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권 목사 칼럼 [Diagnose, 진단하다]
성령님에 대한 글들은 천편일률적이고 (어지러운 명칭 기능 정의 등) 논리적인 정리임에도 실체가 혼미하다
대표적인 논쟁이 성령님의 초자연적 역사가 사도시대로 끝났느냐 현재에도 진행 중이냐 하는 것인데, 논쟁 자체가 어리석다
초자연적 역사란 평면인 현상 세계에 하나님의 개입으로, 현상 속에 본질의 입체 (너비 길이 높이 깊이의 충만 엡3:19)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창조로부터 종말까지 계속되는 성령님의 역사이다.
문제는 오순절운동으로 시작된 은사운동 (charismatic movement)이 초자연적 역사가 아닌 지극히 현상적인 일들을 초자연적 이라고 하는데에 있다. 그들은 쓰러짐, 춤, 웃음, 울음, 취한 상태, 금가루, 금니, 병의 치료 등을 은사 체험이라고 한다
초자연적 이라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상 속에 본질이 현현 되는 것이다. 은사 체험은 앞에서 말한 육체적 반응들도 있을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격적 변화이다. 육체의 인간이 영이신 하나님과 조우될 때에 무엇보다도 이기와 단절에서 자유하여 하나됨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현상적으로 아무리 신기한 일이 일어났어도 인격 변화가 없으면 성령체험이 아니다. 거짓 자아 (에고)에 ‘어찌할꼬‘가 터지지 않은 은사 체험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인간 본성에 들어있는 ’종교심‘으로 인한 심리 육체적 반응일 뿐이다
특별히 오순절 운동이 성령 세례의 증거라고 강조하는 방언은 종교적 trans의 일반적이고 대표적인 상태이다. 성령님의 은사로써 방언은 반드시 인격 변화가 따른다. 자신 스스로 표현할 수 없었던 죄 상처 두려움 절망감 등이 방언으로 하나님께 고백되어, 영적 자유와 치유가 일어나 인격이 새로워진다
이때에 방언의 구체적인 부분은 통역 하는 자에게 조차도 일반적인 면만 알려 진다. “방언은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전14:2
오순절 운동이 성령 운동이 아닌 것은 그 열매가 돈과 숫자임을 보면 분명하다. 오순절 운동의 대표적 특징인 대형 교회와 그 목사들의 축재와 왕대접 받는 호화 생활 (고급 저택, 차, 요트, 비행기 등)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덕분에 오순절 은사 운동은 이제 모든 교파와 가톨릭에서까지 환영 받는 기독교의 인기 메뉴가 되었고, 복음은 인간의 긍정적 사고로 전락 되었다
그러면 왜 성령님에 대해서 이토록 혼란스럽고, 짝퉁의 역사가 어지러운지 살펴 보자
글의 이해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문맥이다. 똑같은 문장이라도 문맥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구약에서 영 (루아ㅎspirit)은 378회 나오는데 대부분이 시가서와 선지서에서 나오며, 시가서와 선지서의 주제는 ‘종교와 싸우는 것‘이다
시 51편은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시며,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그러므로 ’중심의 진실함과 자원하는 심령을 주소서‘ 라고 한다. 즉 외식 뿐인 성전의 제사를 폐하고, 정한 마음과 정직한 영의 상하고 통회함으로 주께 나아가기를 구한다
선지서는 ‘너희의 번제와 짐승 피와 기름에 나는 질렸다. 언제 내가 제사 드려 달라고 했느냐? 너희의 안식일 대회 성회 모임에 나는 괴롭다. 행악을 그치고 선행과 정의를 세우라’사1:10-17 그리고 이 외침이 장장 17 권의 선지서 끝까지 흐르고 있다
그러므로 성령이라고 할 때에 그 의미는 일반적이 아니라, 외식으로 하는 종교 의식(ritual)을 그치고 하나님의 영 즉 하나님의 가슴을 받아 진정으로 하나님과 통하는 관계의 회복을 말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쉐마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신6:5 것이 하나님과 관계하는 길이지 인간의 제도와 전통인 종교가 아니다 하는 것이다
성령 받으면 쉐마 한다! 그 것이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