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리더십 강조...사회적 약자를 위한 메시지도 전해
'인공지능'과 '사회정의', '평화와 복음화', '전통과 개혁' 등 새 교황이 언급한 주제만으로도 앞으로 가톨릭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를 가늠할 수 있다.
지난 8일(현지 시각), 제268대 교황으로 선출된 새 교황은 즉위와 함께 “레오 14세(Pope Leo XIV)”라는 이름을 택한 후 가진 첫 연설에서 꺼낸 주제는 AI였다.
레오 14는 “AI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대한 도전 중 하나이다”며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인간의 결정 능력을 넘어서려는 시도 앞에서, 교회가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
그는 또, “기술은 인간의 도구이지, 주인이 될 수 없다"며 "교회는 공동선을 위한 기술 사용을 지지하지만, 인간 존엄성과 창조 질서를 침해하는 일에는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AI라는 단어가 교황의 입에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임 교황 프란치스코도 지난 몇 년간 AI의 윤리적 문제를 다룬 바 있다. 하지만 새 교황은 이를 단순한 관심을 넘어 ‘교황직의 우선과제’로 끌어올렸다.
교황의 화법은 차분했지만, 메시지는 명확했다. 교회는 더 이상 관람석에 앉아 있을 수 없으며, 기술의 윤리적 방향을 설계하는 데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레오’라는 이름 선택 역시 의도적이다. 레오 14세는 자신의 이름을 19세기 사회교리를 정립한 교황 레오 13세에서 따왔다고 밝혔다.
그는 “레오 13세가 산업혁명이라는 격변 속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말했듯이, 나는 디지털혁명 시대의 인간 존엄을 말하고자 한다"며 그의 "오늘날의 교회가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리더십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첫 미사 강론에서 “복음화와 평화”를 언급하며, 교회의 본래 사명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레오 14세는 “세상은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로 가득하다"며 "교회는 그들과 함께 울고, 함께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언급은 그가 페루에서 선교사로 일하며 가난한 지역 공동체와 지냈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그에게 ‘가장자리의 교회’는 추상적 이상이 아니라, 몸으로 경험한 현실이었다.
눈에 띄는 상징도 있다. 그는 교황복 위에 붉은색 모제타(전통 어깨 망토)를 걸쳤다. 전통을 존중하는 자세다.
가톨릭 전문가들은 "모제타 망토는 권위는 지배가 아니라 사랑으로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상징한다”며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이어받아, 권위주의와는 다른 형태의 리더십을 모색하겠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취임 직후 교황은 빈민과 난민, 청년, 환경운동가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먼저 메시지를 전했다. 인공지능과 같은 거대 의제만큼이나, 주변부에 선 이들을 향한 교회의 시선이 변함없어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그는 “교회는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에서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며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변함없이 교회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레오 14세의 말들은 지금까지 어떤 개혁안을 내놓거나 교리를 바꾼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사용하는 언어는 교회가 이제 어떤 어휘로 세상과 대화하려는지를 보여 준다. 전통을 들고 있으되, 그것을 변화의 자산으로 삼으려는 태도. 교회가 새로운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는 조심스러운 예고편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