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합을 훼손한 것이 아닌 밀봉을 뜯은 것

설교는 설교자가 정한 성경 본문에 담긴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해야 한다. 실화이든, 실화를 각색한 것이든, 아니면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이든, 대부분의 이야기에는 때와 곳, 사람, 사건, 일상, 소품 등이 어우러진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설교자는 성경 본문 이야기를 재현해 내는 것에 별 관심이 없다. 성경 본문 속 이야기를 주고받던 이들의 상황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설교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돋보이기 위한 도구로서 성경 본문을 앞세우거나, 본문에서 찾은 특정 단어나 표현에 몰입하는 경우가 많다.

듣는 설교를 읽는 설교로 바꿔보자. 설교 본문, 즉 성경 본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서 설교자가 강조하는 바를 다시 읽어보고자 한다. 성경과 설교를 듣는 힘과 읽어내는 힘이 키우고 싶다. 성경 본문을 깊이 읽는 연습을 통해 설교를 더 잘 이해하고 수용하는 능력을 키우고자 한다. 이 공간에서는 최근의 설교를 다루며, 설교자나 설교 현장에 관련한 정보는 생략한다. - 편집자 주

 

지난 12월 29일 주일에 진행된 설교 가운데, 아래와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관련 본문은 마가복음 14장 3-9절이다. 한 여인이 예수의 발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 옥합을 깨뜨린 본문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을 담고 있다.

본문을 깊이 들여다보며 생생함을 되살리는 해석이 필요한 이유를 살펴보자. 성경 본문 속 시대로 시간 여행을 떠나 이야기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보자. 2천 년 전 고대 로마 제국의 식민 지배를 받던 1세기 초반, 예루살렘 가까운 베다니의 조촐한 식사 자리가 본문 속 시공간이다.

이제 이야기가 펼쳐지는 그 공간 속으로 더 다가서, 이야기의 한복판에 서보자. 그곳의 소리, 맛, 멋, 냄새에 반응해 보자. 이날 차려진 음식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맛과 향을 자아내고 있었을까? 실내 공간이었을까? 아니면 바깥 공간이었을까? 몇 명이나 모였을까? 어느 정도 되는 공간이었을까? 이러한 생생함이 설교에 담길 때, 본문의 의미가 더욱 선명하게 전달될 수 있다. 그러나 아래의 설교 속에서는 그런 '생생함'을 찾기 힘들다.

[마가복음 14: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File:Brooklyn Museum - The Ointment of the Magdalene (Le parfum de Madeleine) - James Tissot.jpg|thumb|Brooklyn Museum - The Ointment of the Magdalene (Le parfum de Madeleine) - James Tissot]]
[[File:Brooklyn Museum - The Ointment of the Magdalene (Le parfum de Madeleine) - James Tissot.jpg|thumb|Brooklyn Museum - The Ointment of the Magdalene (Le parfum de Madeleine) - James Tissot]]

설교 읽기

오늘 본문에 베다니 마리아가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축복의 통로인 그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그녀를 칭찬해 주셨을까요? 예수님이 칭찬하는 축복의 통로는 어떤 사람일까요? 오늘 세 가지를 같이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첫 번째로 예수님은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자를 칭찬하십니다. 베다니 시몬은 당시 불치병인 나병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의 병을 고쳐주었고, 그는 그 주님을 위해서 만찬을 열었어요. 바로 그때 베다니 마리아가 나타나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습니다.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부었어요.

왜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을까요? 요한복음 12장 1절 말씀 보시기 바랍니다.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마리아는 죽은 오라버니 나사로를 살리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보답하고자 옥합을 깨뜨렸던 것이에요. 그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보답하고자 귀한 향유를 예수께 부었던 것입니다.

(... 중략)

설교는 베다니는 어디에 있는, 어떤 마을이었는지 관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모여든 이들의 처지와 일상에도 무관심하다.

 

오늘도 주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의 사랑하는 자녀이다.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고 딸이다.” 믿으십니까? 자격도 없고 공로도 없는데 주님이 나를 자녀로 삼아주셨어요. 주님이 나를 주님의 백성 삼아주시고, 주님의 제자 삼아 주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마리아는, 이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보답하고자, 옥합을 깨뜨렸어요. 그리고 주님은, 그런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마리아를 귀하게 여기시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은 주님을 귀하게 여기는 자를 칭찬하십니다.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자,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몇몇 사람들이 화를 냈다. 화를 낸 사람들은 누군지 아세요? 성경에 보니까 제자들이에요. 제자들이 화를 냈어요. 그중에서도 가롯 유다가 가장 크게 화를 냈습니다. 가롯 유다는 이 300데나리온 1년 치 봉급에 해당하는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주장을 했어요. 겉으로 그의 말이 옳습니다. 이 어마어마한 값이 나가는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일은 정말로 좋은 일이지요. (... 중략 ...) 

