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권 목사 칼럼 [Diagnose, 진단하다]

십일조는 12지파 즉 가족 공동체인 고대 이스라엘의 연대성을 가꾸고 피우는 기제이다. 이것을 현대 사회에 문자적으로 적용시키는 것은 소달구지를 타고 달에 가겠다는 것이다.

성경에 십분의 일로 되어있으니 소득의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것은 종교적 억지이다. 먼저 십일조가 몇%를 말하는 것인지가 분명치 않다. 성경에는 3가지가 나온다. 


1.  민수기 18장의 레위지파을 위한 십일조

20-21절 아론은 기업이 없다, 십일조가 기업

   22-23절 레위인만 회막에서 섬겨 죄를 담당

24-26절 레위는 기업이 없다, 십일조가 기업

2.  신명기 12장의 절기 십일조

12:5-9 정한 장소(성막)에서 먹고 즐기라

   12:10 기업의 땅에서 안식과 평강을 누리리라

12:11-14 정하신 곳에서 함께 먹고 즐기라

3.  신명기 14장의 구제 십일조 (매 3년마다)

14:22-23 추수의 십일조 소양의 첫것을 먹으며

   14:26-27 돈으로 원하는것, 함께 먹고 즐기라

14:28-29 3년마다 성읍에 저축하여 레위인, 객, 고아, 과부들이 먹고 배부르게 하라

4.  신명기 26장의 십일조의 중심

26:1-4 모든소산의 맏물, 정하신 곳에서 드리라

   26:5-10 봉헌 고백으로 신앙 고백을 드리라

26:12-19 더불어 사는 백성이 여호와의 성민

말씀대로 하면 십일조는 23% 이다. 만약 세금을 내지 않는다면 23%는 적절한 적용일 수 있다. 그러나 현대 국가제도에서는 이미 세금을 내고 있으므로 문자적 적용은 의미도 없고 실제성도 없다.

십일조의 정신을 정리해 보자

1.  단절을 거부하고 하나됨을 가꾸는 사람들

십일조는 창14장에서 아브람으로 시작되었다. 롯이 그돌라오멜 연합군에 사로잡혀 가자 아브람은 자신의 전부로 추격하여, 롯을 구하여 돌아온다. 이때에 두 왕이 그를 마중한다.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함께 먹음)를 가지고 나와서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하자, 아브람은 십일조를 드렸다

아브람이 목숨을 걸고 롯을 구한 것은 한 가족이기 때문이었고, 멜기세덱이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한 것은 하나님은 만물을 하나되게 하시는 분이시니 높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나는 ‘내 것’으로 단절된 존재가 아니라, 십일조의 나눔을 통해 하나됨을 가꾸고 누리는 존재임(하나님의 가족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2.  물질을 다스리는 사람의 존엄함

소돔왕은 아브람에게 사람은 내게 주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창14:21 하였다. 이것이 사탄의 인간론이다. 사람이 자기 생명을 소유와 바꿀 것이라 욥2:4 이것이 세상에서의 인생이다. 평생 땀흘려 수고하여 소유 만드느라 자신은 누구인지도 모르고 평생 자신을 버리는 삶을 산다. 돈 벌려 한평생을 떠내려 보낸다!

3.  축제를 즐기는 하나된 가족

앞의 성경 구절들에서 보았듯이 십일조에서 반복되는 말씀이 ‘함께 먹고 즐기라‘이다. 이것이 식구다! 가장 잘 사는 길이 가족되어 사는 것이다. 기쁜 일에는 함께 즐거워하고 아픈 일에는 서로 위로와 격려가 되는 것이다. 이 함께함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함께 먹으며 나눌 때에 실제화 되는 것이다. 교회는 떡과 잔을 나누며 생명이 교통되는 식구들이다

우리를 단절시킨 사탄은 더 강한 나, 많이 가진 나, 잘난 나, 인정받는 나를 만들려 몸부림쳐, 모든 관계(생명의 존재 방식)가 소멸된 허무의 무저갱으로 떨어지게 한다

교회는 함께 먹고(떡과잔) 십일조로 함께 삶을 나누는 사람들이다. 십일조는 종교 조직에 갖다 바쳐서 조직을 강화하고, 건물을 짓고, 공동묘지를 사고, 돈으로 조직의 프로그램을 세워 조직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교회 안에 빈부 귀천의 차별이 뚜렷한데, 저 바다건너 종교 조직 만들고 프로그램 세우는 것이 선교(missio Dei 하나님의 일)가 아니다

기독교가 좋아하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겠느냐” 말3:8는 십일조를 가지고 자기 배를 채우는 제사장들에 대한 경고다. 성도들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성직자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경고이다.

신약은 십일조 정신을 강조한다. 히7:1-22는 길지만 한마디로 멜기세덱이 십일조를 받았다면 항상 제사장인 주님께서 어찌 십일조를 받지 못하시겠는가 라고 강조하며 ‘십분의 일’이라는 단어가 7번 반복한다

그러나 신약은 더 중요하게 연보는 즐거움으로 하며 고후9:7-8 서로를 보충하여 균등하고 넉넉하게 하는 사랑의 자원함임을 강조 한다 고후8:14 행2:44-46, 4:32-35 딤전6:17-19

십일조는 의무도 종교법도 바치면 더 받는 슬롯머신도 아니며, 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전적인 자원함과 나눔의 기쁨으로 하나됨을 가꾸는 신적 행위이다. 혈육으로 땅을 사는 삶에 하늘을 피우는 것이다.
 

십일조를 나누는 가슴은 열려 삶의 지경이 넓어지며, 하나님 안에서 만물과 하나됨을 피운다. 전적인 자원함과 중심의 진실로만 드려 나됨이 피어나, 다스림의 권세(특히 물질)를 회복하는 생명 장성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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