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비춰주는 것에 더 주목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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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12월 1일)에 이루어진 설교 가운데,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다. 설교자의 설교를 다시 읽어본다. 관련 본문은 마태복음 27:15-18절이다. 설교자는 요한복음 5장의 이야기로 그의 설교를 시작한다.
우리가 "내 영혼아 하나님을 갈망하라"라는 제목인데요. 어디에서요? 이 땅에서 이 땅에서 그런데 이 땅은 어떤 땅인데요?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야, 너희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은 이런 모습이야", 그리고 "그 세상에서 복음은 이런 태도를 갖고 있을 거야"라는 말을, 2천년 전에 해주셨어요.
그러니까, 요한복음 5장에 베데스다 못가, 워낙 유명하니까, 베데스다 못가에서 38년 된 병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가끔 하늘에서 내려와서 물을 동하게 하면, 어떤 병에 걸렸든지,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낫게 되는 거예요. 그 사회가 뭐예요? 우리가, 그때 당시에 사는 사람들이 삶의 모습이고,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인 거예요. 조선시대 때, 우리 때, 뭐가 달라졌어요? 조선시대에는, 말 타고 가마 타고 시집 가고 장가 갔으면, 지금은 자가용 타고 가는 거예요. 뭐, 별다를 게 없어요. 거기에서, 뭐예요? 나만 먼저 나오면 돼. '이기주의', '개인주의'.
또 38년 된 병자입니다. 언제 그가 들어가서 낫지? 양육강식(약육강식) 그러고요. 야, 똑똑한 사람들은요. "물이, 이게 얼마 전에 이렇게 동했는데, 이게 주기로 보면, 분기마다, 이렇게 동해. 그렇다고, 지금, 한 2주 전쯤에 물이 동했으니까, 당분간은, 물 동할 게 없어. 어느쯤, 되면, 그때쯤, 기다리는 게, 제일 좋을꺼야". 뭐예요? '기회주의'.
그리고요. 그 사람, 베데스타 못가에 수많은 사람이 있어서, 먼저 들어가면, 낫는 거예요 뭐예요? '경쟁 사회' 그리고요, 다, 아퍼 아퍼. 뭐예요? '환자들의 사회'.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그림으로 보여주셨다니까요. 베데스다 못가를 통해서. 무슨 사회? '이기주의', '개인주의', '물질주의'. 몸뚱이만 나으면 되는 거예요. 그리고 '기회주의', '양육강식"(약육강식), 환자들의 사회. 이게 우리들이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의 모습이에요. 그럴 때, 복음은, 어떤 대접을 받아요?
설교자는 자신이 인용한 베데스다 연못이나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는 베데스다 연못의 정체, 38년 된 병자의 삶의 자리, 그리고 연못에 얽힌 전설의 의미에도 무관심하다. 이곳에 있던 두 개의 연못이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와 치료의 신 아스클레피우스(Asclepius)와 관련이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결국, 이 설교는 설교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위해 성경 본문이 단순히 도구로 소비되는 인상을 준다. 본문에 대한 역사적 해석이나 문법적, 문예적 해석은 전혀 담겨 있지 않다. 예수는 베데스다 연못, 그곳의 환자들, 그리고 38년 된 병자를 주목하지만, 설교자는 예수도, 그곳도, 그곳의 사람도 주목하지 않는다. 이 점이 아쉽다.
이글을 맺으면서 아래와 같은 찬양 가사를 다시 읽어본다. 제목은 "하나님 눈길 머무신 곳"이다.
하나님 눈길 머무신 곳 그 곳에 내 눈 머물고
하나님 손길 닿으신 곳 그곳에 내 손 닿으리
하나님 마음 두신 그 곳 그곳에 내 맘도 두고
하나님 계획하신 그 곳 그곳에 내 삶 드리리
경배합니다 주님 주님만 닮게 하소서
나 예배합니다 주님 주님만 꽃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