그러나, 베다니 마리아는 달랐어요. 마리아는, 예수님께 가장 귀한 향유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을 귀하게 여겼어요. 값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깨뜨려 드렸다고 말합니다. 그 비싼 향유를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부었습니다. 당시 관례는, 물로 손님들의 발과 손을 씻겨주고, 값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올리브기름을 발라주었어요. 그런데 마리아는 가장 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었어요. 1년 치 봉급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액수가 나가는 값비싼 향유입니다. 아마도, 그녀의 전 재산이었거나 결혼 자금이었을 것입니다.

"300데나리온 1년 치 봉급에 해당"? 300데나리온어치의 나드 한 근은 누구의 1년치 봉급에 해당했을까? 예수 시대 로마 군단병의 연봉이 고작 70~80데나리온에 불과하지 않았나? 300데나리온이 노동자의 1년치 봉급이라는 서술은 익숙하다. 그러나 모든 노동자가 동일한 임금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당시 관례"? 예수 시대의 관례는 로마인의 전통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식민지 이스라엘의 문화를 반영하는가? 이러한 관례는 모두가 따를 수 있는 규범이었을까? 당시 식민지 백성들은 세금과 강제 노동에 시달렸으며, 손님 접대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소수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로 손님들의 발과 손을 씻겨주고"? 손님들의 발과 손을 물로 씻어주는 관례를 실천할 수 있는 형편의 사람은 극히 소수였을 뿐이다.

"값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올리브기름"? 올리브기름이 그 시대에 가난한 식민지 백성에게 값싸고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이었을까? 아니다. 수십 년 전 참기름이 한국 서민에게 값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올리브기름은 그보다 더 귀한 것이었다.

근데 놀라운 사실은 이거예요. 마리아가 그냥 향유를 부은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왜 그녀가 옥합을 깨뜨렸을까요? 옥합은 깨뜨리지 않으면 또 사용할 수 있잖아요. 값비싼 향유를 부은 것만 해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근데 왜 그녀가 옥합을 깨뜨렸을까요? 당시 옥합을 깨뜨리는 행위는 VIP를 위한 특별 예우입니다. 옥합을 다시 사용하지 않겠다는 뜻이고, VIP에 대한 존경의 표시라고 합니다.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는, 예수님을 가장 귀한 자로 여겼다는 뜻이에요. 그냥 많은 랍비 중의 하나가 아니라, 가장 존귀한 자로 가장 귀한 자로 여겼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마리아처럼 나의 마음의 옥합을 깨, 예수님을 내 삶의 VIP로 구세주로 받아들이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주님은 주님을 귀하게 여기는 자를 귀하게 여기세요. 주님은, 주님을 귀하게 여기는 자를 칭찬하십니다. 새해에도 주님께 칭찬받는 우리 성도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2000–2024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Shared under a Creative Commons Attribution-NonCommercial-ShareAlike 4.0 International (CC BY-NC-SA 4.0) lic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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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Shared under a Creative Commons Attribution-NonCommercial-ShareAlike 4.0 International (CC BY-NC-SA 4.0) licence.
©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Shared under a Creative Commons Attribution-NonCommercial-ShareAlike 4.0 International (CC BY-NC-SA 4.0) licence.

 

옥합은 무엇일까? 알라바스터(Alabaster, 설화석고)로 만든 뚜껑이 있는 항아리 또는 병을 말한다. 1세기 전후한 고대 로마 유물 가운데 옥으로 만든 그릇은 드물다. 미국 동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나 양국 런던의 영국 박물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의 전시물도 검색했다. 1새기 전후의 고대 그리스 로마의 유물 가운데 유리 공예품이나 토기는 많아도 알라바스터로 만든 용기는 매우 희귀한 편이었다. 사실 알라바스터는 주산지의 한 곳인 고대 이집트에서도 귀한 용품이었다.

"당시 옥합을 깨뜨리는 행위는 VIP를 위한 특별 예우"? 설교자가 말하는 옥합을 깨뜨리는 행위가 VIP를 위한 특별예우였다는 주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가운데는 아래와 같은 내용(https://biblehub.com/greek/211.htm)이 있다.

설화석고는 고대 세계에서 귀중한 재료였으며, 아름다움과 향수의 향을 보존하는 능력으로 소중히 여겨졌다. 항아리는 종종 내용물을 순수하게 유지하기 위해 봉인되었고 중요한 사회적 및 종교적 의식에 사용되었다. 누군가에게 기름을 바르기 위해 설화석고 항아리를 깨는 것은 큰 명예와 존경의 표시였으며, ​​종종 특별한 경우나 높은 지위의 사람에게만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곳 외의 다른 출처를 찾기가 힘들다. 그런데 옥합을 깨뜨리면 그 안에 남은 기름이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기름 속에 옥합의 파편이 뒤섞일 것이 아닌가? 옥합을 깨뜨리는 것은 어떤 장면일까? 옥합의 병목을 부수는 것, 깨뜨리는 것을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일까? 이런 것을 헤아려보면 옥합을 깨뜨렸다는 우리의 이해는 자연스럽지 않다. 

