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칼뱅(Jean Calvin, 1509-1564)! 영어식 표현을 따라 주로 요한 칼빈으로 불린다. 그렇지만 프랑스인의 이름(고유명사)을 영어식으로 읽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한국의 보수 장로교단에서 요한 칼빈은 무척이나 중요한 인물로 자리하고 있다. 장 칼뱅은 이슬람에 대해 관심을 가졌을까? "종교개혁자의 눈으로 이슬람 보기" 같은 문제 제기도 종종 마주한다.

칼뱅이 이슬람에 관심을 가졌다면 그와 관련한 글이나 말을 하였을 것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칼뱅의 이슬람에 관한 관심 정도를 짚어보려고 한다. 그러나 제한된 자료만 검토한다. 칼뱅의 대표작이라 말하는 저서가 있다. <기독교강요>이다. 기독교 강요를 통하여 칼뱅의 이슬람에 관한 관심 정도와 관점을 읽어보고자 한다.

<기독교강요>는 1536년 라틴어 초판(6장으로 구성), 1539년 라틴어 증보판과 그 번역판인 1541년 프랑스어 초판(17장으로 구성), 1543년 프랑스어 증보판(21장으로 구성), 1550년 프랑스의 증보판, 1559년 라틴어 최종판, 1560년 프랑스어 최종판 등으로 나왔다.

1559년 라틴어 최종판
1559년 라틴어 최종판

이 <기독교강요>에는 이슬람에 관한 칼뱅의 관심이 어떻게 담겨 있을까? 앞서서 언급한 다양한 <기독교강요> 판본, 역본에 담긴 이슬람과 연관된 표현을 찾아본다.

 

<기독교강요> 속 무슬림 찾기

<기독교강요>의 판본, 역본의 출판 연대 순서를 따라 본문 속 무슬림에 관한 서술을 짚어본다. 필자의 역량 부족으로 모든 판본과 역본을 확인할 수 없었다. ​

 

1. 1536년 라틴어 초판

1536년 라틴어 초판의 경우는 제2장 믿음, B. 사도신경 해설(10-34), 넷째부분(21-34) 교회, 성도의 교제, 죄사함, 몸의 부활, 영생의 28번째 항목에서 튀르키예인과 사라센인들을 언급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비록 교회의 권징에 의하면 우리가 출교된 사람들과 친근하게 살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을 허락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 위로와 가르침으로든지 혹은 자비와 부드러움으로든지, 아니면 하나님께 우리 자신의 기도를 드림으로써든지 — 그들이 좀 더 덕스러운 삶으로 돌아오고, 교회의 교제와 일치에로 되돌아 오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그런 사람들뿐만 아니라 터키인들과 사라센인들, 그 밖에 기독교의 적들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로 대하여야겠다. 그들을 우리와 같은 믿음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는 방법들을 우리는 결코 용인할 수 없다. 즉, 그들로 하여금 불과 물과 다른 일상 요소들의 사용을 금지시키고, 그들의 인간성을 부인하고, 그들을 칼과 무기로 윽박지르는 방법 등이다. - 존 칼빈, <기독교 강요(초판)>, 양낙흥 옮김, CH북스, 2016.

그러므로 비록 교회적 권징에 따라서 출교된 자들과 친근하게 사는 것과 내적인 교제를 갖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혹은 권고로 혹은 교리로, 혹은 자비로 혹은 온유로, 혹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기도들로 그들이 회심되어 더욱 좋은 열매를 맺도록 교회의 연합체와 하나임 속으로 그들을 받아들이도록 힘써야 한다. 이 사람들뿐만 아니라 투르크인들과 사라센인들 그리고 다양한 종교에 속한 다른 적들도 또한 이와 같이 다루어져야 한다. 이들에게 많은 사람들이-그들이 물과 불과 일상적인 요소들을 금지하는 동안에, 그들이 저 인간성에 속하는 모든 사역들을 부정할 때, 그들이 칼과 무기로 박해할 때-지금까지 우리의 신앙을 강요했던 방법들을 우리가 승인해야 한다는 것은 아주 적절치 않다. - 존 칼빈. 문병호 역, <라틴어 직역 기독교 강요>(전자책), 생명의말씀사, 2015.

And not only those are to be so treated, but also Turks and Saracens, and other enemies of religion. Far be it from us to approve those methods by which many until now have tried to force them to our faith, when they forbid them the use of fire and water and the common elements, when they deny to them all offices of humanity, when they pursue them with sword and arms. - Calvin, Jea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1536 Edition. United Kingdom: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5. 62.

