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방영민 목사의 '책숲 산책' 철야 / 이규현 지음
수영로교회를 담임하시는 이규현 목사님의 금요철야기도에 대한 책이다. 이미 목사님의 책을 몇 권 보았는데 읽을 때마다 시대를 잘 분석하시고 본질에 집중하는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냥 거대한 교회의 남들이 부러워하는 보기 좋은 목사라 생각되지 않고 교회를 지키고 성도를 살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본이 되는 목사님이라 생각된다.
이 책은 목사님께서 기도 중에 수영로교회의 금요기도회를 한국교회와 나누고 싶다는 마음을 강하게 주셔서 집필을 마음 먹게 되었다고 한다. 필자는 수영로교회의 금요기도회 현장에 아직 가 본 적은 없지만 아주 뜨겁고 강력하고 은혜로운 기도회라는 것을 주위에서 이미 여러 번 들었다. 그래서 시간이 주어지면 꼭 한 번은 그 자리에 참석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저자는 기도를 분석하고 기도에 대한 정의를 하기 위해 이것을 쓴 것이 아니다.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편안하게 풀어 쓴 것이다. 목차와 내용을 보면 저자는 그의 마음과 인격과 몸에 베여있는 내용을 한 번에 쓴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머리를 아프게 하지 않고 가슴을 뜨겁게 한다. 책을 보면서 “찐”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쓴 것도 아니고 마지 못해 쓴 것도 아니며 꾸며낸 것도 아니라 자신의 마음 속에 흘러넘치는 것을 물길을 따라 써내려간 것이다.
세상의 정신을 저항하라
저자는 교회가 기도의 힘을 잃었고 기도의 야성을 잃었다고 안타까워한다.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하는데 물질주의와 편리주의와 형식주의에 교회가 물들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배가 부르고 먹고 살기 좋으니 간절함도 없고 열정도 식었다. 먹고 살 수 있으니 하나님께 감사하기보다 세상에서 쉼과 재미를 추구하려고 한다. 인간의 본성이고 세상의 유혹이고 시대의 문화와 세대의 흐름이다.
저자는 현대교회가 이러한 세상의 정신에 침투당하여서 변질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필자도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물론 그렇다고 교회에만 오고 기도만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기도라는 것을 통해 세상에 물들지 않고 시대를 거슬러 가는 야성과 저항력이 있어야 하는데 서서히 가랑비에 옷이 젖듯 세상의 사람이 된 것 같다. 세상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성도인데 세상처럼 살아가는 성도가 된듯한 안타까운 모습이다.
신앙생활에 편리주의가 들어오면 아주 위험하다. 물론 신앙생활을 불편하게 하라는 것은 아니다. 몸과 육체를 편하게 하려고 하면 신앙생활이 느슨해진다. 기도는 노동이고 신앙생활은 헌신과 노력과 성실이 필요하다. 신앙은 신실함으로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물질로 편리를 사서 형식적인 신앙생활이 된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정신을 따라가고 있는지 저항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기도는 세상의 정신을 저항하는 강력한 무기이다.
기도는 배의 엔진이다
망망한 바다 위에서 배가 전진하려면 엔진이 작동되어야 한다. 엔진이 약하면 파도를 가르지 못할 것이고 엔진이 꺼지면 배는 깜깜한 바다 위에서 표류하고 물결에 떠밀려 좌초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엔진이 돌아가면 아무리 끝없는 바다라 할지라도 끝없이 항해할 수 있다. 엔진이 살아있으면 아무리 거센 파도가 밀려올지라도 파도를 밀고 나갈 수 있다. 엔진은 배의 추진력이고 돌파력이고 배의 힘이다. 두꺼운 얼음도 가르며 항해하는 쇄빙선을 보라!
저자는 바로 기도가 배의 엔진이라고 한다. 즉 기도가 교회를 움직이는 핵심이라는 것이다. 교회에는 많은 회의가 있다. 교회의 여러 사역을 감당해 가려면 얼굴 보고 만나고 교제하고 대화하고 회의를 해야한다. 그러나 회의만 있으면 길어지고 느려지고 회의만 생긴다. 그러나 기도가 앞서면 회의는 간단해지고 빨라지고 즐거워진다. 기도는 회의(懷疑)를 없애고 회의(會議)가 되게 하는 것이다.
