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선출 위한 콘클라베 7일 개막…진보와 보수로 이념적 분열 뚜렷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이후 가톨릭교회는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 섰다. 그러나 이번 콘클라베는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는 7일(현지시간)부터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에서 열리는 콘클라베에서는 제267대 교황을 선출하게 된다. 71개국에서 모인 133명의 추기경단은 인류 13억 가톨릭 신자의 정신적 지도자를 뽑기 위한 투표를 시작한다.
무엇보다 교회 내부의 이념적 분열이 뚜렷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2년 간 이끌어온 포용과 개혁의 노선을 이어갈지, 혹은 전통적 교리를 회복할지를 두고 추기경단의 의견은 팽팽히 맞서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두, 모두, 모두(todos, todos, todos)'라는 구호로 가톨릭 공동체의 문을 넓히고자 했다. 그는 여성과 성소수자, 이민자와 빈곤층 등 교회 주변부에 놓인 이들에게 다가가며, 제도보다는 사람을 우선시하는 목회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일부 전통주의자들의 반발을 불러왔고, 교회는 오늘날 개혁과 보수, 두 흐름이 충돌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 콘클라베에서 진보 진영의 대표 주자는 이탈리아 볼로냐 대교구장 마테오 주피 추기경이다. 평화운동과 사회적 약자 보호에 앞장서 온 그는 산 에지디오 공동체 출신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정신을 계승할 인물로 꼽힌다.
한 로마 시민은 “주피 추기경은 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인물”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정신을 이어갈 차기 교황으로 가장 적합하다"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교회 내 보수층에서는 그가 ‘교회를 정치화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같은 진영에서 거론되는 필리핀 출신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은 아시아의 대표적 인사로, 복음화성 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타글레는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깊은 신임을 받았지만, 마닐라 대교구장 시절 성 학대 사건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지지층이 엇갈리고 있다.
보수 진영에서는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이 유력한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 외교 경험과 행정 능력을 두루 갖춘 그는 ‘안정된 교회’를 바라는 이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다. 그러나 그 또한 과거 성 학대 사건 처리 과정에서 조사 방해 의혹이 불거지며 도덕성 논란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가나 출신 피터 턱슨 추기경이 주목받고 있다. 그는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의장 등을 지내며 정의, 환경, 빈곤 문제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하지만 이념적으로 명확한 진영 기반이 부족해 ‘타협 후보’로만 언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콘클라베는 추기경단 내부에서도 뚜렷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시작된다.
진보 진영은 주피와 타글레로, 보수 진영은 파롤린에 대한 입장이 갈려 있으며, 각 진영 모두 내부 분열을 겪고 있다. 이로 인해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제3의 인물이 교황으로 선출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바티칸은 이미 시스티나 경당에 전통적인 굴뚝과 난로를 설치했다. 교황이 선출되면 흰 연기가 피어오르며 세상에 그 사실을 알리게 된다. 교회는 지금, 한 사람의 이름을 통해 다음 시대의 길을 정하게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 이후 가톨릭 교회의 패러다임을 전환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사상 첫 예수회 출신 교황이자 라틴아메리카에서 배출된 최초의 교황으로, 주변부에서 중심으로의 전환을 상징했다. ‘현장의 냄새 나는 목자’라는 자신의 표현처럼, 프란치스코는 로마보다 거리와 변방을 먼저 찾았다.
그는 빈곤, 환경, 이민, 성소수자 인권, 여성의 교회 내 역할 등 그간 교회가 꺼려왔던 주제에 정면으로 마주했다. ‘모든 이를 위한 교회’를 표방하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목소리를 내는 동시에, 교회의 탈중앙화와 교황권 분산도 시도했다.
하지만 그의 개혁은 끝내 완결되지 못했다. 여성 사제 허용은 여전히 금기 영역이고, 동성혼 문제에 대한 입장은 애매하게 머물렀다. 일부 주교단은 교황의 개방적 태도를 반발하며 내부 반기를 들었고, 개혁 의제를 둘러싼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또한 성직자 성 학대 문제는 프란치스코 교황 재임기 내내 교회의 신뢰를 잠식했다. 교황은 성 학대 문제에 단호한 입장을 밝혔지만, 일부 사건에서는 조처가 미흡하거나 대응이 늦었다는 지적도 받았다. 그가 재임 중 꾸렸던 대책 위원회는 때때로 교황청 내 다른 부서와 충돌하며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번 콘클라베는 단순한 교황 선출을 넘어, 이 미완의 개혁을 계승할 것인지, 혹은 다시 교회의 전통과 일치로 돌아갈 것인지를 결정짓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