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탄생의 소식을 듣고 예수에게 경배한 베들레헴의 목자들이 '레갑의 자손'이라는 주장을 담은 성탄 설교가 적지 않다. 그러나 성경에도, 역사나 지리적 특성에도 그같은 주장의 근거는 없다. 그런데도 이 내용을 담은 설교가 이어지고 있다. 이 설교의 근원을 찾아 나선다. 공개된 시간의 흐름을 따라 거슬러 내려온다. 이 글을 쓰게된 것은 레갑 자손과 베들레헴 목자를 연결짓는 지난 22일 주일에 마주했던 A 목사의 설교 때문이다.

 

2010년 12월 14일 기독신문 사설

아래의 내용은 지난 22일 주일 A 교회의 B 목사 설교(관련 기사: "아기 예수를 경배한 베들레헴 목자는 레갑 후손?")에 담긴 내용과 거의 같다. 지난 2010년  12월 14일 기독신문에 실린 "진정한 성탄 의미 살리자"라는 제목의 사설이다.

조금 더 역사적이며 성경적인 관점에서 추적해 보자. 예수님이 나시는 소식을 들었던 목자들이 거주하던 곳은 베들레헴에서 멀지 않은 곳, 현대 지명으로 라못 라헬이라고 불리던 작은 동네였다. 그런데 라못 라헬의 옛 이름은 다름 아닌 ‘벧학게렘’이다. 벧학게렘은 느헤미야 3장 14절의 증언에 따르면, 레갑의 자손들이 다스리던 땅이었다. 정리하자면, 목자들은 벧학게렘 지역에서 오랜 역사의 풍파를 견뎌오며 거주해 오던 레갑의 후손들이란 결론이 된다.

레갑 자손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잘 증거되고 있다. 예레미야가 고관대작들 앞에서 레갑 사람들을 불러 포도주를 마시라는 시험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요나답을 통하여 주어진 세 가지 금령 -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농사 짓지 말라, 장막에서 살아라 - 으로 인하여 포도주 마시기를 거절한다. 선조들을 통하여 주어진 금령으로 가문의 신앙적 정통성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풍요를 상징하던 바알과 아세라에 굴복하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구별된 삶의 표준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런 삶을 살아오던 레갑 자손들에게 축복의 말씀,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가 주어진다. 하나님 앞에 설 사람, 농사 짓지 않고 장막에 거주하며 목자의 일을 하던 레갑의 후손들은 예수님이 오시는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듣고 전파했던 사명을 감당하게 됐던 것이다.

레갑 자손들이 포도주를 거절했던 것은 단순히 금욕적인 삶을 선택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풍요의 신으로 군림하던 바알과 아세라를 통하여 복을 누리는 상징이 포도농사 풍년이 되어 포도주를 많이 생산하는 것으로 이해가 되던 시기였다. 그러므로 레갑 족속이 포도주를 거부한 것은 금주를 통한 절제를 보여주었다기보다는 주류의 시대정신이 하나님을 반역하던 때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스스로 낮은 자리에 앉겠다는 신앙적 결단이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순종과 희생을 당연한 삶의 축으로 지켜옴이 있었다. 목자들은 이런 레갑의 자손들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가문대대로 순종하며 벧학게렘 지역에 거주하면서 그 신앙의 유산을 이어오던 중에 아기 예수가 오시는 소식을 가정 먼저 듣고, 전파하는 사명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성탄을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 또한 이러해야 할 것이다.

 

2011년 12월 25일 강남교회

강남교회 담임목사이던 송태근 목사의 성탄주일예배 설교에, 위에서 인용한 내용이 담겨 있다. 설교 제목은 "성탄을 준비하는 3가지 자세"였고, 성경 본문은 "예레미아 35:1~10절"이었다. 그러나 설교 동영상을 찾을 수 없어서 설교 내용 녹취는 하지 못했다.

 

2012년 12월 16일 삼일교회

송태근 목사는 강남교회에서 삼일교회로 부임한 이후인 2012월 12월 16일(주일) 누가복음 2:8-14절을 본문으로 "성탄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12월 23일 주보에 실린 설교 요약 내용을 보면 기독신문 사설과 거의 같은 내용이다.

“성탄을 준비하는 사람들” 눅2:8-14

사람들이 성탄절을 취하고 즐기는 쾌락의 날로 변질시키게 된 한복판에는 성도들의 책임이 일차적으로 자리합니다. 물결을 거스르는 물고기처럼 시대를 극복해야함에도 주님 오신 날이 더럽고 아픈 날로 변질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양떼를 지키던 목동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성탄을 준비해야 할 것인지 풀어 보겠습니다.

