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조나 미국 원주민 박물관 "허드뮤지엄" 방문기 (1)
문명의 변두리에서 새로운 미래를 외치는 미국 원주민 예술

애리조나 피닉스에 위치한 미국 원주민 박물관 <허드뮤지엄> 방문기다. 박물관이 품고 문화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기억과 증언으로서의 의미 그리고 이를 통해 되돌아보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현주소를 1, 2부로 나누어 짚어보려 한다.

쏟아지는 태양 아래 광막하고 텅 빈 사막, 애리조나는 신화의 땅이다.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대지를 피와 땀으로 개척한 미국 백인의 성공과 희망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이 아메리칸드림의 공간 한가운데, 낯설고 불편한 건물 하나가 서 있다. 애리조나 대표 도시 피닉스 센트럴 지역에 위치한 허드뮤지엄이다. 백인 개척 신화에서 빌런 역할을 했던, 이제는 역사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미국 원주민의 전통문화와 예술과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백인 개척-성공 서사 한 가운데 돌출한 이 박물관은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허드뮤지엄(미주 뉴스앤조이)
허드뮤지엄(미주 뉴스앤조이)

소박한 원주민 전시관에서 살아 숨 쉬는 영혼의 쉼터로

1929년 시작한 허드뮤지엄은 설립자 드와이트 & 메이 허드 부부가 설립했다. 소박한 미국 원주민 수집품 전시로 시작한 박물관은 어느덧 연간 25만 명 방문자를 자랑하는 지역 명소가 됐다. 12개의 전시관에서 원주민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는 고고학적 유물과 공예품과 예술 작품, 그리고 망각을 거부하는 역사 자료가 다양한 관람객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원주민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은 투박하고 메마른 사막 한가운데 삶을 이어간 의지와 지혜를 엿보게 한다. 전시관 유리 벽 뒤에 무표정하게 박제된 물건 같지만, 조금만 가까이 다가서면 여전히 흐르는 시간을 넘어 바라보는 이에게 저마다의 이야기를 건넨다.

이들 전시품에 깃든 기억은 단순한 생존의 흔적이 아니다. 척박하고 고통스러운 환경 가운데에서도 면면히 이어온 자연과 공동체와 그 너머 진동하는 신비에 대한 사랑과 경외심의 고백이자 선언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원주민 예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원주민 예술

박물관 2층에 자리한 전시관 ‘HOME: Native People in the Southwest’은 이런 미국 원주민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2000여 개 전통문화 유품과 보석 공예품과 도자기 및 바구니 전시물 등에 새겨진 색과 문양과 모양은 이들이 얼마나 풍부하고도 깊은 정신적 유산 가운데 호흡했는지를 보여준다.

안맹호 애리조나 원주민 선교사는 특히 전시된 나바호 부족의 가옥 구조를 주목했다. 현대 도시 문명에서 발견하기 힘든 원형 내부 구조다. 파편화되고 신화화된 개인주의적인 인간관을 그대로 반영한 오늘날 가족 공간과 달리, 원주민 가옥은 가족을 넘어 공동체 공간으로서 기능한다. 따라서 공동체 구성원이 한자리에 모여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공동으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평면적이고 원형적인 구조가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나바호 전통 가옥 '호간'에서 생각에 잠긴 안맹호 선교사
나바호 전통 가옥 '호간'에서 생각에 잠긴 안맹호 선교사

이와 더불어 권위적이고 수직적이며 때로 독점적인 의사 결정을 막기 위해 토킹 스틱(Talking Stick)이라는 도구도 언급했다. 대화에 참여하는 누구라도 발언하려면 토킹 스틱을 들고 있어야 하며, 나머지 구성원은 발언자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개하고 야만적인 이미지로 덧씌워진 원주민은 사실 현대 어느 민주적 사회 구조와 방식에 뒤지지 않는 조화로운 삶을 살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과거와 현재를 잇고, 미래를 상상하는 예술 혹은 미학적 도전

허드뮤지엄은 단순한 과거에 대한 향수 어린 회상이나 골치 아픈 현실을 잊게 하는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는다. 박물관이 소개하는 미국 원주민 예술은 일인칭 시점에서 그들의 과거를 재해석하고 그 가운데 자기 인식을 반영한다. 나아가 폭력에 기반한 문명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원주민의 영혼을 보여준다.