Neque ii modo sic tractandi sunt, sed Turcae quoque ac Saraceni, caeterique verae religionis hostes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칼뱅의 태도이다. 배제와 혐오로 무슬림을 대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칼뱅은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 사람들뿐만 아니라 터키인들과 사라센인들, 그 밖에 기독교의 적들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로 대하여야겠다. 그들을 우리와 같은 믿음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는 방법들을 우리는 결코 용인할 수 없다. 즉, 그들로 하여금 불과 물과 다른 일상 요소들의 사용을 금지시키고, 그들의 인간성을 부인하고, 그들을 칼과 무기로 윽박지르는 방법 등이다. - 존 칼빈, <기독교 강요(초판)>, 양낙흥 옮김, CH북스, 2016.

 

2. 1539년 라틴어 증보판

1539년에 나온 라틴어판에는, 제4장 믿음 : 사도신경 해설, 4부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음' 항목의 후반부에 딱 한 번 'Turcarum conuentibus'가 나온다.

Proinde aut Ecclesie, secundum hanc rationem, non sunt : aut nullum restabit symbolum quo legitimi fidelium cœtus à Turcarum conuentibus discernantur. - Jean Calvin,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nunc uerè denum suo titulo respondens, Argentorati Strasburg : Vuendelinum Rihelium, 1539, 148.

 

1541 프랑스어판 표지
1541 프랑스어판 표지

3. 1541년 프랑스어판

1541년 칼뱅은 라틴어를 모르는 프랑스인을 위해 1539년에 펴낸 라틴어판 중보판을 프랑스어로 펴냈다. 이 프랑스어판의 경우는, 제4장 믿음 : 사도신경 해설, 4부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음' 후반부에서 딱 한 번 언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말씀 사역에 관해서라면 그들은 불경건함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과 다름없는, 온갖 종류의 오류로 가득한 학교다. 따라서 그들은 교회로 간주될 수 없으며, 혹시 그렇지 않다면 신실한 자들의 회중을 튀르크인들의 회당과 구별할 수 있는 어떤 종류의 표증도 남아 있지 않은 셈이다. - 장 칼뱅, 김대웅 역, <기독교 강요 - 1541년 프랑스어 초판>, 복있는사람, 2022, 401.

That is why, either they are not churches in this regard, or there re- mains to us no mark to distinguish between the assemblies of the faithful and the synagogues of the Turks. - Calvin, Jea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The First English Version of the 1541 French Edition. United States: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09. 256.

마지막으로, 말씀의 사역 대신 거기에는 불경의 학교와 온갖 종류의 오류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런 고찰에 따라 볼 때, 그것이 교회가 아니거나, 아니면 신자들의 회중과 투르크인의 회당 사이를 구별할 표지가 더 이상 우리에게 남아 있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 칼뱅, 박건택 역, <기독교 강요 - 프랑스어 초판>, 부흥과개혁사, 2018, 342.

Lastly, concerning the ministry of the Word—those realms merely echo with doctrines of impiety and an array of fallacies. Therefore, either they fail the test of being churches in this aspect, or we find ourselves bereft of the means to discern between the gatherings of the faithful and the assemblies of the Turks.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1539년 <기독교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라틴어본과 1541년 프랑스어 역본(초판)에서 무슬림에 대한 서술을 찾아보기 힘들다. "튀르크인들의 모임'이라는 표현이 한번 나올 뿐이다. 

(*1543년 라틴어 3판, 1545년 프랑스어 증보판(21장으로 구성), 1550년 라틴어 4판, 1551년 프랑스의 증보판, 1553년 프랑스의 증보판, 1554년 프랑스어 증보판 등은 본문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다.)