수십 년 전 병이 소중했던 시절, 음료수 병도 버리지 않고 다시 사용하곤 했다. 지금도 음료수 병은 재활용 용품이다. 고대에도 그릇은 귀한 재활용품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깨뜨리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유리병이든 토기로 만든 그릇이든 그것은 무한 재활용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향유는 냄새가 중요한 것이었다. 오늘날의 향수병이나 기름병, 커피, 포도주는 물론 향신료처럼 냄새를 중요시하는 물품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경우 냄새가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용기를 잘 밀봉해야 한다. 향유(그것이 나드이든 다른 향유이든) 병은 그래서 잘 막아야 했다. 그 그릇 안에 담긴 향유를 사용하려면, 처음에는 밀봉했던 것(그것이 무엇이든, 아니면 뚜껑이든, 그것)을 열어야 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옥합을 깨뜨린다는 표현은 일상적인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옥합을 깨뜨렸다"는 표현은 "밀봉된 알라바스터로 만든 향유 병을 열었다"는 풀이가 자연스럽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면, 아래와 같은 설교자의 본문 적용은 지나치다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주를 위해 희생하는 자를 칭찬하십니다.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린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희생을 기리기 위함이고, 예수님의 몸이 깨지는 십자가 사건을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행동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마가복음 14장 9절 말씀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며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죽으실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인류를 위해서 몸이 깨질 것을 예견하고 주님을 위해서 옥합을 깨뜨렸던 것이에요. 

오늘 본문은 시몬의 집에서 일어난 사건이죠. 이 시몬의 만찬과 유월절 만찬은 연속해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시몬의 만찬은 고난 주간 수요일에 일어났고, 유월절 만찬은 고난 주간 목요일에 일어났어요. 시몬의 만찬에는 예수님의 인성과 치유 사역이 중심이었다면, 유월절 만찬은 예수님의 구속적 희생과 새로운 언약을 세우는 자리였어요. 시몬의 만찬은 예수님이 손님이었고, 유월절 만찬에서는 예수님이 주인이셨습니다. 시몬의 만찬에서는 마리아가 예수를 위해서 향유를 깨뜨렸고, 유월절 만찬에서는 예수님이 자기 몸을 깨뜨린 언약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인류를 위해서 부으셨습니다. 시몬의 만찬에서 예수님은 마리아의 희생을 칭찬하셨고 그것이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유월절 만찬에서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자신의 희생이 영원히 기념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이처럼 마리아는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고, 자기의 전 재산을 주를 위해서 드렸어요.그리고 주님은, 그런 희생을 감수한 마리아를 귀하게 여기시고 칭찬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마리아처럼 주님께 칭찬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한, 네 가지를 제안해 드리면, 첫 번째로 먼저 나 자신을 깨뜨려야 돼요.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배다리 마리아의 옥합이 깨졌을 때, 향유 냄새가 온 집 안에 가득했더라라고 말합니다. 향나무는 찍힐수록 향을 발하듯이, 나의 자아가 깨지고, 나의 욕심이 깨지고, 나의 탐욕이 깨지고 나의 교만과 세상의 그 쾌락주의, 우월주의가 깨질 때, 내 안에서 예수의 향기가 가득하게 되고, 예수의 향기가, 나를 통해서 바깥으로 흘러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깨져야 돼요. 

두 번째로는 주를 위한 깨뜨림이 낭비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위한 희생은, 절대 낭비가 아닙니다. 탐욕에 눈이 먼 가롯 유다는, 낭비를 외치다가, 인생을 낭비했지만, 마리아는 주를 위해서 희생을 감수했고, 주님은 그녀를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주를 위한 희생은, 절대 낭비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는 주님이 나의 희생을 기억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마리아의 희생이 기억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왜, 예수님이 그녀의 희생을 기억하신다고 말씀했을까요? 그녀가 큰 헌금을 드려서요? 아니에요. 그녀의 믿음 때문입니다. 주님을 향한 그녀의 믿음 희생 때문이에요. 주님은 그녀의 믿음을 기억하시고, 그녀를 칭찬해 주셨고, 주님은 주를 위해서 희생하는 우리의 희생도 주님이 기억해 주실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자신의 옥합인 몸을 깨뜨리셨음을 알아야 합니다.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깨뜨리셨어요. 희생의 재물이 되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구원받아 예수를 따르는, 예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옥합인 몸을 깨뜨리셨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에요. 그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이고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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