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드뮤지엄 방문기(2)
미국 원주민 기숙학교 전시관
미국 원주민 영혼과 수난의 기록

[뉴스M=마이클 오 기자] 가위 소리가 이토록 차갑고 섬뜩하게 들린 적은 없었다. 이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내딛자, 귀속을 파고드는 서늘한 소리다. 한 움큼은 됨직한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는 뭉툭하고도 날카로운 소리, 마치 비명 같다. 유리 벽 속에 진열된 이발소 의자 주변 아무렇게나 흩어진 머리카락과 내팽개쳐진 땋은 머리는 주검처럼 쓰러져있다.

허드뮤지엄 2층 '머나먼 고향' 전시관
허드뮤지엄 2층 '머나먼 고향' 전시관

'머나먼 고향’(Away From Home)

허드뮤지엄 전시관 ‘머나먼 고향’(Away From Home)’의 시작점이다. 원주민 기숙학교에 대한 참혹하고 잔인한 기록을 품고 있다. 안내문에는 “1879년부터 시작된 미정부 주도하의 기숙학교는… 오늘날까지도 원주민 공동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있다고 소개한다.

전시된 이발소 의자를 지나면 기숙 학교 도착부터 시작되는 교육 과정과 그 가운데 자행되었던 끔찍한 폭력과 죽음에 대한 자료들이 펼쳐진다. 당시 사진과 증언과 정부 문서 등 다양한 기록들이 참혹한 역사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원주민 기숙학교는 19세기 ‘인디언 전쟁’ 막바지 ‘인디언 문제’에 대한 국가적 논쟁의 결과로 나온 정책이다. 당시 미국 정착민은 원주민과 빚어지는 지속적인 무력 충돌을 피하기위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심하고 있었다. 그 결과 “강제 동화 정책”을 고안해 낸 것이다.

이런 방안을 도출해 내는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관리들의 사고방식은 냉정하고도 반인륜적이었다.

"정부 관리들은 전쟁을 치르는 것보다 원주민을 교육하는 것이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디언 문제국 커미셔너였던 칼 슈어츠는 1881년에 전쟁에서 인디언을 죽이는 데 거의 100만 달러가 든다고 추산했으나, 인디언 아이를 8년간 학교에 보내는 데는 단지 1,200달러가 든다고 추정했다.” (머나먼 고향 안내문)

기숙학교는 원주민의 삶을 존중하고 개선하기 위한 도움의 수단이 아니라, 단지 이들을 죽여 없애는 것보다 저렴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사육에 가까운 훈육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인간 생명과 가치를 돈에 따라 계산하고 처리하는 야만을 그대로 드러낸 결정이다.

기숙학교를 창안한 리처드 프렛이 남긴 어록에서도 원주민에 대한 야만적인 태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어느 위대한 장군이 말한 대로, 유일하게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인디언 인종을 죽이고 그 안에 인간을 구해내야 한다.”

자칭 기독교 개혁가이자 당시 인디언 권리 협회 설립자인 허버트 웰시 또한 기숙학교에 대해 ‘야만인을 위한 문명화’라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인디언을 야만의 어둠에서 기독교 문명의 밝은 새벽으로 끌어내고자" 한다고 말했다. 목표는 인디언 문화의 근절을 의미하며, 교육은 이를 위한 도구라는 것이다.

U.S. Army officer Richard Henry Pratt, 기숙학교 창안
U.S. Army officer Richard Henry Pratt, 기숙학교 창안

“The Beginning Of The End”

이런 야만적인 프로젝트는 끌려온 아이들뿐만 아니라 원주민 공동체 전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특히 퀼트 작품 ‘파멸의 시작(The Beginning Of The End)’은 단순하고도 무심해 보이는 묘사를 통해 이런 폭력과 상처의 과정을 한층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분리, 재배치, 그리고 이주라는 원칙에 따라 원주민 아이들은 강제로 가족으로부터 끌려 나와, 불안과 두려움에 가득 찬 수일 동안의 기차여행 끝에 기숙학교로 보내진다. 남겨진 가족들은 망연자실 생이별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이뿐만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를 이어가야 할 후손을 상실함으로써 미래 또한 박탈당하는 결과를 맞이한다.

아이들 또한 잔인한 동화 교육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정신적 육체적 트라우마에 빠진다. 인디언 감옥에서 시행되던 통제 방식과 폭력적인 기독교 문명화 교육이 합쳐진 결과다.

