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들의 눈으로 본 예수, 레베카 맥클러플린, 죠이북스
성경읽기, 눈으로 읽고 머리로 생각하기?
오늘 우리의 일상은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가 어우러진다. 그런데 예수 시대 절대 다수의 백성은 읽기, 쓰기가 불가능했다. 듣기, 말하기가 전부였다. 그것도 반복해서 듣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런 청중을 대상으로 예수와 복음서 저자는 '이야기', '예수의 이야기', '예수가 만난 이, 예수를 만난 이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성경을 읽는 독자에게 단지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로 전해주던 그 시절이 낯설을지 모른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이들중 다수는 듣기 보다 말하기, 쓰기보다 눈으로 읽기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 이야기는 눈으로만 읽을 때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이 많다. 들을 때 그 이야기 속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곤 한다. 눈으로 읽기의 중요성이 아니라 듣고 말하기의 중요성을 다시 떠올린다. 강원국의 아래와 같은 서술은 성경읽기와 무관한 이야기지만, 응용할 여지가 크다.
"듣기와 말하기는 한 쌍이다. 듣기만으로는 잘 들을 수 없고, 말하기만으로도 말을 잘할 수 없다. 말하기 없는 듣기는 재미도 의미도 있을 수 없다 듣기와 말하기는 수레의 양 바퀴처럼 함께 가야 한다. 듣기를 잘해야 말을 잘할 수 있도, 들은 걸 말해봐야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강원국의 결국은 말입니다, 더클, 2022, 18쪽)
'듣는 성경', '낭독 성경' 같은 프로그램으로 성경을 들어보라. 성경 이야기가 훨씬 생생하게 다가올 것이다. 감정을 넣어 소리내어 읽을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듣기, 말하기로 공유되는 성경은 생생함과 상호작용으로 펼쳐진다. 글자만 가득한 책으로서의 성경이 아니라, 이야기로 성경을 듣던 이들이 느꼈던 그 느낌이 궁금하다. 글자는 거의 없이 그림으로 가득찬 동화책을 볼 때의 그 감흥이 떠오른다. 아마도 성경 시대 사람은 성경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경이 눈 앞에 재현되는 '공감'을 느꼈을 것이다. 공감하는 성경읽기, 그것을 '여인들의 눈으로 본 예수', 이 책을 통해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여인들의 눈으로 본 예수'는 어떤 예수일까? 이 책은 제목부터가 낯설었다. 그러나 그 낯설음이 성경 속 인물, 여인의 삶의 자리를 마주하도록 열린 창이었다. 레베카 맥클러플린과 같이 듣고 말하는 과정에서 얻는 경험은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는 것을 넘어 선다. 성경 속 인물의 이야기 속으로, 일상으로 깊이 들어가 그와 공감하며,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레베카 맥클러플린, 그는 성경을 어떻게 읽고 있나?
낯설었다.
이 책은 몇가지 면에서 낯설었다. 저자 레베카 맥클러플린 Rebecca McLaughlin? 그가 누군지 필자는 전혀 몰랐다. 그런데 한국어로 번역된 책도 3권이나 되고, 영어로 펴낸 책이 상당했다. 필자가 책을 많이 읽지 않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미안한 마음에 그의 영서 가운데 일부를 이미지로 모아보기도 했다.
더하여 이 책의 추천인이 낯설었다. 추천인들이 필자에게는, 연예계 용어로 치면 일반인(?)이었다. 샘 올베리 목사이자 작가, 젠 윌킨 작가이자 성경 교사, 줄리어스 킴 복음 연합(The Gospel Coalition) 대표, 어떤 유명한 신학자도 사회운동가도 아니었다. 낯설었다. 그래서 신선했다.
낯설게 신선하게 다가오기에 좋았다.
책에 담긴 그의 어떤 표현이, 서술이 신선하게 눈에 들어왔다. 여성, 어머니, 아내, 신앙인인 저자의 다양한 정체성과 그 시선이 글에 담겨 있다. 레베카의 일상의 시선이, 그의 일상의 언어로 잘 버무려져 있다. 남자, 남편, 아버지, 신앙일 뿐인 내가 보지 못한, 필자의 시선이 닿지 못한 것을 느끼게 한다.
