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었니?”
어느 날 지하철 안에서 어떤 소년을 우연히 만났다. 그 소년에게 마음이 끌렸고, 나도 모르게 그 말이 툭 튀어 나왔다. 우리는 함께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소년은 김치볶음밥을 맛있게 먹었다. 나는 그 이후 소년을 만난 적이 없다. 그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날의 기억만큼은 나의 가슴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때 나는, 무언가 쑥스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무조건 뜀박질을 했다. 어느 순간, 쑥스러움과 민망함이 사라지고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몰려 왔다.
“그리하여 룻은 밭으로 나가서, 곡식 거두는 일꾼들을 따라다니며 이삭을 주었다. 그가 간 곳은 우연히도, 엘리멜렉과 집안간인 보아스의 밭이었다.”(룻기 2장 3절)
룻은 이삭을 주우러 나갔다가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갔다. 보아스는 룻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그는 룻의 마음을 사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인다. 추수하는 일꾼들에게 일부러 이삭을 흘리게 하였다. 룻이 다른 밭으로 가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하였다. 그리고 룻을 초대하여 함께 식사를 했다.
“먹을 때가 되어서, 보아스가 그에게 말하였다. 이리로 오시오. 음식을 듭시다. 빵 조각을 초에 찍어서 드시오. 룻이 일꾼들 옆에 앉으니, 보아스는 그 여인에게 볶은 곡식을 내주었다. 볶은 곡식은 룻이 배불리 먹고도 남았다.”(룻기 2장 14절)
‘배불리’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사바’(saba)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표현할 때 사용된 말이다. <신약성경>의 오병이어 사건에서도 동일한 표현이 나온다. “그들은 배불리 먹었다. 남은 부스러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마태복음 14장 20절)
“<그>는 누구인가?”
성경은 모호하게 말하고 있다. 보아스는 다윗의 증조 할아버지가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는가? 당연히 그럴리가 없다. 보아스는 ‘그때 거기에서’ 우연히 룻을 만났을 뿐이다. 그는 단지 ‘지금’ 만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열매을 바라보고 무엇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 만난 룻을 사랑했을 뿐이다.
“시어머니가 그에게 물었다. 오늘 어디서 이삭을 주었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이처럼 생각하여 준 사람에게, 하나님이 복을 베푸시기를 바란다. 그러자 룻은 시어머니에게, 자기가 누구네 밭에서 일하였는지 말하였다. 오늘 내가 가서 일한 밭의 주인 이름은 보아스라고 합니다.”(룻기 2장 19절)
<우연, 사람, 사랑>은 하나님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핵심 단어(key words)다. 룻은 우연히 보아스를 만났다. 보아스는 룻을 사랑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사랑을 할 때(when they love), 하나님나라의 이야기가 일어났다. 두 사람의 사랑에서 다윗 가문이 탄생하였다. <구약성경>에서 다윗 이야기는 하나님나라 이야기의 중심이며 상징이다. 그 이야기는 룻이 우연히 보아스를 만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우연이란, 하나님나라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공간이다. 사람이란, 하나님나라 이야기를 실현하는 통로다. 사랑이란, 하나님나라 이야기를 완성하는 종착지다. <우연, 사람, 사랑>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아래에 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인간의 상상력이 닿을 수 없는 영역이다. 인간은 단지, 지금 여기에서 만나는 사람과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며 실현할 뿐이다.
“KOSTA/USA는 간사공동체가 만들어가는 평신도 운동이다.”
내가 처음 KOSTA를 만났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간사들의 헌신과 프로 정신이었다. 물 위를 걷는 백조가 우아하게 보이려면, 보이지 않는 백조의 두 발이 열심히 헤엄을 치고 있을 때 가능하다. 간사들의 모습은 물 속에서 헤엄치는 백조의 두 발과 같았다. 그들의 보이지 않는 헌신이 KOSTA의 모습을 우아하게 빛내고 있었다.
KOSTA는 일 년에 한 번 치르는 단순한 수련회가 아니다. 3박 4일이나 4박 5일 동안의 보이는 코스타와 일 년 내내 보이지 않는 코스타가 따로 있다. 소위 ‘코스탄’(Kostan)들은 일 년 동안 삶의 자리에서 함께 고민하고 성찰하다가, 그것을 수련회 기간 동안에 풀어 놓는다. 간사들은 수련회가 끝난 이후부터 곧바로 코스탄 기독 청년들과 함께 ‘팔로우업’(follow-up)을 시작한다. 코스타에 참석한 기독 청년들의 고민을 품어 안고, 어떻게 하면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를 같이 나눈다.
이것은 ‘코스타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코스타 초창기는 목회자들이 미국 유학생들을 위해서 베풀어준 일회성 수련회 성격이 강했다. 그런데 코스타가 39년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내 자신이 코스타의 전체 역사를 말할 자격은 없지만, 현재의 코스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 코스타 출신의 ‘코스탄’들이 지금의 코스타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되었다. 이들은 ‘간사’라는 이름으로 스스로의 공동체를 만들어왔다고 생각한다. 소위, <간사공동체>가 형성되었고, 코스타를 섬기는 자발적인 기독청년운동으로 발전해 왔다. 이제는 코스탄들이 주체가 되어서 기독청년운동을 이끄는 중심이 되었고, 목회자들은 이들을 돕는 섬김이가 되고 방패막이가 되어서, 코스타운동의 토대를 만들어주고 있다.
코스타운동의 미래는 <간사공동체>의 지속성과 자발성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새로운 간사들이 배출되고 세워져야 할 것이다. 현재 20년 이상 코스타를 섬겨온 간사분들이 많이 계신다. 앞으로 이분들을 계승하는 새로운 청년 간사들이 계속 나와야 한다. <간사공동체>는 조직적인 체계에 의한 재생산이 아니라, 자발적인 참여와 헌신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전성민 교수는 밴쿠버 리젠트칼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영국 옥스포드대학교에서 구약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교대학원(VIEW)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민춘살롱’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사사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세계관적 성경읽기>, <팔복, 예수님의 세계관>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도킨스의 망상>(알리스터 맥그라스), <열왕기>(이안 프로반), <온 세상을 위한 구약윤리> (존 바턴) 등이 있다.
제이콥 리 기자 / <미주뉴스앤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