레갑 족속의 후예들인 목자들은 조상들의 약속을 기다리던 자들이다.

누가복음 2장은 성탄의 기쁨을 가장 먼저 접한 사람들이 목자였다고 기록합니다. 왜 하나님은 그 당시 가장 낮고 천 한 직종 중의 하나였던 목동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처음으로 주셨을까요? 몇몇 학자들은 목자들이 가난했고 무 식한 부류였기에 복음을 어떤 선입견도 없는 백지 상태로 그리스도의 탄생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가난한 자들만이 아닌 만민을 위한 것이고, 목자들은 무식한 자라고 오해받을 만하지 않 고 오히려 복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성경의 흐름을 따라 이 목자들이 누구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목자들이 양을 치며 거주했던 장소가 현 행정지역명으로 ‘라못라헬’인데, 과거 ‘벧학게렘’으로 불렸던 지역입니다. 벧학게렘은 바벨론 포로 후 레갑의 자손들이 거주하며 다스리던 구역입니다.(느3:14) 즉, 구주 나심의 소식을 가장 먼저 들었던 목동들은 레갑 족속의 후예들이라는 결론입니다.

Q : 목자들이 거주하던 벧학게렘으로 불렸던 라못라헬은 어떤 사람들이 살아 왔는지 느헤미야 3장 14절에서 확인해 봅시다.
그러므로 목동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조상인 레갑 족속의 신앙을 추적해 보아야 합니다. 여호야김 시대 이 스라엘이 타락하기 시작하자, 하나님께서 참 신앙인의 샘플을 보여주기 위하여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레갑 족속을 세웁니다.(렘35:1~19) 레갑 족속을 성전에서 가장 잘 보이는 방으로 모이게 하여 포도주를 마시라는 명령을 내립니다.(렘35:5) 하지만 그들은 왕과 고관대작들이 모여 있는 앞에서 일언지하에 포도주 마시기를 거절합니다.(렘35:6) 레갑 족속이 포도주를 마시지 않은 것은 300년 전 그들의 조상 요나답이 주었던 명령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요나답은 후손들에게 3가지 1)영원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2)장막에 거하며 3)파종하거나 포도원을 소유하지 말 것을 명령합니다.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는 것은 우상숭배의 매개물이었던 포도주를 거부하라는 의미이며 결국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장막에 거하라는 것은 집을 짓지 말라는 것인데, 이는 이 땅의 기업을 붙들지 않고 영원한 본향을 바라며 살라는 명령입니다. 파종하지 말라는 명령으로 레갑 족속은 당시 비천한 직업 중의 하나로 여겨졌 던 목축업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Q : 레갑 족속의 요나답이 후손들에게 주었던 3가지 명령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리고 각각의 의미를 되새겨 봅시 다.(렘35:6,7)
그런데 이 명령이 역사의 아이러니로 작용하여, 후에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침공할 때, 당시 천한 직종으로 여겨 졌던 목축업을 하던 레갑의 후예들은 잡혀 가지 않고 예루살렘 근처 벧학게렘에 모여 목동으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 다.(렘35:11; 느3:14) 그리고 레갑의 후손들에게는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이 주어 집니다.(렘35:18,19) 요약하자면, 레갑 족속들은 300년이 지났음에도 예레미야가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앞에서 시험할 때까지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따라 비천한 직업을 택해서 장막에 거하며 조상 대대로 목축을 하는 순종의 길을 가면서 오실 메시야를 대망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메시야가 오실 때, 온 세상은 소동하였으나(마2:1- 3), 목자들만은 세상이 가져다주지 못하는 평화와 기쁨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눅2:14)

Q : 레갑 족속의 순종의 삶에 주어졌던 약속과 복은 무엇입니까?(렘35:19; 눅2:14)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고대하는 이 시대의 레갑의 후예들로 순종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오늘날 레갑의 후예들은 성도이어야 합니다. 다시 오셔서 성도의 눈물을 닦아 주실 주님께서 고통이 없는 세상을 가져오실 것을 고대하는 신약의 레갑 족속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때로는 바보처럼 때로는 이 땅의 불이익을 감내하면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 순종의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젊은 형제, 자매가 많은 삼일교회는 이번 성탄만큼은 타락한 문화를 거부하고 레갑의 후예들이 기다림의 규칙을 약속하고 지켰던 것처럼 구주나심의 기쁜 소식을 삶으로 각오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두 가지 과제가 삼일교회에 있습니다. 성탄의 기쁜 소식은 만민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레갑의 후예로서 삼일교회는 오늘도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듣지 못한 채 스러져가는 캄보디아, 대만, 일본, 미얀마, 통영, 장흥, 목포의 현장을 향해서 교회적으로 제시된 명제 앞에 순종해야 합니다. 들녘에 허기져 있는 백성들에게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마14:16) 그리고 또한 낮고 천한 곳, 어둠의 땅으로 주님의 부유를 가지고 흘러가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과 관심이 흘러가야 합니다.

