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엔조이에서 “손현보 목사 '한국을 아시아 최초 기독교 국가로 만들겠다'”라는 기사를 보았다. 기사에서 손현보 목사는 2~3년 안에 무슨 일이 있어도 교육법을 바꾸고, 기독교 대안 학교를 설립해 한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겠다고 했다. 2월 18일 왕성교회(길요나 목사)에서 '희망의 대한민국을 위한 한국교회 연합 기도회‘에서 한 말이다.
그곳에 같은 강사로 참석했던 이재훈 목사는 "교육 문제가 사회의 위기다. 기독교 학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 시대가 됐고 기독교 학교를 떠받치고 있는 건 교회다. 올바른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깨닫고 분별하는 능력이 어디서 나오겠는가. 교회와 기독교 학교가 다시 살아나면 대한민국이 다시 살아나고 한국교회도 다시 깨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내가 생각했던 한국교회 연합 기도회의 내용은 아니었다. 그들은 진지하게 말했고, 그들이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은 오늘날 탄핵정국을 통해 보고 있는 극우적이기만 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도 생각이 있고, 그들에게도 합리적인 이성이 작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이란 것이 참으로 혼란스럽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역시 세계관 문제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들은 제국주의 그리스도교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기에 Christendom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그들이 거기까지 도달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최근 나는 한 티브이 프로에서 “7세 고시”라는 말을 들었다. 오늘날 한국의 아기들은 태어나자마자 교육의 현장 속으로 들어간다. 기저귀를 찬 채로 학원의 각종 수업을 듣는다. 내게도 그만한 나이의 손자가 있어 그 내용이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경쟁 속으로 던져진다. 7살이 되면 유명 영어 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테스트를 치른다. 그런데 그 수준이 중·고등학생 수준이다. 사실 말도 안 되는 그 일에 부모들은 사활을 건다. 그래서 목적한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다른 학원에서 준비를 한다. 그 시험이 “7세 고시”다. 영어만이 아니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2년 전에 초등학교 과정을 모두 마친다. 고학년이 되면 중학교를 넘어 고등학교에서도 어려운 미·적분을 배운다. 이 모든 일들이 초등학교 4학년 전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일에 성공한 아이들과 실패한 아이들이 나뉜다. 물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돈이다.
학원 원장들은 아이들을 모으는 대신 아이들을 거절하는 방식으로 학원의 운영방식을 바꿨다. 그렇게 하니 경쟁이 심해져서 학원으로 아이들을 모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런 학원이 생기자 그 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 학원들이 번창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교육열풍은 아이를 가진 부모들에게 위기감과 불안감을 심어주었다. 유래가 없는 교육 지옥이 형성된 것이다. 인성이나 사회성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도태되지 않기 위해 돈을 쏟아 붓기 위해 돈의 노예들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위기가 출산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출산을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교육이 아니라 교육비라는 사실은 너무도 자명하다. 그래서 부자들만이 아이를 낳는 기현상이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이 되겠는가. 심각하게 생각해보라.
이런 상황에서 손현보 목사와 이재훈 목사가 교육의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학교로 그리스도교 교육을 시키겠다는 발상은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그런 그들의 세계관과 동성애 혐오 등을 이유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작금의 상황에서 보듯이 탄핵반대 집회를 여는 것이 옳은가?
그리스도교는 오래 전에 살짝 방향을 틂으로써 복음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국교가 됨으로써 그리스도교는 더 이상 평화의 복음을 간직할 수 없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샬롬이 아니라 폭력으로 이루는 PAX ROMANA를 평화로 아는 곳이 된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힘으로 세상을 정복하려는 제국주의 그리스도교가 되었고, 손현보와 이재훈 목사와 같은 이들의 사고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를 무엇에다가 비길까? 그것은 누룩의 다음 경우와 같다. 어떤 여자가 누룩을 가져다가, 가루 서 말 속에 섞어 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올랐다."
가루 서 말은 엄청난 양이다. 그러나 누룩의 양은 정말 미미하다. 가루 서 말에 누룩을 섞어 놓고 그것이 부풀기를 기다리는 것은 매우 어리석어 보인다. 하지만 가루 서 말은 온통 부풀어 올랐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가금씩 빵을 만든다. 그런데 발효를 해야 하는 빵들은 만들기가 망설여진다. 일차, 이차, 삼차의 발효를 거치는 것은 하루 이상의 시간을 요한다. 그래서 발효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빵들을 주로 만든다. 발효를 위해서는 이스트나 발효종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베이킹파우더를 넣는 빵은 바로 빵을 만들 수 있다. 이스트는 살아 있는 균이지만 베이킹파우더는 살아 있는 균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생명의 나라다. 그래서 이스트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살아 있는 균의 역할을 해야 한다. 생명은 사랑으로 발현된다. 그리고 그렇게 생명의 역사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제국주의 그리스도교가 된 그리스도교에서는 힘과 영향력으로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게 만든다. 힘과 영향력은 폭력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그렇게 이루어지는 나라는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없다. 이 명확한 사실을 오늘날 제국주의 그리스도교에 속한 사람들은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손현보와 이재훈과 같은 목사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복음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그리스도인들이 이스트와 같이 사랑의 역사에 참여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부풀지 않을 것 같던 거대한 가루 서 말이 부푼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상황을 보면 가루 서 말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예수님은 가루 서 말이 부풀어 올랐다고 선언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하면 된다. 가장 작은 겨자씨가 자라 새들이 깃드는 나무가 된다. 새삼 하나님 나라가 작은 자들의 나라라는 사실이 실감난다. 작은 자들만이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절묘한가.
힘과 영향력에 함몰되어 돈의 노예가 되는 일이야말로 복음의 가장 큰 함정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럽다.
하나님 나라를 실감하기 위해 좋은 균을 사용하여 발효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깜파뉴와 같은 빵에 도전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