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구원 없이 인간의 구원 없다

서론

전 세계에서 이상 기온과 기후 변화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되고 도시가 붕괴되고 사람이 죽어가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지구는 더욱 뜨거워지고 북극에 얼음이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다. 지구 곳곳에서 동식물이 죽어가고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린다. 산이 불타서 생명들을 죽이고 바다가 마을을 덮치고 하늘에 구멍이 나서 물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다. 기후 위기로 인해 지구에 무서운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것은 과학자들을 비롯한 지식인들이 예언하였다. 18세기부터 시작된 산업화로 인해 지구는 탄소량이 늘어나게 되고 지금은 그 수치가 최고점에 이르렀다. 한 번 배출된 탄소는 사라지지 않는데 탄소제로 운동을 실천하지 않는 한 우리는 탄소에 질식당할 것이다. 기존의 자본주의와 경제의 법칙에 변화를 주지 않는 한 우리는 그 댓가로 탄소를 계속 얻게 될 것이다.

인간의 탐욕

최근에 일반 서적 뿐만 아니라 기독교 안에서도 기후에 대한 책이 몇 권 나오고 있다. 그만큼 기후 변화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위기를 감지했다는 것이다. 지금 지구는 홀로세를 거쳐 인류세를 맞이하였다. 지난 1만년 간 지구는 기후에 큰 변화가 없는 홀로세를 유지하며 평온함을 이어왔는데,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영향으로 지구 생태계가 파괴되고 대기가 오염되어 인류세가 되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지구의 건강과 상태에 미친 영향이 막대하기에 인류세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위기는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인간만이 모든 종 중에 가장 탁월하다는 우월함이 모든 자연을 착취하고 파괴하였다. 자연과 상생하고 협력해야 하는 존재인데 잘못된 지배와 무자비한 착취를 해온 것이다. 이미 우리는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자연을 훼손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삶으로 경험하였다.

우리는 기후 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도 잘 인식하지 못한다. 기후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기후 변화는 하나님의 영역이라 하나님이 고쳐주실 것이라고 한다. 정말 그러한가? 그렇지 않다. 지난 지구의 역사에서 기후의 변화가 자연적으로 일어난 것은 맞지만 18세기 산업화 이후에 기후 변화는 인간의 탐욕에 의한 것이다. 기후 재앙은 하나님이 내린 것이 아니라 인간의 스스로 불러낸 재앙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후 위기를 아무리 얘기하고 경고해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의 탐욕과 교만을 깨우고 생각을 새롭게 해주는 아주 좋은 책이다. 나의 성공에만 몰두하는 인간들에게 우리의 성공을 보게 해주고, 나의 구원에만 관심갖는 인간들에게 지구의 구원에도 관심을 갖게 해준다. 기후 변화는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우리가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한다.

제자도

교회는 기후에 관하여 관심을 갖어야 한다는 것이 생소할 수 있다. 기후 문제를 끌어안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 어색할 수 있다. 기복주의와 성공주의와 자본주의에 물든 기독교라면 이런 주제를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나의 행복을 넘어 모두의 행복을 위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만 잘 사는 것을 넘어 너도 잘 사는 세상을 꿈꿔야 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보편적이다. 민족과 인종과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은 차별하고 구별하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은 차별을 부수고 벽을 허문다. 그런 면에서도 교회는 기후에 관심을 갖고 이것을 위해 기도해야 하고 실천해야 한다. 아픔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가야한다. 하나님의 마음이 가난한 자의 편에 있는 것처럼 우리 또한 그러해야 한다.

제자도는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와 삶의 주인으로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분의 삶과 정신과 사상을 배우고 따르는 자이다. 또한 나의 시대에 문제와 아픔과 슬픔을 끌어안고 해결하기 위해 예언하고 싸우는 자이다. 기독교 역사에서 그 시대의 문제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해결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제자는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교회와 성도에게 어떤 제자도로 살아가야 하는지 구체적인 가이드를 제시해준다.

지구를 구원하라

서구 신학의 영향으로 개인 구원이 강조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영혼의 구원은 정말 중요하다. 교회는 영혼을 구원하는 곳이고 영혼이 거듭나는 곳이며 회심이 일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교회에 일차적으로 제일 중요한 사명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일반 사회 단체에서도 다 하는 일들이 교회에서도 제일 중요한 사명이 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교회는 변함없이 영혼 구원과 진리의 전파와 보존을 위해 세워진 곳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번 짚어 볼 수 있는 것은 서구 신학의 영향을 받은 교회가 신앙에 있어서 개인화된 점은 없는지 반성해보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복음주의를 배워온 자들이 한국에서 목회하며 사회의 요구와 개인의 욕망에 잘 부합한 협소한 구원만 강조해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개인의 구원을 넘어 지구의 구원을 보게 하고, 인간만 하나님을 사랑하여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피조물이 하나님을 사랑하여 드리는 예배로 목표를 재설하기를 제안한다.

내가 구원만 받으면 다 끝나는 것일까? 지금까지 우리의 가르침이 여기에 강조되어 온 것 같다. 신앙생활 할 때 기도도 이기적으로 할 수 있고 말씀 읽기도 자기 자랑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처럼, 개인 구원도 지극히 기복적인 성격으로 생각하는 위험을 보게 된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과의 일대일로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개인으로 얻는 것이지만, 나를 넘어서는 구원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교회가 구원을 다시 바라보고 목표를 재설정하도록 제안한다. 이미 저자는 기후라는 주제로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성도들과 공부를 하고 있다. 사람을 구원하는 교회를 넘어 지구도 구원하는 교회로 세상을 이롭게 하고 있다. 저자의 공부와 신학과 구원이 넓다. 세상처럼 성공을 달려가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이 가르쳐주는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교회 같다. 구원만 강조하면 무례해보일 수 있는데, 지구를 생각하는 모습은 친근하게 느껴진다.

결론

기후 변화가 찾아오면 이상 기온으로 모두가 힘들어지고 고달파진다. 지구 공동체가 심각한 고통을 겪는다. 그런데 이 고통은 공평하고 정의롭지 않다. 지구가 몸살을 하고 기후가 이상해지도록 자본주와 산업화에 앞장 섰던 자들은 그 피해를 적게 입고,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 있는 자들이 더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기후 변화는 식량난을 가져와 차별과 폭력과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모두 흑암의 세계로 들어갈 것이다.

그런 면에서 기후 변화는 불의하고 불공정하다. 죄 없는 자들이 모든 고통을 더 당한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복음은 정의와 공의를 추구한다. 그리스도는 의로우시고 우리는 그분의 뒤를 따르는 자이다. 기후의 위기는 지구의 위기이고 이것은 인류에게 고통을 가져다준다. 이런 시대에 교회에 주어진 사명이 있다. 기후 회복을 위한 실천은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고 구원을 향하는 것이다. 교회는 영혼을 구원하는 곳이지만 지구도 구원하는 곳이다.

방영민 목사  / 부전교회
이 글은 방영민 목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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