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교회가 직면해야 할 인디언 선교 실패의 역사

수백 년의 선교 역사를 지닌 미국 원주민 선교가 왜 오늘날 실패로 보고되고 있으며, 왜 그들은 이런 선교 역사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원주민들은 기독교를 배타적으로 인식하고 있는가?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이유를 든다면 다음과 같다.

미국 원주민 선교가 실패로 얼룩진 이유가 궁금한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디언 살육을 
정당화했던 존 시빙턴 목사.
일명 '싸우는 목사'로 명성을 날렸던 그는
'알을 그대로 두면 이가 되는 법'이라고
말하며 인디언 학살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출처 : wikipedia)

가장 중요한 이유로서 선교사역이 인디언들의 자발적인 동참이 없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생존권을 박탈당하는 상황에서 선교사들의 사역이 그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선교사들이 당시의 백인우월주의에 바탕을 둔 세계관과 신학의 범위를 넘어설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원주민들에게 어떤 다른 핍박보다도 더 심각한 상처를 안겨주게 됐다.

당시의 기독교 선교는 헌신적으로 섬기는 모습이기보다는 탐욕적이고 허위적인 모습인 경우도 많았다. 19세기 이래 선교활동의 많은 부분이 정부 시책과 동반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인디언 지역 내에서의 선교 활동을 위해서는 연방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했으며, 이에 따라 정부는 선교 활동의 필요한 토지와 제반 편의를 제공하는 대신에 선교사들은 정부 정책의 수행자로서의 업무도 동시에 감당해야만 했다.

백인들의 수탈을 일선에서 도왔던 선교사들

선교 사역에만 전념해야할 선교사가 정부 정책의 수행자로서의 행동해야 했던 사실은 기독교 선교역사에 있어서 돌이키기 힘든 오점으로 남아있다. 실제로 인디언들의 땅을 수탈하는 과정에서 선교사들의 설득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또 최근의 역사인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흑인 민권운동을 중심으로 소수 민족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찾기 시작하면서 미국 원주민 사회에도 역사적 각성이 일게 되었다. 근세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들이 당한 핍박의 역사 속에서 반백인적 및 반기독교적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며, 동시에 기독교의 잘못된 모습을 여러 곳에서 발견하게 된 것이 오늘의 선교 역사를 결정적으로 훼손하게 되었다.

원주민 선교의 실패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

미국 원주민 선교의 실패를 거듭 언급하는 것은 나름대로 중요한 이유가 있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미국 인디언 선교지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타의 선교지에도 적용될 뿐 아니라, 오늘날 지역 사회와 교회의 관계가 어려워져가는 지역 교회의 목회적 문제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오늘의 교회는 선교에 과도할 정도로 집착하고 있음에 반해, 정작 선교적 내용과 접근 방법에 대해서는 깊은 성찰이 부족하다. 이와 관련하여 기독교 선교가 인식해야 할 내용 몇 가지를 지적하면 아래와 같다.

1) 원주민의 도전이 거세어지고 있다. 꼭 원주민 세계만이 아니라 모든 선교지 상황이 이러한 추세에 이미 들어섰다고 보아야 한다. 가장 약하게 생각되어왔던 원주민들의 도전, 기독교 선교가 다시 정리해야 할 주제가 되었다. 한때는 밀리면 밀리는 대로,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순응하며 살았던 그들이 전열을 정비하고 반격에 돌입한 사건이라는 말이다.

2) 두 번째는 국가의 법이 결코 기독교에 일방적으로 후원자가 되지 않는다. 한때는 기독교 선교가 자국의 법과 정치에 힘입어서 정복과 약탈의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이제는 이러한 제도적 장치마저도 의지할 수 없는 형편이 된 것이다. 캐나다 기숙학교 사태가 이러한 상황 변화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관련 기사 보기)

3) 이러한 변화가 전 지구적이라는 사실이다. 이제는 어떤 오지에서 발생한 일도 다양한 루트를 통해 세계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그야말로 지구촌 시대가 된 것이다. 정치 경제적인 면에서만 세계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기독교 선교도 이러한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네트워킹의 시대다. 세계화의 바람은 전 세계를 하나의 소통권으로 만들어놓고 있는데 이는 원주민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세계의 원주민들은 1970년대 중반 이래로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네트워킹을 강화해가고 있다. 미국은 물론,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원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전 세계의 6,000여 원주민들이 이 네트워킹을 통해 상호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북미 대륙에 있는 인디언들이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친교와 화합을 도모하는 연합 행사인 파우와우. 이 행사에 참여하는 인디언들의 숫자와 범위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누가 인디언을 미전도 종족이라 했나?’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 기독교 선교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더 적극적이고 새로운 선교방법을 모색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원주민들의 도전과, 국가의 지원이 사라진 지금의 상황에서 기독교의 입장은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것으로 생각하는 부류도 있다. 그래서 오히려 더 폭력적으로 나가는 지극히 감정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냉철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변화를 강요당한다.  교회가 세속화 바람 속에서 자기부인의 정신을 상실하고 자기 갱신에 태만할 때 외부적 힘에 의해 변화와 갱신을 요구 당하는 현재의 교회 모습을 생각하면서

본질을 향한 갱신이다. 이러한 기회가 없었다면 오히려 재앙이었을지 모른다. 이들은 ‘미전도종족’이 아니다. 복음주의 선교단체들은 대부분의 미국 원주민 지역을 미전도종족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지만 이것은 기독교 선교의 입장에서는 물론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아도 불합리한 시각이다.

왜냐하면 기독교 선교의 입장에서는 미전도종족으로 분류함으로써 지나간 역사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며, 원주민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경험했던 한맺힌 역사가 왜곡당하는 또 한 번의 억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원주민들로부터 “우리는 잘못된 교회 경험을 했다”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 이렇게 볼 때 미국 원주민들은 ‘미전도 종족’이 아니라, ‘오(誤)전도 종족’이라고 불러야하지 않을까. 혹시 우리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을 이 부류 속으로 포함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안맹호 / 북미 원주민 선교사(Dana Minis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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