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보 목사는 "한국을 아시아 최초 기독교 국가로 만들겠다"는 말을 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는 서울 시장 시절, 서울을 聖市로 하나님께 봉헌했다.

그렇다면 서울시가 聖市, 다시 말해 하나님의 도시가 되었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는 대답을 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소망교회의 장로이자 서울 시장인 이명박 시장이 하나님께 봉헌한 서울이 성시가 되지 않았는가?

이명박 장로의 믿음이 없기 때문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그의 봉헌을 받지 않으셨기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가?

그 이유는 명백하다. 하나님 나라는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하나님께서 그곳의 하나님 되시는 곳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임재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가장 분명한 전제조건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께서 그곳에 머무시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머무시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그분의 임재를 알 수 있을 뿐이다. 또 이스라엘에서 그러셨듯이 하나님은 언제든 그곳을 떠나실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명박 장로님이 봉헌하신 서울에 머물지 않으시는 이유를 알 수 있다. 하긴 궁금하긴 하다. 이명박 장로는 자신이 봉헌한 서울이 여전히 성시라고 믿고 있을까? 그분이 속한 소망교회 교인들은 이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기회가 닿으면 그곳에 다니고 있는 친구에게 확인을 해보아야겠다.

그리고 이명박 장로와 비슷한 말을 하는 목사가 나타났다. 손현보 목사는 한국을 아시아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만들겠다는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SAVE KOREA!라는 손 목사와 그를 추종하는 이들이 사용하는 구호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사고를 지닌 사람이 이명박 장로나 손현보 목사만이 아니다. 이런 사고는 오늘날 그리스도교 전체의 사고라는 사실을 우리는 볼 수 있고, 또 보아야만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힘과 영향력을 장악하여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사고는 소위 말하는 “고지론”이 대변한다. 코스타나 한동대와 같은 곳 역시 이런 사고를 기반으로 형성되었음을 추론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곳에 속하거나 참여하는 사람들은 거룩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열정을 가짜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진지하다. 그들의 진정성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사고가 “카인의 후예”들의 사고라는 사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런 사고는 밀라노 칙령으로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313년을 기점으로 시작되었고, 그리스도교가 국교로 공인된 392년 이후 그리스도교의 정통 교리로 자리를 잡았다.

그것은 그리스도교 제국주의, 혹은 Christendom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가 국교가 된 것을 국가와 교회의 혼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스도교와 국가와 혼인한 후 그리스도교는 세상의 하부구조로 전락했지만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그렇게 이루어진 그리스도교를 그리스도교로 아는 곳이 되었다.

작금의 탄핵정국에서 자신들의 십자군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등장한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그리스도교 제국주의 사고에서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였고, 종교재판소와 마녀사냥, 그리고 식민지 정복과 같은 것들이 그리스도교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이 모든 것들을 정당화할 수 있는 신학과 교리를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러한 사고가 바로 “카인의 후예”들의 사고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그리스도교에 대항하여 나 혼자의 맨몸으로 그것을 주장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가를 잘 알고 있다. 내가 그것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런 내 말을 아전인수나 자기합리화로 볼 수밖에 없음도 나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거꾸로 된 나라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근거다.

더 간단하고 정확하게 말하면 커지려는 것은 세상의 속성이고 작아지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속성이다. 누구도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사실을 최초로 부인한 사람이 바로 카인이고 그래서 나는 오늘날 그리스도를 지배하고 있는 사고가 “카인의 후예”들의 사고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너는 저 젊은이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알려라. '예루살렘 안에 사람과 짐승이 많아져서, 예루살렘이 성벽으로 두를 수 없을 만큼 커질 것이다. 바깥으로는 내가 예루살렘의 둘레를 불로 감싸 보호하는 불 성벽이 되고, 안으로는 내가 그 안에 살면서 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 … 나 주의 말이다. 바빌론 도성에서 살고 있는 시온 백성아, 어서 빠져 나오너라!'"

예언자 스가랴가 보았던 예루살렘의 모습이다. 이 예루살렘이 바로 聖市다. 우리는 여기서 聖市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미래의 聖市, 예루살렘에는 성벽이 없다. 카인이 하나님을 떠난 후 한 일은 성을 지은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안전을 도모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을 지어놓은 후 그는 그 성의 이름을 “에녹”이라 하였다. 에녹이란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성시인 미래의 예루살렘의 성벽은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불 성벽이 되시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聖市인 것이다. 인간의 봉헌으로 聖市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이 불 성벽을 파괴하거나 넘을 수 없다.

하나님 나라가 폭력이 없는 평화의 나라인 것은 하나님께서 불 성벽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 안에 사람과 짐승이 많아져서 예루살렘은 성벽으로 두를 수 없을 만큼 커지긴 하지만 인간이 성벽을 두들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불 성벽이 되시기 때문에 성벽을 지을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시온(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바빌론 도성에서 빠져나오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손현보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물론 오늘날 그리스도교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그리스도교와 교회가 바빌론 도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해야 한다. 힘과 영향력으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모든 계획을 포기해야 함은 물론 그런 사고 자체를 버려야 한다. 그것은 커져야 한다는 세상의 복음을 듣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성을 짓고 거기에 에녹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카인의 사고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는 나에게 너의 대안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기꺼이 가난해지고 작아지기 위해 바빌론 도성에서 빠져 나오십시오. 그리고 서로 사랑하십시오.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된 것입니다. 그런 우리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그곳이 바로 聖市입니다.”

ps. 많은 사람들이 전광훈은 물론 손현보 목사를 그리스도교에서 쫓아내려 한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열매다. 그리스도인이 주목해야 할 것은 바빌론 도성이 된 오늘날 그리스도교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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