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사람이 법 위에 있을 수 없다”는 말에 근간을 둔다. 교회 역시 성경과 공동체 질서 위에 어떤 개인도 존재할 수 없다는 신학적 합의 위에 서야 한다. 하지만 최근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이러한 상식을 근본부터 흔든다.
기하성은 최근 교단 헌법 개정안을 통해 이영훈 목사를 ‘대표총회장’으로 명문화하는 안을 확정했다. 그간 총회에서 선출된 지도자가 일정 임기를 수행하는 구조였던 기하성이, 이제는 특정 인물을 헌법에 박아넣어 사실상 ‘영구직’ 대표로 만드는 셈이다. 명분은 안정과 연속성이지만, 냉정히 말해 이것은 특정 개인에게 교단을 헌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교단 헌법에 ‘이름’ 박는 시대착오
종교개혁 이후 근대 교회는 ‘제도’와 ‘헌법’을 통해 사제권력의 사유화를 견제해왔다. 총회장, 감독, 대표 등의 직위는 모두 신앙 공동체가 선출한 ‘봉사직’이며, 그 임기는 제한돼야 한다는 것이 공교회의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이영훈 목사와 기하성 지도부는 이 원칙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교단 헌법에 특정인의 실명을 명기하는 전례는 극히 드물며, 이는 헌법을 인격화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한 인물이 교단의 상징으로 자리 잡을 수는 있어도, 그 인물이 곧 헌법이 되는 순간, 교단은 이미 공교회성을 상실한 셈이다.
이런 결정이 어떤 과정으로 이뤄졌는지도 의문이다. 헌법은 교단 전체의 합의로 구성돼야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지도부 중심으로 비밀리에 추진된 정황이 많다. 개정의 실질적 이유가 이영훈 목사 체제의 장기화에 있다는 점에서, 헌법 개정이 아니라 ‘권력 구조 개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연임에 이어 ‘헌법 등극’… 끝없는 사유화
이영훈 목사는 이미 수차례에 걸쳐 기하성 총회장을 역임했고, 교단과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실질적 수장으로서의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교계 언론과 각종 방송, 심지어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보수 연합체에서도 이영훈 목사는 중심 인물로 군림해 왔다.
문제는 이 영향력이 사적 통치로 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에 자신의 지위를 고정시킨다는 발상은 교회 내 왕정주의의 부활을 떠올리게 한다. 장로교의 ‘직분제도’도, 감리교의 ‘임기제도’도, 모두 이 같은 절대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발전해온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제 기하성은 그것을 역행한다. 그것도 한국에서 가장 큰 교회 중 하나인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속한 교단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은, 한국 교회 전체에 매우 나쁜 신호다. 교회는 목사의 것이 아니다. 교단도 특정인의 것도 아니다.
침묵하는 교단, 책임지는 이는 누군가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개정 시도에 대해 교단 내부의 의견 수렴이나 이견 표출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총회 대의원들도, 산하 교회들도 대부분 침묵하고 있다. 몇몇 목회자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이미 교권 구조에서 소외된 이들이기에 실질적 영향력은 미미하다.
침묵은 동조가 아니다. 그러나 침묵이 쌓이면 곧 체념이 되고, 체념은 독재를 만든다. 지금 기하성은 교단이 아니라 특정 지도자의 브랜드 아래 통합되고 있으며, 이는 건강한 교회 생태계의 붕괴로 이어진다.
이영훈 목사는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헌법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 아래 흔들리는 교단 헌법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리더의 마지막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