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구속되면 대한민국은 나치 국가"

"내가 구속되면 대한민국은 나치 국가"

손현보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최근 전광훈과 쌍벽을 이루게 된 유명한 목사님이시다. 이 두 목사님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대단한 분들이시라는 사실이다. 전광훈 목사님께서는 더 유명한 어록을 남기셨다.

“하나님도 (내게) 까불면 죽어.”

이분들과 달리 아주 목회를 잘 하시고, 정상적으로 여겨지던 분이었지만 이분들과 같이 특검의 조사대상 가운데 한 분이 되셨다. 이런 분들이 목사라는 사실이 그다지 이상하지 않은 오늘날이다. 이 두 분만이 아니라 기회가 닿으면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이분들과 같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신학교 시절 고시원 출신의 동료 전도사가 있었다. 그도 나처럼 나이백이였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신대원생들의 성공에의 욕망이 고시생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말을 했다. 그것은 이미 나도 느끼고 있는 바였다.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욕망을 선으로 포장한다. 신학교 교수가 되는 것을 거룩한 희생이라 주장하는 서울대 졸업생의 겸손은 겸손이 아니라 욕망이다. 다만 그가 그 사실을 보지 못할 따름이다. 그런 그들은 동일하게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거룩한 열망으로 포장한다. 능력이 부족한 이들까지 선교사를 지원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을 향한 충성과 희생으로 착각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눅 8:23-24)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그렇다면 생각해보라. 자기를 부인한 사람이 “자기”를 그토록 대단하게 여길 수 있는가.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위에 인용한 분들은 목사님이 아니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도, 예수의 제자도 아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오늘날 그리스도교를 대표하고 있고, 장악하고 있다.

인간의 합리화할 수 있는 능력은 전능하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이 능력을 부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만일 자기를 부인한 예수의 제자가 구속을 당하게 된다면 그는 그것을 자기의 십자가로 알고 질 것이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의 제자는 그것을 순명으로 알아듣는다. 기꺼이 그것도 기쁜 마음으로 진다.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길이기 때문이다.

푸코의 말대로 그리스도께서 가장 낮은 곳에 계시기 때문에 예수의 제자들은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갈 수 없다. 그 말의 의미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할 것이다.”(마 25:40)

“그 때에 임금이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45)

예수님은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과 당신을 동일시하신다. 우리는 이 사실에서도 그리스도께서 가장 낮은 곳에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그리스도인의 길이 낮아지는 길이며, 그리스도인의 삶이 내려가는 삶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메시지를 듣기 싫어한다. 그들은 성공하고 부자가 되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여기며 한사코 높아지고 위대해지고 싶어 한다. 그들은 이것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아님을 온 세상에 천명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말로만 낮아져야 한다고 주장할 뿐 실제로는 낮은 곳을 향해 단 한 걸음도 내디디려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보고 예수의 제자라면 그곳에서 돌아서 나와야 한다. 그곳에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아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곳에서 엄숙하게 예배를 드리고, 미사를 드린다. 이 모습이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그것을 모른다. 예수의 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는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으면 제자를 불러 하루 종일 자신에게 욕을 하도록 시켰다. 반대로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거나 욕설을 들으면 하나님을 찬양했다.

사실 나도 이런 프란치스코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는 게 그리스도교 신앙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병적인 신앙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런 프란치스코를 예수의 제자라고 생각한다. 모름지기 예수의 제자라면 그래야 한다. 자기를 부인한 예수의 제자는 그럴 수밖에 없다.

만일 전광훈이나 손현보나 김장환과 같은 이들이 예수의 제자가 아니더라도 예수님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다면 구속의 기로에서 지금과 반대의 반응을 보일 것이다. 프란치스코와 같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옳을 것이다.

이런 글을 쓰면서도 저절로 쓴 웃음이 난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야말로 미친놈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읽고 동의하는 사람 역시 미친놈이라는 생각에 더 웃음이 난다.

하지만 이것이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현실이고 진면목이다. 그리스도교는 죽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안 계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없이 계신 분”이시다. 가장 낮은 곳에 계신 그리스도를 통과해야 우리는 그런 하나님께로 갈 수 있다.

생각할수록 그리스도교 신앙은 ‘바보들의 행진’이며 ‘미친놈(여성 포함)들의 행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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