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이 무슬림에 대해 갖는 거리감은 다른 종교인에게 갖는 그것보다 더 큰 듯하다. 무슬림을 행한 배제와 혐오감은 타종교인에 대한 것에 비교할 수도 없다, 싶다. 어던 이들은 무슬림이 유럽 교회를 의도적으로 구입해서 이슬람 사원으로 바꾸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영국 교회의 교회당이 이슬람 사원으로 수없이 바뀌었다고도 말한다.
"영국의 경우 1976년 런던에서 열린 이슬람교 국제회의에서 런던을 유럽의 이슬람 도시로 만들자고 결의한 후 10년 이내에 런던에 1,500개의 이슬람 사원이 세워졌고 300개의 교회가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었다." - 코람데오닷컴(2016.03.18)
위의 주장은 1980년대 중반에 영국에 1,500여곳의 이슬람 사원이 세워졌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아래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2011년 기준으로 할 때 1,500곳 정도의 이슬람 사원이 존재한다. 1976년에서 10년 쯤이었다는 1980년대 중반에는 500여곳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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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표는 2011년 까지의 자료를 정리한 것이다. 2024년 현재 영국내 이슬람 사원의 수는 2,129개(https://www.muslimsinbritain.org/statistics/statistics01.php) 정도이다. 지난 13년 사이에 629개가 늘어난 셈이다.
무슬림 예배실에 있는 것: 끼블라
무슬림 사원에 얽힌 어떤 주장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에 앞서서 작은 이해가 필요하다. 그것은 무슬림 예배실의 특징에 연결된 것이다.
무슬림은 기도할 때 특정 방향을 향해 기도한다. 메카 방향이다. 개인이 기도할 때도 사원에 모여서 같이 기도할 때도 메카 방향으로 기도한다. 메카 방향을 알려주는 끼블라 나침반 같은 다양한 앱도 사용한다. 구글에서도 끼블라 방향을 알려주는 프로그램(https://qiblafinder.withgoogle.com/intl/en/desktop)을 제공한다. 무슬림 다수국가의 국적(항공)기는 물론 무슬림 다수 국가를 오고가는 외국 항공기 안에도 메카 방향을 알려주는 표시가 그려져 있다. 호텔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이슬람 사원에는 당연히 메카 방향을 나타내는 표식이 있다. 이것을 '끼블라'(Qibla) 또는 '끼블라 메카'로 부른다. 무슬림 예배실에 들어서면 당연스럽게 앞쪽에 끼블라가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대개는 타원형으로 된 구조물이 정면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카페트가 깔려 있는 예배실 바닥에는 기도자의 위치를 나타내주는 무늬 또는 줄이 그어져 있다. 무슬림 다수 국가의 이슬람 사원의 끼블라는 당연히 정면을 향하고 있다.
그런데 이 끼블라가 건물 정면이 아니라 귀퉁이에 자리잡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이면 기도할 때, 무슬림은 사각형으로 된 예배실의 귀퉁이 방향으로 줄을 선다. 공간 활용이 자연스럽지 않은 풍경이다. 이것은 무슬림 다수 국가 밖의 다수의 이슬람 사원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기울어진 끼블라
한국의 이슬람 사원의 경우, 자체 건물을 갖고 있는 경우는 이 끼블라가 예배실의 정면에 자리잡고 있다. 한국에서는 건물을 지을 때 정문이나 출입구, 정면 방향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그러나 상가 또는 다른 시설을 빌려서 무슬림 예배실로 사용하는 경우는 대부분 이 끼블라가 귀퉁이쪽에 자리잡고 있다. 건물의 자유로운 방향성이 무슬림의 끼블라에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는 더욱 난감하다. 도시 구획이 사각형으로 자리잡고 있는 미국 서부의 경우 이곳에 지어진 이슬람 사원 대부분에서 발견되는 풍경이 있다. 그것은 끼블라가 건물의 한 귀퉁이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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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이 교회를 사원으로 바꾸려고 한다?
무슬림 예배실은 천정이 높을 필요가 전혀 없다. 이것은 영국이나 유럽의 전통적인 예배당이 천정이 많이 높고 회중석과 정면 무대(이른바 강단) 사이에는 높이의 차이가 있다. 무슬림 예배실에는 높낮이가 있을 이유도 없다. 그리고 가독교 예배실의 정면 방향은 자유롭다. 무슬림 예배실은 메카 방향이 필수적이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기독교 예배실 공간은 무슬림 예배실로 사용하기에 그렇게 적절하지가 않다.
무슬림 다수 국가를 떠나 살고 있는 무슬림 이주자, 이민자도 그들의 예배 공간을 찾는다. 이 과정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계획적으로 교회 건물을 무슬림 예배실로 선택할 이유가 크게 없는 것이다.
한국 교회와 한인교회는 이미 다문화 사회에 살고 있거나 이제 다문화사회를 맞이하고 있다. 무슬림에 대한 경계를 요청하는 목소리에 닿은 채 살고 있기도 하다. 이런 현실에 아래와 같은 말을 다시 되새겨 본다.

"문제는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는 일 자체에 있지 않다. 다만 우리의 두려움이 종종 왜곡되어 있으며, 자주 지나친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는 것이 문제다. 이런 두려움이 좋지 않은 이유는 그로 인해 우리 삶의 초점이 선한 일을 추구하기보다 해롭고 악한 일을 피하는 데에만 편중되기 때문이다."(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5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