원주민 기숙학교 경험을 표현한 퀼트 작품
원주민 기숙학교 경험을 표현한 퀼트 작품

기숙학교 도착과 동시에 아이들은 머리를 잘리고 입고 있던 옷을 빼앗기며 제복을 착용당한다. 또한 학사 일정이 시작됨에 따라 마음대로 추측된 나이에 따라 새로운 생년월일을 부여받고 기독교식 이름이 붙여진다. 원주민 아이들의 육체와 영혼 모두 철저하게 거부당하고 재단되는 과정이다.

교육 과정 또한 원주민 전통문화와 정신을 말살하고, 식민 자본주의에 기여하는 부속품을 생산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기숙학교 교과 과정 첫 번째 목표는 영어 교육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언어를 금지당하고 영어만 사용해야 했으며, 이를 어겼을 때는 끔찍한 체벌과 처벌이 가해진다. 이 외에 산수, 역사, 과학 등의 과목은 최소한의 수준에서 교육될 뿐이다.

또한 아이들은 전통문화와 공동체적 정체성을 거부당하고 근대적 개인이 되는 훈련을 받고, 기독교인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훈육된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받는 교육의 주안점은 하급 노동자로 거듭나는 직업교육이다. 학교와 병원과 요양소 등에서 이루어지는 세탁, 바느질, 청소, 설거지, 요리 등을 배운다. 이뿐만 아니라 교육의 이름으로 이들은 다양한 곳에서 강제 노역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런 교육 과정 외에도 아이들의 모든 행동과 생활은 철저하게 군대식으로 관리된다. 기상 시간부터 취침까지 모든 시간이 정해진 일정대로 진행되며 끊임없는 감시와 시험과 처벌 가운데 영혼이 제거된 기계가 되어간다.

육체와 영혼의 개조를 목표로 삼는 교육 과정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가치와 존엄이 설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아이들은 끊임없는 폭력과 학대와 방치에 영양실조를 비롯한 각종 질병과 정신 질환에 시달리고, 끝내 조용히 숨을 거두는 일이 흔한 일상이 된다.

기숙학교에서 생존한 로렌스 웹스터는 그가 경험한 기숙학교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죽음만이 유일하게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다…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너를 비로소 놓아주는 경우는 질병이나 죽음뿐이다.”

그리고 아이의 죽음을 맞이한 가족에게는 다음과 같은 친절한 편지가 전달된다.

“당신의 아들은 고통 없는 조용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대장부처럼 말이죠. 우리는 이 아이에게 좋은 옷을 입혔고, 내일 백인들처럼 매장할 것입니다.” (리처드 프랫, 칼리슬 인디언 학교 설립자)

'죽음만이 유일한 탈출구'인 원주민 기숙학교
'죽음만이 유일한 탈출구'인 원주민 기숙학교

폭력으로서 제국주의, 계몽주의적 이성, 그리고 기독교

안맹호 원주민 선교사는 이런 끔찍한 부조리를 안타까워하면서도, 인디언 기숙학교의 폭력성에만 경도되면 안 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더욱 끔찍한 폭력은 시대를 지배하던 계몽주의적 정신이기 때문이다. 지독한 자기중심적 사고로 똘똘 뭉친 계몽주의적 이성은 필연적으로 계몽의 대상을 타자화시키며, 이 과정에서 잔인한 폭력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원주민 기숙학교의 경우 기독교가 그 첨병이 됐다. 원주민을 미개한 타자로 취급하고 끔찍한 계몽의 대상으로 개조하는 프로그램은 바로 기독교 교육이 자처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 소자 하나라도 그 속에 하나님 형상을 담지하고 있다는 기독교 정신은 계몽주의의 세례를 받고 난 후 눈이 멀어, 신성은커녕 생명조차 무참히 짓밟는 권력 이데올로기로 둔갑한 것이다. 교육은 생명을 살리고 꽃피우기 위한 것인데, 오히려 더욱 끔찍한 종속과 죽음을 양산하는 수단이 됐다.

안맹호 선교사가 선교 여행의 시작을 허드뮤지엄으로 삼는 이유다. 제국주의와 계몽주의가 만들어낸 비극과 상처를 여전히 품고 있는 원주민에게 다가서기 위해 그 역사의 원죄와 폭력성을 인지하는 일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원주민을 미개한 타자로 바라보고 계몽주의적 문명의 ‘은혜’를 베풀기 위해 다가서는 것을 원주민 선교로 이해하는 기독교 선교는 더욱 끔찍한 폭력의 재현일 뿐이다. 그는 허드뮤지엄을 거쳐 가지 않는 선교는 가능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안맹호 원주민 선교사
안맹호 원주민 선교사

참회와 사죄

그나마 다행은 미국 정부와 교회가 사죄와 회개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끔찍한 원주민 학살과 억압이 일어난 지 너무나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찾아온 뒤늦은 소식이다.

