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목사는 오늘 사랑제일교회에서 열린 주일연합예배에서 "교회를 왜 오겠느냐, 목사님한테 가스라이팅 받으려고 오는 것"이라며 "교회와 기독교, 성경에 대해서 뭘 아느냐"고 말했습니다.”-mbc뉴스

오늘 아침 기사에서 읽은 내용이다. 전광훈 목사의 이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마도 대부분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전광훈의 이 말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전광훈의 이 말은 오늘날 그리스도교와 교회에 대한 정확한 지적이자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교회는 지배하는 곳이 되었다. 물론 전광훈처럼 노골적이지는 않다. 개신교 목사로서 개신교에 국한해 말하자면 오늘날 교회에서 목사들은 정확히 전광훈이 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자신이 가르치는 것에 절대성을 부여하지 않는 목사는 없다. 거기에 조금이라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저항하는 사람들은 그 교회에 머물 수 없다. 목사는 실제로 그런 사람들에게 교회를 떠나라고 말한다. 한 마디로 오늘날 교회는 목사, 그것도 담임목사가 지배하는 곳이 되었다.

전광훈은 이것을 더 정확한 언어인 ‘가스라이팅’으로 표현했을 따름이다. 물론 서부지법 사태의 배후로 전광훈을 지적한 이유를 ‘가스라이팅’으로 몰았기 때문에 전광훈 목사가 그에 대응하기 위해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오늘날 교회의 현실을 더 잘 묘사하는 방편이 되었다. 우연이지만 우연이 아닌 드러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오늘날 교회는 ‘가스라이팅’을 받으러 오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오늘날 교회가 더 이상 교회가 아님을 드러내는 표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대형교회들의 경우는 그 정도가 심각하다. 다만 그 사실을 그곳에 다니는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할 따름이다.

바로 그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교의 신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의 가장 현저한 원칙은 ‘자발적인 동의’다. 하나님 나라는 강요하지 않는 나라다. 누구도 강제로 사람을 지배하지 않는다. 그래서 힘을 포기해야 하고, 인기와 영향력 역시 사절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는 반대로 힘을 추구하고, 인기와 영향력으로 모든 것을 장악하고자 한다. 그래서 싹쓸이가 오늘날 교회의 대세가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의 존재는 존재 자체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일을 추구한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들의 교회가 크다는 것으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넘어 우월성을 주장하는 오늘날의 그리스도교와 교회는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아니라 ‘맘몬의 신전’이다.

예수께서 세 번째로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때에 베드로는, [예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이나 물으시므로, 불안해서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먹여라.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다녔으나, 네가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릴 것이고, 너를 묶어서 네가 바라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이다."(요 21:17-18)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자신의 양떼를 위임하셨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의 양떼를 맡기시면서 하신 말씀은 엉뚱하다. 정상적인 논리라면 주님의 양떼를 위임하시면서 적어도 ‘권능’과 ‘절대적인 보호하심’을 약속하셔야 한다. 그러나 정 반대로 베드로는 자신의 팔을 벌리고 그냥도 아니고 묶여서 그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끌려 다녀야 한다. 주님의 양떼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양떼에게 이끌려 다니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라. 이 얼마나 황당한 시추에이션인가. 베드로는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다녔다. 하지만 늙어서는 상황이 정 반대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늙어서는”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육체의 노화를 의미한다기보다는 주님의 양떼를 먹이는, 다시 말해 그리스도교 지도자로서 가져야 하는 자세 내지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 이유는 주님의 양떼를 위임받은 베드로가 양떼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에 반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속성이다. 갓난아이를 생각해보라. 갓난아이가 울면 누구나 왜 우는가를 살핀다. 그리고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아이의 울음을 멈추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한다. 똥을 치우는 일이건, 젖을 먹이는 일이건, 약을 먹이건 아이의 상황을 파악해서 아이의 문제를 해결해주려는 것이다. 누구건 아이를 돌보는 사람은 아이의 상황에 따라 반응해야 한다. 그것을 예수님은 팔을 벌린다는 것, 그리고 묶여 끌려가는 것으로 표현하셨다. 그런 후에 이런 말씀도 하셨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를 암시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19)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앞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처럼 주님의 양떼들의 요구에 반응하는 사람이 되어 그들에게 끌려 다니다가 죽어야 한다. 다시 말해 그렇게 살다 죽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는 말이다.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생각과 얼마나 다른가.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더 많이 지배하는 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 일에 열심이다. 그 결과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맘몬에게 영광을 돌리는 곳이 되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을 성직자로 부르며 정확하게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전광훈의 말은 추호도 틀림이 없다. 오늘날 교회는 ‘가스라이팅’을 받으러 오는 곳이 되었다. 그런 교회에서 하는 선교 역시 동일한 것이 되었다. 선교사들이 식민지 정복의 선봉에 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들이 하는 선교나 개종 역시 ‘가스라이팅’이다.

이런 내 말이 황당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야 한다.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정확히 똥인지 된장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곳이 되었다. 똥통이 된 교회를 아무리 개혁해보라. 아무리 청소를 깨끗이 해도 똥통은 똥통일 뿐이다. 이런 내 주장이 과격하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과격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실상을 보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나라로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곳이다.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은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필요와 요구에 반응하는 가장 천한 이방인들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생각과는 정 반대인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열릴 것이다.

정작 본인도 교회와 기독교와 성경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오늘날 교회의 진면목을 정확하게 지적해주신 전광훈 목사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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