2019년 2월 7일 CBS 성서학당

송태근 목사는 CBS 성서학당(2019년 2월 7일) 강연 동영상에서. 누가복음 4강을 다루었다. 누가복음 2:8-14절을 본문으로  "왜 목자들에게 나타났나?" 라는 주제를 다루었다. 송태근 목사는 강의에서 이렇게 언급한다. 최대한 송 목사의 발언 그대로를 담아낸다.

자, 그러면 세 번째로, 우리는 성경의 흐름을, 따라 들어가서, 좀, 설명을 들어보십시다. 제가, 2007년도에, 아주 오래전이죠. 2007년도에, 두 번째 안식년을 맞으면서, 교회에서, 성지 순례를 보내줬어요. 두 주간. 그래서, 마침 그, 교회에 또 오래 근무했던 부교역자와 함께, 이렇게 가게 돼서, 감사한 마음으로, 이제 성도들의 도움과 기도로, 처음으로 성지 순례를 떠났는데, 성지 순례도, 여러 유형이 있지 않습니까? 뭐, 크루즈 성지 순례도 있고, 지중해를 돌아다니는 순례, 뭐, 유럽의 종교 개혁, 다 성지 순례죠.

그런데 저는, 이제,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태어나셨던 동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해서, 그 주변, 이스라엘을 좀 집중해서 보고 싶어서, 일단, 예루살렘으로 갔어요. 그때 이제 그, 브엘세바 대학에, 고고학을 전공하는 제 후배가, 이제, 고고학, 박사 과정에 있는 분이었는데, 이분이, 시간을 내줘서, 이제, 이분의 안내로, 정말 그, 전문적이고, 학문적인, 철저한, 고증이, 담보된, 그런, 투어를, 운 좋게, 하게 됐습니다. 은혜로.

저는, 가서 깜짝, 놀란 게, 베들레헴이, 이스라엘 땅에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보통, 그렇게들, 알고 있죠.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땅에 있는 게, 맞는데, 지도를, 이렇게, 그려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지도는, 쉬워요. 이게, 지중해예요. 그리고, 이제, 여기는, 요단이, 이렇게, 여기 이제, 사해가 있고, 그러면 이제, 여기는, 요단 동편 쪽이고, 이제, 이게 서쪽이죠. 그리고 여기가, 예루살렘이라면, 베들레헴은, 여기서, 조금 내려가요. 여기, 이쯤, 정도가, 베들레헴입니다. 여기가, 예루살렘인데, 그러니까, 이 거리가, 차로 한, 20분 정도 거리, 가깝죠. 근데, 이, 베들레헴 쪽은, 팔레스타인 땅이에요. 가보면.

베들레헴 분리장벽 안에 자리잡은 분리장벽
베들레헴 분리장벽 안에 자리잡은 분리장벽

그래서, 여기, 들어가려면, 철조망의, 국경선을 지나듯, 이렇게, 검사를 받고, 들어가야 합니다.그런데, 얼마나, 삼엄한지, 딱, 들어가니까, 벌써, 눈빛이, 달라요. 감시와, 불안과, 벌써, 이렇게, 험한, 세월을 겪은, 사람들의, 그 표정과, 그, 무덤덤한, 눈빛들. 근데, 저희가,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좀 늦어서, 저녁 무렵, 들어갔어요. 그리고 이제, 급히, 베들레헴 교회(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를 말하는 듯 - 편집자 주)하고, 뭐, 구경하다가, 시간 됐다고, 소리를 지르고, 나가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얼른, 나왔어요. 아, 또, 나와야 돼요. 아니면, 여기서, 유숙을 해야 되는데, 그럴 계획은, 뭐, 안 세우고, 들어갔기 때문에, 그런데 너무 아깝더라고요. 베들레헴 땅을, 그냥, 저녁 무렵, 잠깐 갔다가, 왔으니까. 