기도가 없으면 재정이 있어도 쓸 줄을 모른다. 반대로 기도가 있으면 재정이 없어도 일을 할 수가 있다. 기도는 교회를 살아있게 하고 전진하게 하는 핵심이다. 기도는 교회의 심장과도 같다. 심장이 말씀이라면 그 피를 돌게하는 것이 기도가 아닐까. 세상의 권세는 더욱 거대하고 집요하고 악해져 간다. 그런 세상의 파도 가운데 배를 더 튼튼하게 할 것인가, 파도에 떠밀려 갈 것인가? 교회는 기도의 엔진의 동력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영적 온도를 높여라
철을 녹이는 용광로는 한 번도 식은 적이 없다고 한다. 용광로는 항상 뜨겁게 달궈져 있어서 모든 것을 녹일 수 있는 불덩어리다. 어떤 차가운 철과 영하의 물질이 들어온다한들 이 속에서는 녹을 수 밖에 없다. 저자는 교회의 영적 온도가 뜨거워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몸의 온도도 저체온증이 되면 기력이 쇠하고 각종 질병에 노출되고 암도 발생하는 것처럼 교회의 영적 온도도 떨어지면 여기저기에서 문제가 터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교회는 영적 온도가 높다 못해 뜨거워야 한다. 그래야 모이고 싶고 모이면 즐겁고 모이면 하나님의 일을 도모할 수가 있다.
그러나 뜨겁지 못하고 냉랭하면 모이기 싫어지고 모이면 지겹고 모여도 하나님의 일을 그려낼 수가 없다. 그러면 교회의 온도는 무엇으로 높일 수 있는가? 강력한 기도이고, 그 핵심에는 금요기도회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몸의 온도가 중요하듯 교회의 온도가 중요한 것은 당연한다.
신앙은 간절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것이다. 자신을 알고 하나님을 알면 기도할 수 밖에 없고 세상을 보고 교회를 보면 부르짖을 수 밖에 없다. 교회에는 기도의 열기가 있어야 한다. 이 기도의 열기가 교회의 온기를 보호하고 하늘의 생기를 가져올 수 있다. 기도에 목마른 자, 기도의 용사가 필요하다.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으면 영혼이 탁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영적 온도는 떨어지게 된다.
결론
교회 안에 기도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기도 소리가 작아지면 사람의 소리만 커져간다. 기도의 범위가 좁아지면 사람의 범위만 넓어지고 기도의 영역이 협소해지면 사람의 영역만 확장된다.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하나님은 성도의 간구와 외침과 신음과 부르짖음을 다 들어주신다. 그분은 우리의 간구를 지겹다고 귀를 닫지 않으시고 우리가 언제나 간구할 수 있도록 귀를 열고 계신다.
밤이 새도록 기도할 필요가 있나? 밤이 지나도록 기도를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기도하면 밤이 새도록 구해야 할 제목들이 있다. 필자도 산기도를 하는데 기도하면 할수록 기도 제목이 더 늘어나고 간구해야 될 제목들이 쌓여있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엎드리지 못하는 것이지 엎드려야 할 제목은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쉬려고 하고 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 못할 이유는 많은데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저자의 이러한 책이 신앙에 정말 유익하다. 그렇다고 가볍거나 쉬운 것도 아니다. 오히려 묵직하고 깨달음과 깨우침을 준다. 저자의 철학과 사상과 확신이 들어있어서 그런 것 같다. 이런 책은 부딪혀보고 깨어져보고 누려보고 경험해본 자만이 쓸 수 있다. 이렇게 여러 주제들을 가지고 흘러 넘치게 쓸 수 있는 저자가 많아지면 좋겠다. 기도가 살 길이라고 말은 하는데 왜 그런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이 책을 또 읽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