"복음서에서 예수를 만날 때, 우리는 성적으로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남성들과 맞서면서, 문란한 여자로 낙인 찍힌 이들을 환대하는 한 남자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성 추문에 휘말린 채 태어난 남자, 문란한 죄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여인을 사랑하여 동료 유대인 남자들을 더욱 추문에 빠뜨린 한 남자를 우리는 만나게 된다." (17쪽)
이 길지 않은 표현에는, 예수에 대한 다소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서술이 담겨 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익숙한 것에 익숙한 까닭에 낯선 표현이나 느낌을 멀리한다. 익숙한 기독교 어휘가 아니라 일상에서 덜 경건한 냄새가 뿜어져 나오는 표현이다. 멀리하는 것을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데 필자가 좋아하는 '스타일', '분위기'이다.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 그리고 다른 여러 여인과 달리, 베다니의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와 함께 여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함에도 그분을 따르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 속했다. 이 자매에게서 우리는 예수께서 사랑하신 두 여인을 본다. 한 여인은 그분의 영원히 변치 않는 칭찬을 받았다. 또 한 여인은 그분이 하신 말씀 가운데서 가장 놀라운 말씀을 받았다. 예수께는 여성 제자들이 있었을까? 그렇다. 절대적으로 예수께는 여성 제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복음이 읽히는 세상 곳곳에 그들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87쪽)
"우리는 예수께서 자신의 어머니와 나눈 대화가 여성과 나눈 가장 긴 대화일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미혼의 랍비가 대화를 나누기에 (그것도 특히 사사로이 대면한 자리에서) 가장 적합한 여성은 결국 신의 어머니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가장 긴 사적인 대화 상대는 유대인 남자라면 어떻게든 피했을 그런 여인이다. 이 여인은 요한복음에서 예수께서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분명하게 드러내신 첫 번째 인물이자, 존경받는 랍비가 혼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면 안 될 인물이다.")(97쪽)
신'학적'이지 읺아서 좋았다.
저자는 성경을 풀어준다. 그러나 개념을 설명하기 보다, 무엇인가를 평가하기보다, 이야기를 이야기로 풀어준다. 표현은 많이 섬세하다. 그리고 입체적이다.
"예수에 관한 좋은 소식을 가장 처음 들은 사람은 어느 시골 마을의 가난한 10대 소녀였다. 이 소녀는 ‘예수’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들었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걸 처음으로 알았고, 자기 아들이 하나님의 영존하시는, 죽음을 이기시는 왕이 되리라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이 소녀의 이름은 그 시대에 가장 흔한 그런 이름이었다. 이 소녀가 살던 시대와 지역에서는 유대인 여성 다섯에 한 명꼴로 ‘마 리아’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이 소녀는 그저 또 한 명의 마리아였다. 그런데 그때 이 소녀에게 천사가 찾아왔다. 작고 외진 시골 마을 소녀의 세계에 하나님이 걸어 들어오셨다."(26쪽)
저자의 삶의 이야기에 바탕을 둔 성경 읽기가 좋았다.
저자 레베카 맥클러플린과 성경 속 인물의 경험을 다시 곱씹어 보게하는, 그의 삶의 자리가 담겨 있는 자연스런 서술이 잘 어우러져 있다.
"예사 임신도 기적처럼 느껴진다. 임신 테스트기에 나타난 그 두 줄을 바라보면서 내게 일어난 일이 도무지 믿기지 않던 그날의 기억이 새롭다. 온전히 새로운 한 생명이 내 몸 안에서 떨고 있다니! 태중의 미란다가 처음 발길질했을 때, 이 생명이 또 하나의 인간이라는 사실에 나는 집중하고 집중했다. 정말이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마리아의 경험은 또 다른 무엇이었다."(32쪽)
다 아는 표정으로 덤덤하게 성경을 읽어왔던 남자 사람인 독자에게는, 다소 자극적이고 충격적일 수도 있는 묘사가 잘 어우러진다. 성경 속 등장인물의 마음과 처지, 행동에 공감하며 성경을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드러내준다.
"우리는 마리아의 눈을 통해 또한 예수를 받아들일 때 치러야 하는 대가도 본다. 출산 자체가 몹시 큰 대가를 치르는 일이다. 갓난 아기에게 밤낮으로 젖을 물린다는 것은 곧 희생의 사랑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첫 아이를 만난 기쁨 가운데서도 나는 미란다가 태어나고 나서 며칠, 몇 주 내내 울고 또 울었다. 모든 게 힘겨웠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기를 바라보고 있자면 지독한 걱정이 밀려왔다. 아기가 잠들면 영영 깨어나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기가 잠들기를 바랐다. 아기의 삶을 얻고 내 삶은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기를 사랑했고, 아기는 나를 망가뜨렸다. 2,000년 전에 마리아는 훨씬 더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출산 중에 산모인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위험에다가 그 아들이 유아기에 사망할 수도 있는 위험까지 말이다."(35-36쪽)
이 글을 보면서 오래전 아이들이 낮과 밤이 없었던 갓난아기 시절이 떠올랐다. 레베카의 말이 필자의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그의 말에 공감하도록 돕는다. 그의 시선과 감정을 따라가다 보니 거기에 덜컥 임신하게 되고, 여행 중에 출산을 하게 되는 마리아라는 작은 소녀가 있었다.
