 진다. 중요한 것은 아직 어려서 미성숙해도 이 요소들은 반드시 나타난다. 아기가 아무리 어리고 미성숙 해도 사람임이 분명 하듯이

종교의 제의(ritual)는 하나님과의 단절을 전제 되어서 제사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구조이다. 그러므로 예배를 종교의식(ceremony)으로 드리는 한 성경적 예배는 불가능하다

성경적 예배는 잔치의 개념이고 십일조는 이 잔치를 위해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십일조 말씀들의 결론은 언제나 종과 객과 이방인까지도 함께 먹으라는 것이다. 이 함께 먹음은 단순한 식사만이 아니라 삶을 나누는 중심이다. ‘식구‘ 함께 먹으며 삶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구원의 3요소는 함께 먹으며 함께 할 때에 자라나는 것으로 개인적인 자질 향상이 아니다. 종교적 제의로는 불가능하며 그래서 평생을 종교생활해도 성화가 되지 않는 이유다. 만들기로 되지 않으며 누릴 때 피어나는 것이며, 누림은 함께로만 가능하다

막 3:14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우신 이유가 1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며 2 보내사 함께함을 전하게하신 것이라 하신다

구원은 단절된 ‘우리의 함께’가 회복된 것이고,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단 한가지 함께 할 줄 모르는 것에서 발생된다,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연애할 땐 좋은데 결혼하면 갈등하는 우리, 한국 중국 일본 곁에 있으니 서로 축복하면 좋을텐데 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역사 내내 싸워 왔다, 함께 할 줄을 몰라서

주님의 십자가는 ‘함께 하나됨’을 회복하신 것이다, 원수까지도

저작권자 © 미주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