미국 교계의 고백과 회개 운동은 시작은 1996년 미국 감리교단(UMC) 총회에서 시작했다. 1864년 샌드 크릭 학살 사건에서 감리교 평신도 목회자였던 존 쉬빙턴 기병 대장이 저질렀던 만행과 당시 교회의 칭송에 대한 참회와 사과가 있었다.

이를 시작으로 미국 장로교(PCUSA), 북미 기독 개혁교회(CRC),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 미국 성공회(Episcopal Church) 등 미국 주요 교단에서 최근까지 원주민 학살과 기숙학교에 대한 사죄와 참회가 이어졌다. 특히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교단으로 알려진 남침례교 단에서도 2022년 기숙학교에 대한 사과를 발표해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미국 정부 또한 클린턴 정부와 오바마 정부에서 원주민에게 저지른 과거 잘못에 대해 공식 사과를 하고 인디언 주권을 인정하는 등 다양한 화해의 노력이 이어졌다. 이뿐만 아니라 2009년 8월에는 공화당 출신 상원의원 샘 브라운 백이 주도, 원주민에 대한 역사적 사과의 결의를 끌어내기도 했다. 진보 보수를 넘어 역사적 과오에 대한 초당적 사죄가 일어났다.

안맹호 선교사는 비교적 최근 로마 교황청에서 발표한 “독트린 오브 디스커버리” 폐지(2023년 3월 30일)가 인상적이었다고 언급했다. 1452년 니콜라스 5세 교황 칙령으로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켜온 교리를 거부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제국주의 시대 개척자들의 점령지 소유권을 용인하는 교리로 그 잘못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행위였다. 안맹호 선교사는 이 감격스러운 순간을 지켜보면서 한편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안위를 걱정할 만큼 충격적인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미국 전역에 설치된 원주민 기숙학교
미국 전역에 설치된 원주민 기숙학교

기독교와 기억의 문제

허드뮤지엄의 존재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미국 교계와 정부 사죄의 물결은 한국 교회와 겹쳐보면 묘한 이물감을 불러일으킨다.

미국의 어두운 역사만큼이나 한국 근현대사에도 죽음의 그림자는 짙다. 한국 교회 또한 어두운 시대에 빛을 비추기보다는 오히려 진리를 가로막고 죽음의 그림자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거쳐 제주 4.3에서 서북청년단의 기독교 연루, 이승만 정권하에 일어났던 수많은 민간인 학살에는 눈을 감고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 정권을 찬양하고 부역한 역사는 한국 교회의 부끄러운 단면이다.

이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불의한 권력의 눈치를 보며 세월호, 이태원 참사 등 각종 사회 참사를 폄훼 은폐하는 극우 기독교의 모습은 끊임없이 비극을 연장하고 있다.

현재 미국 기독교를 총체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난날 역사적 과오에 대한 참회와 회개의 노력은 분명 한국 기독교가 처한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마치 역사와는 무관한 종교인 것처럼 행동한다. 오직 내부의 이야기와 논리로만 작동하는 기묘한 공간이다.

하지만 기독교는 기억의 종교다. 구약과 신약을 가로지르며 외치는 쉐마 이스라엘(신명기 6:4-9)의 말씀은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한다. 이 하나님은 역사 가운데 그의 백성과 동행하며 구원하는 신이며, 역사 그 자체를 이끌어 가는 분으로 인식된다. 다시 말해 기독교는 역사 안에 활동하는 신에 대한 기억이자, 그 가운데 창조되는 신의 역사 그 자체다. 기독교는 기억으로 숨 쉬는 종교다. 역사와 숨 쉬는 하나님처럼 기독교인도 역사와 함께 생동해야 하는 것이 기독교 정신이다.

하지만 한국 기독교는 역사를 잊은 듯하다. 지난날 비극적인 역사에 대한 성찰은커녕, 그 역사 가운데 자신들의 과오조차 철저하게 망각하고 허구적인 종교 신화에 빠져 살아간다.

한국 기독교는 기억을 회복해야 한다. 기독교가 어떤 종교이며, 또한 그들이 어떤 과오를 범했는지 철저하게 기억하면서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한다.

허드뮤지엄은 그런 기억을 상실했을 때 어떤 결말이 다가오는지 정확히 경고하고 있다. 원주민 기숙학교라는 참혹한 기억은 바로 미국 교회의 기억 상실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 기억상실이 종교를 타락하게 한다. 나아가 국가 권력과 결탁하고 폭력과 죽음을 생산하는 기계로 전락하게 한다.

한국 교회도 이런 기억 상실의 위험을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봐야 한다. 자신의 과거에 대한 철저한 기억을 통해 참회에 이르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정의로움에 대한 기억을 회복해 참된 구원의 종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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