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세상은 디지털이 기본값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더 이상 ‘사용자’가 아니라 ‘거주자’로 살아간다. 예전의 디지털은 도구였다. 필요할 때 켜고, 필요 없을 때 끌 수 있는 외부의 물건이었다. 그러나 이제 디지털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가 되었다. 스마트폰은 손안의 장치가 아니라 몸의 연장이고, 네트워크는 사회의 배경이 아니라 존재의 기반이 되었다. 우리는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머물며’ 산다. 메일함과 일정표가 우리의 하루를 결정하고, SNS가 인간관계의 무게를 정하며, 검색 알고리즘이 우리의 생각과 욕망을 미리 예측한다.
디지털은 더 이상 우리가 ‘소유’하는 세계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소유당한’ 세계다. 그 안에서 우리는 살고, 사랑하고, 피로하고, 외로워한다. 이제 디지털은 집처럼 편안하면서도, 감옥처럼 벗어날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손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세계이고, 그 화면 속에서 우리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맞이한다. 아침 햇살보다 먼저 우리를 깨우는 것은 알람 소리이고, 밤의 고요보다 오래 남는 것은 스크롤의 잔광이다.
그러나 우리가 디지털 안에서 살게 되었을 때, 무언가 조용히 사라졌다. 깊이 생각하는 능력, 느리게 감각하는 시간, 관계의 온도 같은 것들이다. 디지털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그 편리함은 우리 안의 느림을 침식했다. 우리는 이제 무엇이든 ‘즉시’ 알고, ‘즉시’ 반응할 수 있지만, 대신 기다림과 숙성의 미덕을 잃었다.
디지털은 인간을 확장시켰다. 그러나 동시에 축소시켰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되었지만, 더 깊은 고독에 빠져 있다.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얻었지만, 그 정보 속에서 자신을 잃었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손끝처럼, 우리는 이미 디지털의 리듬에 종속된 몸이 되었다.
스크린은 새로운 거울이다. 그러나 그 거울은 우리의 얼굴을 비추는 대신, 우리의 결핍을 확대한다. 누군가의 행복, 누군가의 성취, 누군가의 완벽한 하루가 끊임없이 흘러들어올 때, 우리는 점점 자신을 잃는다. 비교는 습관이 되고, 열등감은 일상이 된다. 디지털은 외로움을 달래주는 도구인 척하지만, 그 속에서 외로움은 오히려 증폭된다. 왜냐하면 그곳의 관계는 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디지털은 인간의 시간 감각을 파괴했다. 과거와 미래가 한 화면 안에 뒤섞이고, 현재는 언제나 도착하지 않는 택배처럼 ‘곧 올 것’으로 남는다. 우리는 지금을 살지 못하고, 항상 다음 알림을 기다린다. 그 기다림 속에서 시간은 사라지고, 존재는 흐려진다.
이 시대의 비극은 단순히 기술의 과잉이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쉼의 결핍’이다. 디지털의 속도는 쉼의 느림을 견디지 못하게 만들었다. 멈추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에게, 디지털은 끝없는 움직임을 강요한다. 우리는 피로해지고, 피로를 잊기 위해 다시 디지털을 켠다. 그것은 마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바닷물을 마시는 일과 같다.
이제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저항의 쉼이다. 거창한 저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화면을 덮고, 침묵 속에 머물며, 한 호흡의 무게를 느끼는 일이다. 삶의 템포를 바꾸어 느긋함의 리듬으로 맞서는 것이다. 쉼은 도피가 아니라 저항이며 회복이다. 세상의 소음에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기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일이다. 이 느린 저항이야말로, 피로한 시대를 지탱하는 강력한 힘이다.
이영길 교수 / <칼빈대학교>, '나는 홀가분하게 살고싶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