 

4. 1559년 라틴어 최종판(5판)

1559년 최종판 <기독교강요>는,  작은 폰트의 영어 활자로 68만개 이상의 단어가 들어있는 1400페이지가 넘는 책이다.  이 책에 ‘무슬림’ 또는 이슬람과 연결을 시킬 수도 있는 단어는 다섯번 나온다. 2.6.4, 3.4.21, 3.13.5, 4.2.10, 4.16.24 등이다. (2.6.4. 등의 표기는 칼뱅의 <기독교강요> 최종판 본문 서술 형식이다. 2권 6장 4항 같은 식이다.) 관련 단어는 'the Turks', 'Turk'이다. 이 단어를 '무슬림'으로 일반화시켜서 번역하기도 하지만, 구체적으로 '오스만 튀르키예인'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기독교강요 2.6.4> 

천지를 만드신 최고의 존엄하신 분을 경배하노라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들에게 중보자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를 참으로 맛보지 못했으며, 따라서 하나님을 자기의 아버지라고 믿을 수 없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자기의 머리로 모시지 않은 그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해도 그 지식은 잠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또 그 결과로 그들은 유치하고 추악한 미신에 빠져, 자기의 무지를 폭로했다. 현재 회교도들도 천지의 창조자는 하나님이라고 힘껏 외치지만, 그리스도를 부정하면서 우상으로 진정한 하나님을 대치하고 있다. - 장 칼뱅, 고영민 역, <기독교강요 2> 기독교문사, 2006. 500.

For though in old time there were many who boasted that they worshipped the Supreme Deity, the Maker of heaven and earth, yet as they had no Mediator, it was impossible for them truly to enjoy the mercy of God, so as to feel persuaded that he was their Father. Not holding the head, that is, Christ, their knowledge of God was evanescent; and hence they at length fell away to gross and foul superstitions betraying their ignorance, just as the Turks in the present day, who, though proclaiming, with full throat, that the Creator of heaven and earth is their God, yet by their rejection of Christ, substitute an idol in his place. - John Calvin, Henry Beveridge, The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Grand Rapids, MI, 2002. 255.

수많은 사람들이 한때, 자기들이 천지를 지으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자랑했으나, 그들에게 중보자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참으로 맛보지도 못하고, 그리하여 그가 과연 자기들의 아버지이심을 납득하지도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그리스도를 자기들의 머리로 붙잡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덧없이 사라져 가는 하나님 지식을 소유하는 것으로 그치고 만 것이다. 또한 그리하여, 그들은 결국 유치하고 더러운 미신에 빠져서 자기들의 무지를 스스로 드러내고 말았다. 오늘날 이슬람교도들 역시, 천지의 창조주가 바로 하나님이라고 힘차게 외치면서도, 여전히 그리스도를 배척하며 결국 참되신 하나님의 자리에 우상을 대신 올려놓고 그를 섬기고 있는 것이다. - 존 칼빈 저, 원광연 옮김, <기독교강요(하)>(전자책), CH북스, 2020. (종이책), 427.

비록 한때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최고의 신을 하늘과 땅의 조성자로 예배 드렸다고 자랑했지만 그들에게는 중보자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를 맛볼 수 없었으며 그가 자기들에게 하나님이 되신다는 사실에 대해 감동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았으므로 하나님 을 아는 지식이 곧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끝내 자기들의 무지를 폭로하며 조잡하고 더러운 미신들로 빠져들고 말았다. 마치 오늘날 투르크인들이 볼을 부풀리며 하늘과 땅의 창조자가 하나님이라고 선포하고 있지만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참 하나님의 자리를 우상으로 대체하고 있듯이 말이다. - 장 칼뱅, 문병호 역, <1559년 라틴어 최종판 직역 : 기독교강요 2>, 생명의말씀사, 2020, 195.

<기독교강요 3.4.21> 

만일 그가 악한 사람이라면, 그는 허망한 사면을 하는 것이 아닌가? 즉 그는 "그대에게서 무엇을 매거나 풀어야 할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열쇠를 공종하게 쓸 줄을 모른다. 그러나 그대에게 해당하는 일이 있다면, 나는 그대를 사면한다"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평신도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을 이 말을 참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교도와 마귀라도 그만한 일은 할 수 있을 것이다. - 장 칼뱅, 고영민 역, <기독교강요 3상> 기독교문사, 2006. 146.

그런데 그 사제가 만일 무능하여 열쇠를 바르게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그 열쇠를 헛되이 사용하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기껏해야 “나는 열쇠를 정당하게 사용할 줄을 모르니 당신에게서 무엇을 매거나 풀어야 할지 모르겠소. 그렇지만 당신이 합당하다면, 내가 죄를 사해 주겠소”라고 말하기 밖에 더하겠는가? 그들이 “평신도”만 못하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그들이 도저히 참고 들을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교도나 마귀도 그런 정도의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 존 칼빈 저, 원광연 옮김, <기독교강요(하)>(전자책), CH북스, 2020. (종이책) 148.

