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최병인 기자] 지난 3월, 시카고의 한 식당에서 손태환 목사(시카고기쁨의교회)를 만났다. 북적이는 저녁 자리였지만 대화는 자연스럽게 깊어졌고, 그의 말에는 분명한 방향성과 신념이 담겨 있었다. 주제는 교회와 목회, 공동체와 언어, 그리고 시대 앞에 선 복음이었다.

손태환 목사(시카코기쁨의교회)
손태환 목사(시카코기쁨의교회)

"시카고에서의 사역이 행복해 보입니다." 기자의 인사에 손 목사는 미소 지으며 답했다. "네, 교인들이 너무 좋으세요. 제가 하는 사역을 이해해 주시고 믿고 신뢰해 주십니다."

손 목사는 뉴저지에서 시카고로 사역지를 옮겼다. 애틀란타, 택사스등 최근 신흥 도시로 많은 이들이 떠나는 분위기 속에서 그는 오히려 시카고에서 목회의 본질을 붙드는 기회를 발견했다고 한다. "뜨겁지도 않고 경쟁하지 않는 곳"이라고 표현한 시카고에서 그는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교회를 세워가고 있다.

지난해 겨울, 한국 사회가 비상계엄 소식으로 술렁이던 시기 손 목사는 시카고에서 연합 시국기도회를 이끌었다. 교회 분란, 지역 사회의 보수적 분위기, 공적 신앙을 말하는 이들에 대한 침묵 강요에도 불구하고 그는 "누군가는 해야 했기에 감당했다"고 말한다. 목회의 어려움을 인정하면서도 교회의 공적 책임만큼은 끝까지 붙들고자 했다.

지난 3월 시카고 이민자보호교회 모임에 참석한 지역 목회자들과 자리한 손태환 목사(왼쪽에서 5번째) @ 미주뉴스앤조이.
지난 3월 시카고 이민자보호교회 모임에 참석한 지역 목회자들과 자리한 손태환 목사(앞줄 오른쪽에서 5번째) @ 미주뉴스앤조이.

"교회는 살기 위해 온 이들에게 위로와 피난처가 되어야 합니다." 손 목사는 시카고 이민자보호교회 네트워크 위원장으로서, 서류미비자를 포함한 이민자 공동체를 향한 교회의 책임을 강조한다. "이 운동은 단지 서류미비자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공격은 결국 모두에게 돌아옵니다."

그에게 복음은 결코 개인의 구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복음이 공동체를 향하지 않으면 교회는 고립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시카고기쁨의교회는 지역 사회의 아픔에 반응하고 공적 책임을 감당하며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고 있다.

손 목사의 사역 가운데 중심에는 '언어'가 있다. 그는 지금 교회 안에서 쓰이는 언어가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담기엔 너무 천박하다고 말한다. "정치화된 보수 기독교의 왜곡된 언어 사용이 문제입니다. 언어가 무너지면 교회는 세상과 단절됩니다."

이를 위해 그는 주보에 <시를 잊은 성도에게>라는 코너를 두고 매주 시(詩)를 소개한다. 단순한 취향이 아닌 신앙 언어를 새롭게 하기 위한 시도다. "시인은 침묵해서는 안 되는 사람입니다. 저도 그렇게 살아보려 합니다."

손목사의 페이스북도 눈여겨볼 만하다. 시와 책, 사회 현실과 이민자 인권 문제까지, 그는 단순히 정보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다시 생각해 볼 거리'를 던진다. 엄기호 작가의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를 인용하며 "이런 책을 읽는다고, 쓴다고, 설교한다고, 그 곁에 서 있다고 착각하지 말 일이다"라며 자신을 향한 경계심을 놓지 않는다.

“심방갑니다. 펜실베이니아로 이사간 교우가 아프다는데, 가 봐야지요.” 손태환 목사가 남긴 짧은 글이다. 병상에서 두려워하고 있던 교우에게, 목사의 방문은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손목사는 말보다 조용한 동행으로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길을 선택한다.
“심방갑니다. 펜실베이니아로 이사간 교우가 아프다는데, 가 봐야지요.” 손태환 목사가 남긴 짧은 글이다. 병상에서 두려워하고 있던 교우에게, 목사의 방문은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손목사는 말보다 조용한 동행으로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길을 선택한다.

손 목사의 교회는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다.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이사간 교인을 위해 아침저녁으로 중보기도를 드리고, 직접 필라델피아까지 심방을 다녀왔다. 그는 말한다. "돌봄을 병원의 몫으로만 남겨두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는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그는 또한 젊은 세대의 감수성을 반영하는 교회를 지향한다. 환경 문제, 사회적 약자, 공공의 책임과 같은 주제를 신앙의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 복음을 오늘에도 살아 있는 메시지로 만드는 일이라 믿는다.

‘미주 코스타’ 공동대표로 활동하는 손목사는 신앙과 전문성이 만나는 접점을 탐색한다. 다양한 직업군의 간사들과 함께하며 "신학적 깊이에서 목회자 이상인 분들도 많다"며 간사들의 헌신을 높이 평가한다.

지난해 코스타에서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희년이란 제목의 설교 영상이다. 이날 손태환 목사의 희년 설교는 개인주의에 깊이 물든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다소 무겁고 낯선 주제였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손 목사는 나희덕 시인의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를 인용하며 말한다. "다음은 없습니다. 사랑도, 나눔도, 기도도 지금 해야 합니다."

거창한 구호보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을 품고, 언어를 바로 세우고,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그의 목회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 글은 손태환 목사와 대화, 페북과 교회 주보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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