호피 카치나 인형
호피 카치나 인형

특히 ‘부드러운 조각품’이라 이름 붙인 카치나 인형 공예품은 이런 미국 원주민의 아우라를 잘 간직하고 있다. 카치나 인형은 호피 부족의 전통적인 종교와 세계관을 반영한 다양한 몸짓과 표정 그리고 소품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들은 현대 문명의 기호에 순응된 미적 기준과는 결이 다른 미학적 감흥을 전한다. 호피 고유의 전통적이고 고유한 미학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대 문명이 원주민 고유문화와 전통을 말살하는 과정에서 상실한 미적 감각을 조우함으로써 생기는 효과이기도 하다.

또한 각각 인형이 품고 있는, 얼핏 기괴하리만큼 강렬한 이미지 뒤에는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상징과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문명에 길들여진 이들을 향해 낯설고 새로운 세계가 먼 우주에서 날아오는 별빛처럼 빛나고 있다.

일부 카치나 인형은 기괴한 컬트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을 준다.
일부 카치나 인형은 기괴한 컬트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을 준다.

한편, 일부 카치나 인형들은 전통적인 주제를 머무르지 않고 원주민이 겪었던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몇몇 인형들이 들고 있는 십자가 형상과 항상 짝을 이루고 있는 피 묻은 칼이나 잘린 머리들은 관람객의 발걸음을 붙들고 침묵 가운데 전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어쩌면 종교와 문명의 이름으로 밀려온 죽음과 폭력에 억눌린 영혼들의 절규를 담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보게 하는 순간이다.

십자가와 함께 든 칼에 묻은 피는 누구의 것일까?
십자가와 함께 든 칼에 묻은 피는 누구의 것일까?

이런 관점에서 이 인형들은 자신이 겪은 물리적인 억압과 죽음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산종되어 되돌아오는 유령의 기억이다. 나아가 이런 유령의 기억으로서 그들의 예술적 존재는 세계를 향해 타자를 기억하고 돌보라는 윤리적 명령을 내리고, 이로써 세계는 죽음을 되풀이하는 미래가 아닌, 전혀 새롭고도 생명으로 가득 찬 미래를 열 수 있는 가능성을 수여받는다.

야외에 전시된 조각품 또한 현대 문명에서 상실되어 가는 공동체와 타자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상기시킨다. 박물관 입구에서 맞이하는 “Inter tribal Greeting(부족 간의 인사)”은 특히 열린 공동체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미국 원주민 후손인 작가 덕 하이드(Doug Hyde)가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다섯 부족의 여인들은 단순히 서로를 향해 인사하지 않는다. 이들의 인사는 단지 자기 공동체의 안위를 위해 상호 불가침의 계약을 맺듯 소극적 평화의 수단으로써 사용되지 않는다.

이들은 오히려 자신에게 열려있는 세계의 모든 방향을 향해, 마치 자신의 존재를 개방하듯 응시하고 있다. 제목대로 이 조각품이 ‘인사’에 관한 것이라면 이들은 세계와 타자를 향한 환대의 인사를 건네고 있다. 이미 자신과 공동체와 세계가 하나이며, 하나의 존재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존재론적 선언 혹은 적극적 평화를 외치고 있는 듯하다.

"Inter Tribal Greeting" by Doug Hyde우리의 인사의 방향은 어디일까?
"Inter Tribal Greeting" by Doug Hyde우리의 인사의 방향은 어디일까?

원주민 예술의 종말론적 세계관, 혹은 희망을 향한 노래

이처럼 미국 원주민들은 자신만의 전통 문화를 예술을 통해 보존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역사적 기억과 현재를 예술을 통해 고스란히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이런 원주민의 예술적 아우라는 그들의 실존적 선언일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세계를 향한 윤리적 책임을 묻는 신적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원주민의 예술 작품을 바라보면, 이들의 예술적 아우라는 성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를 연상시킨다. 비로소 폭력과 죽음이 사라진 세상, 모든 세계 만물 가운데 신적 평화와 조화가 강물처럼 흘러 생명과 존재 그 자체를 찬양하는 성경적 세계관은, 이들 원주민이 그려내는 예술의 세계와 같은 대기를 호흡하는 듯 하다.

원주민 공동체 축제, 교회 공동체는 이들만큼 열려있을까?
원주민 공동체 축제, 교회 공동체는 이들만큼 열려있을까?

 

저작권자 © 미주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