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길을 따라가면 넓은 문이, 넓은 문을 지나가면 넓은 길이

 거라사(제라쉬) 성안의 대로 ⓒ김동문
 거라사(제라쉬) 성안의 대로 ⓒ김동문

로마는 기존의 길을 다듬거나 도시를 연결하기 위해 새로운 길을 건설했다. 이렇게 다듬어진 길과 새롭게 닦은 길은 ‘대로’라 불리며, 로마 제국의 지배와 통합을 상징하는 중요한 기반이었다

‘대로’는 단순히 길의 폭이 넓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었다. 로마가 닦은 길은 곧고 체계적이었으며, 제국 내 도시를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로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로마를 기점으로 한 아피아 가도(Via Appia), 오늘날 그리스 지역의 에그나티아 대로(Via Egnatia), 그리고 튀르키예 지역의 세바스테아 대로(Via Sebaste)가 있다.

차나칼레의 세바스테 대로 ⓒ김동문
차나칼레의 세바스테 대로 ⓒ김동문

이 대로에는 약 1.5킬로미터마다 이정표가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 제국의 길은 단순히 이동을 위한 도로가 아니라 제국의 지배와 '로마의 평화'를 과시하는 길이었다. 예수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넓은 길'로 묘사되기도 한다.

로마가 닦은 '대로'를 따라가면 로마(가 지배하는) 도시가 나왔다. 도시의 성문은 '넓은 문'이었다. 이 '넓은 문'은 문의 폭이 넓고 좁은 것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 물론 성문의 폭이 좁았다는 뜻은 아니다.

 거라사(제라쉬) 성안의 대로 ⓒ김동문

성밖의 넓은 길(대로)을 따라 가면 성으로 들어가는 넓은 문이 나온다. 이 넓은 문을 들어가면 성안의 남북을 잇는 넓은 길이 나온다. 성안의 '넓은 길'을 '카르도'(cardo maximus, 간략하게 카르도로 칭했다.)나 직가(성경 속 다메섹의 직가) 등 다양하게 불렀다. 물론 성 안에는 동서를 잇는 대로(decumanus maximus, 간략하게 데쿠마누스로 불렀다.)도 있었지만, 중심도로는 남북을 잇는 카르도였다.

비시디아 안디옥 성안의 대로 ⓒ김동문
빌립보 성안의 대로 ⓒ김동문

남북으로 이어지는 카르도는 다시 성문으로 연결된다. 성문을 (성에서 나오면) 성문 밖으로 다시 넓은 길이 이어진다. 이것이 로마의 '대로'와 성문, '넓은 문', '넓은 길'의 실제 모이다.

빌립보 성밖의 에그나티아 대로 ⓒ김동문
빌립보 성밖의 에그나티아 대로 ⓒ김동문
길이 좁고 험했던 예수 사대의 광야길 ⓒ김동문
길이 좁고 험했던 예수 사대의 광야길 ⓒ김동문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태 7:13-14)

예수의 비유에 나오는 ‘좁은 문’, ‘넓은 문’, ‘넓은 길’, ‘좁은 길’은 이러한 로마의 길과 문을 배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니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읽는 것이 적절하다.

당시 예수의 이야기를 듣던 청중은 로마의 대로와 성문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들에게 로마의 대로는 단순한 교통로를 넘어, 제국의 권위와 평화(Pax Romana)의 상징이자, 황제의 통치가 구현되는 길이었다. 예수의 비유는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해석해야 적절하다.

길이 좁고 험했던 예수 사대의 광야길은 강도는 물론 자연재해로 인한 도로 유실 등의 위험에 직면하곤 했다.  ⓒ김동문
길이 좁고 험했던 예수 사대의 광야길은 강도는 물론 자연재해로 인한 도로 유실 등의 위험에 직면하곤 했다.  ⓒ김동문
차나칼레의 세바스테 대로 ⓒ김동문
차나칼레의 세바스테 대로 ⓒ김동문

만약 이러한 시대적, 문화적, 환경적 맥락을 무시한다면, 성경의 비유를 오해하거나 잘못된 사례를 들어 설명할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가장 작은 겨자씨’라는 비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겨자씨가 아닌 다른 씨앗을 겨자씨로 오인한 채 설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저작권자 © 미주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