만약 그가 악하다면 이 하찮은 사면권 외에 더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당신 속에서 무엇이 매여야 하며 무엇이 풀려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당신에게 공로가 있다면 나는 당신을 풀어 줍니다." 이 말을 평신도에게 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를 듣고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은 투르크인이나 마귀에게나 그나마 값어치가 있을 것이다. - 장 칼뱅, 문병호 역, <1559년 라틴어 최종판 직역 : 기독교강요 3>, 생명의말씀사, 2020, 207.

As much might be done, I say not by a laic (since they would scarcely listen to such a statement), but by the Turk or the devil. - John Calvin, Henry Beveridge, The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Grand Rapids, MI, 2002. 466.

At tantundem possetnon dico laicus(quando id aequis auribus non ferrent ) sed Turca , aut diabolus. 

<기독교강요 3.13.5>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중생한 우리가 영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의롭게 된 것이라고 지껄이는 자들은 은혜의 감미로움을 맛보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미래의 은혜를 믿지 못하는 자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터어키 사람이나 다른 불신 국민들같이 올바른 기도법도 모른다. - 장 칼뱅, 고영민 역, <기독교강요 3하> 기독교문사, 2006. 29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것이 우리가 신령하게 삶으로써 거듭나고 의로워졌기 때문이라고 떠들어대는 자들은 절대로 은혜의 그 아름다움을 맛보지도 못한 자들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과연 사랑을 베푸신다는 것을 생각도 하지 못하는 자들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미개한 터키인들이나 기타 이교도들이나 마찬가지로 올바른 기도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이다. - 존 칼빈 저, 원광연 옮김, <기독교강요(중)>(전자책), CH북스, 2020.(종아책) 305-306.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되는 것이 우리가 거듭나서 영적으로 살았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중얼거리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용서를 베푸는 분이시라는 것을 생각하며 은혜의 감미로운 맛에 취하는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또한 그들을 투르크 사람들이나 다른 속된 이방 민족들과 다를 바 없이 기도를 올바로 드리는 방법을 더 이상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 장 칼뱅, 문병호 역, <1559년 라틴어 최종판 직역 : 기독교 강요 3>, 생명의말씀사, 2020, 414

Thus those who pretend that justification by faith consists in being regenerated and made just, by living spiritually, have never tasted the sweetness of grace in trusting that God will be propitious. Hence also, they know no more of praying aright than do the Turks or any other heathen people. - John Calvin, Henry Beveridge, The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Grand Rapids, MI, 2002. 550.

<기독교강요 4.2.10> 

끝으로, 그들은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불경건을 가르치는 학교들과 각종 오류의 소굴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들이 교회가 아니거나, 그렇지 않으면 신자들의 합법적인 회중과 불신자들의 집회를 구별하는 표지가 없어지거나 할 것이다. - 장 칼뱅, 고영민 역, <기독교강요 4상> 기독교문사, 2006. 56.

마지막으로, 말씀의 사역 대신, 그들에게는 불경건의 학교와 온갖 종류의 오류가 가득한 소굴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볼 때에 그들이 교회가 아니든지, 신자들의 적법한 회(會)와 이교도들의 회를 서로 구별하는 표지가 남아 있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인 것이다. - 존 칼빈 저, 원광연 옮김, <기독교강요(하)>(전자책), CH북스, 2020. (종이책) 57.

마지막으로 그것들에는 말씀의 사역 대신 불경건을 가르치는 학교들과 온갖 오류들이 흘러 들어와 모여 있는 배 밑창의 하수통이 있다. 결과적으로 이 논법에 따르면 그것들을 교회들이라 한다면 신자들의 합법적인 모임들과 투르크인들의 회집들(이교도와 모임들)을 식별하는 징표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 장 칼뱅, 문병호 역, <1559년 라틴어 최종판 직역 : 기독교강요 4>, 생명의말씀사, 2020, 108

In fine, instead of the ministry of the word, they have schools of impiety, and sinks of all kinds of error. Therefore, in this point of view, they either are not churches, or no badge will remain by which the lawful meetings of the faithful can be distinguished from the meetings of Turks. - John Calvin, Henry Beveridge, The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Grand Rapids, MI, 2002. 754.

aut nullum restabit symbolum, quo legitimi fidelium coetus a Turcarum conventibus discernantur.