그래서, 그 후배를 졸라 가지고, 다음 날, 위험하지만, 또 한번 가보자. "아, 괜찮겠냐?"고. “야, 여기 오느라고, 본전 생각난다. 아이고 그래도, 좀 한 번 더 가보자.“ 그래서 이제 살살 그분을 꼬셔가지고, 그다음 날, 또 갔어요. 그래서 이제 천천히 다 구경을 하고 나오는데, 이분이 “아, 목사님! 다른 데는 안 봐도, 여긴 꼭 가셔야 됩니다.” 어딘가 봤더니, 이 베들레헴 땅에 있는덴데, 목자들의 교회가 있어요. "목자들의 교회". 보니까, 거기가, 어디냐 하면, 베들레헴, 언덕에, 자리 잡은 교회인데, 그, 목자들을 기념하는 교회가, 거기에 하나 있더라고요. 지금도, 목자들이, 거기서, 양을 치고, 살아요.

근데, 이제, 거기까지 구경하고, 나오다가, 아, 이분이, 그냥, 무심히, 지나가는 말로, “여기가, 원래는, '벤학게렘'(송 목사는 강의에서 벤학게렘으로 말하고, 그렇게 적고 있다. 그러나 벧학게렘이 개역한글판 성경에 나오는 지명이다.)이었는데, 지금은, 라못라헬이라는, 지명, 행정명을 씁니다.", "그래요?" 

그래서, 제가, 이, 성경을 읽다가, 현재 이름이, 뭐라고, 그랬죠? '라못 라헬', 근데, 원래는, 벤.학.게렘(벧학게렘이 개역한글판 성경에 나오는 지명이다.), 아, 이분이, 이제, 고고학 박사 과정에 있는 분인데, "목사님, 여기는, 원래, 벤학게렘(벧학게렘이 개역한글판 성경에 나오는 지명이다.)이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현재는, 행정명으로, 라못라헬로 이름이" 바뀌었대요.

그런데 그 얘기를 듣다가, "어, 가만히 있어 봐, 지금 뭐라 그랬지?", “예, 원래 벤학게렘 이었어요” “벤학게렘(벧학게렘이 개역한글판 성경에 나오는 지명이다.)이면, 이게 성경에 나오는 이름인데?”, “예, 맞아요. 선배님, 성경에 나오는 이름이에요.” 그래서 얼른, 돌아와 가지고, 성경을 찾아봤어요. 찾아봤더니, 나올까요? 안 나올까요? 나와요. 느헤미야서 3장을 찾아보세요.

 

정리하는 글

여기서 확인하여야 하는 것이 있다. 목자들의 교회가 어떻게 하여 벧학게렘(Beth HakKerem) 또는 '라못 라헬'(Ramat Raḥel)로 소개가 된 것인가? 2007년 당시 브엘세바( Be'er-Sheva)에서 고고학 박사과정을 하고 있(었)다는 이는 누구였을까? 그는 정말 그렇게 말한 것일까? 2007년 당시 베들레헴은 한국인이 오고가기에 긴장되는 곳이었을까?

라맛 라헬은 이스라엘 예루살렘 지역에, 목자들의 들판 교회는 팔레스타인 베들레헴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행정구역상 전혀 같은 곳이 아니다.

 

목자들의 교회는 목자들의 들판 교회(Chapel of the Shepherds' Field)로도 불리는 곳을 지칭한 것 같다. 베들레헴(Bethlehem)시 남동쪽에 자리한 베이트 사후르(Beit Sahour)에 자리하고 있다. 기원전 8세기 전후의 철기시대 유적이 나온 라맛 라헬이 벧학게렘의 유력한 후보지이다. 그렇지만 베들레헴에서 남동쪽으로 1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또 다른 후보지 헤로디움(Herodium)과 근처의 드고아(Teqoa) 지역과도 거리가 떨어져 있다. 그런데 헤로디움이나 드고아 지역은 라맛 라헬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목자들의 들판 교회 구역의 동굴 예배처
목자들의 들판 교회 구역의 동굴 예배처

송태근 목사의 두 번의 설교 내용과 CBS 성서학당 강의 내용은 같다. 또한 2010년 12월 14일자 기독신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교단의 교단지)에 실린 사설의 내용이 거의 같다. 송 목사가 합동교단 소속인 것을 고려하면, 해당 사설을 쓴 이가 송 목사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설을 쓴 이와 송 목사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다른 이의 글(말)을 그대로 가져다 자신의 설교와 강의에서 사용한 것이 된다.

이같은 주장의 일차 출처가 누구이든, 레갑 후손과 예수 탄생 시기의 베들레헴 목자를 연결하는 것은, 근거가 없거나 억지스런 부족한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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