<기독교강요 4.16.24> 

죄를 고백한 사람들이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복음서 기자가 한 말도(마 3:6) 이것과 관련시켜야 한다. 우리는 지금도 이것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교도가 세례를 받겠다고 하더라도 교회가 만족할 만한 신앙고백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에게 쉽게 세례를 줄 수 없겠기 때문이다. - 장 칼뱅, 고영민 역, <기독교강요 4하> 기독교문사, 2006. 423.

사람들이 죄를 자복하고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다는 복음서 기자의 진술은(마 3:6)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모범이 오늘날도 그대로 준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 회교도가 세례를 받겠다고 하면, 그가 교회가 보기에 만족스러운 고백을 하지 않는 한 쉽사리 그에게 세례를 줄 수가 없을 것이다. - 존 칼빈 저, 원광연 옮김, <기독교강요(하)>(전자책), CH북스, 2020. (종이책) 419.

요한이 자기들의 죄를 자복한 자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복음서 기자가 전하는 말씀도(마 3:6) 이와 관련지어야 한다. 우리는 이 예가 오늘날도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회교도가 자기 자신을 맡기며 세례를 받겠다고 하더라도 교회를 향한 만족할 만한 고백이 있기 전에는 쉽게 세례를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장 칼뱅, 문병호 역, <1559년 라틴어 최종판 직역 : 기독교강요 4>, 생명의말씀사, 2020, 599. 

To this we must refer the narrative of the Evangelist, that those who were baptised by John confessed their sins (Mt. 3:6). This example, we hold, ought to be observed in the present day. Were a Turk to offer himself for baptism, we would not at once perform the rite without receiving a confession which was satisfactory to the Church. - John Calvin, Henry Beveridge, The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Grand Rapids, MI, 2002. 954.

...baptizatos a Ioanne fuisse, qui pecata sua confiterentur; quod exemplum observandum hodieque censemus. Turca enim si se ad Baptismu offerat, non temere a nobis intingeretur nisi ...

(*'1560년 프랑스어 최종판'의 본문 내용은, 필자의 역량 부족으로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평가

가능한 많은 역본을 참고하고자 했다. 그러나 쉽게 구할 수 없는 역본이 있었다. 필자가 직접 내용을 확인하지 못한 판본, 역본이 많다. 그래서 <기독교강요>에 담긴 칼뱅의 이슬람에 대한 태도는 필자가 직접 확인한 판본, 역본을 바탕으로 검토했다.

1536년의 칼뱅의 라틴어 초판에는, '튀르키예인과 사라센인'이라는 두 개의 연관 단어가 한 문장에 담겨 있을 뿐이다. 1539년 라틴어판 2판과 1541년 프랑스어판(초판)에 '튀르크인(들)의 회당' 또는 '튀르크인(들)의 모임'이라는 단어가 한번 나온다.

한편 1959년 라틴어 최종판에서 '튀르키예인'(라틴어 Turca, 영역본 the Turks)이 다섯 번 나온다. 칼뱅은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무슬림이나 이슬람 종교 자체에 대해 의도를 갖고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기 힘들다. 오스만 튀르키예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려는 의도도 찾아보기 힘들다.  무슬림 비난이 일차 목적도 아니다. 당시의 삼위일체교리 논쟁이나 참된 교회 논쟁을 말하면서 로마 카톨릭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룬다. 때때로 유대주의, 유대교에 대한 비난을 담고 있다.

고영민 역은, 라틴어 원문에 같은 단어(라틴어 Turca, 영역본 the Turks)인대도, 다른 단어로 번역했다. '회교도'(3번), '터어키 사람', '불신자들의 집회' 등이다. 원광연 역은 '이슬람교도'(2.6.4), '회교도'(3.4.21, 4.16.24), "미개한 '터키인들'"(3.13.5), "이교도들의 회"(4.2.10) 등이 그것이다. "'미개한' 터키인들"의 '미개한'은 원문에 없는 부정적인 수식어인데, 이를 첨가했다. 문병호 역은 '투르크인들', '투르크인', '투르크 사람들'로 표기했는데, 원문의 단어가 같은데도 4.16.24에서는 '회교도'로 옮겼다. 원문과 대조하면서 읽어야할 필요성을 떠올리게 한다.

위와 같이 <기독교강요> 속의 칼뱅에게 무슬림은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본문에 담아본 라틴어는, 라틴어를 모르는 필자가 그리다시피 옮겨 적은 것으로, 오타가 있을 수 있다. 지인의 도움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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