뻔하지 않은 질문을 던져주는 것이 좋았다.
각 장마다 '토론 질문'이 주어진다. 혼자서 그리고 그룹을 이뤄서 묻고 대답하고 나눌 수 있도록 돕는다. (오프라인에서 저자와 독자가 만나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 좋은 주제들로 다가온다.)
질문의 시작이 낯설게 시원했다.
- 소셜 미디어에서 포스팅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쇼를 보고 듣거나, 작품을 소비하는 것으로 당신이 ‘팔로우’하는,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 더울 때 당신은 어떤 음료를 가장 즐겨 마십니까?
토론 질문은 '첫걸음'과 '한걸음 더'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식의 유머 코드도 좋았다.
"나는 유령 작가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유령 독자가 여러명 있는데, 이번에 그들을 어둠에서 끌어내어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 것 같다."(210쪽)
"나머지 오류는 모두 내 것이지만, 그 들의 수고가 없었다면 오류가 훨씬 많았을 것이다!"(211쪽)
책의 짜임새가 좋았다.
이 책은 6개의 주제, 즉 1장 예언, 2장 제자, 3장 양식, 4장 치유, 5장 용서, 6장 생명을 다루면서, 예수를 만났던 다양한 여인들을 그리고 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마리아의 사촌 언니 엘리사벳, 그리고 성전에 간 아기 예수 를 보면서 예언한 안나라는 이름의 여자 선지자, 예수와 동행한 제자들 가운데 이름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 여성들, 예수와 가장 가까웠던 여성 친구 둘, 곧 베다니의 마리아와 마르다, 가나 혼인 잔치의 마리아, 사마리아 여인, 예수의 열두 제자 중 둘의 어머니인 한 여인, 시로페니키아(수로보니게) 여인, 열병에 걸린 시몬 베드로의 장모, 열두 해 동안이나 피를 흘린 여인, 예수께서 살리신 열두 살짜리 여자아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장애를 고쳐 주신 여인, 죄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살아온 여인,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여성들을 소개한다.
이런 꼼꼼한 엮음, 짜임새도 좋다.
그렇다면 나의 성경읽기에 무엇을 응용할까?
저자 레베카 맥클러플린은 이 책에서 "이 땅에서 삶을 시작한 첫 순간부터 예수께서는 여성들의 시선을 받으셨다. 이 책에서 우리는 그 여성들의 이야기를 살펴보고, 그 여 성들의 눈으로 본 예수께서는 어떤 이셨는지를 볼 것"(23쪽)이라고 말한다. 그의 약속이 이 책에서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독자들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와 같이 성경 속 여성, 예수를 바라본 여인들, 예수와 말을 섞은 여인들, 예수가 마주한 여인들을 만날 수 있겠다. 여인들의 눈으로 본 예수를 소개하려는(?) 저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독자로서 예수가 그 시대의 여인을 바라본 시선을 마주할 수도 있을 듯하다.
그리고 저자의 이런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신약 복음서에 대한 당신의 관점은 어떻게 발전했습니까? 당신이 읽은 내용에 비추어 예수를 묘사할 때 다섯 단어를 사용한다면, 어떤 단어들을 사용하겠습니까? 여인들의 눈으로 예수를 본 다음에 당신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까? 여기서 얻은 새로운 이해에 비추어 당신은 이제 어떻게 달라지겠습니까?
이런 책이나 이런 주제를 마주할 때면, 여성 안수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모 교단들이 떠오른다. 치열하게 가부장제를 실천하는 남자 목사, 신학자들이 떠오른다. 그들도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뜬금 없지만, <강원국의 결국은 말입니다>(더클, 2022)에 나온 아래의 말을 떠올려 본다.
"질문하면 답을 얻고 정보를 얻고 지식을 얻는다. 질문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자신을 성장시킨다. 뿐만 아니라 질문을 받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질문하면 상대가 마음을 열고 내 말에 귀 기울인다. 질문은 상대의 생각을 촉발시키기도 한다. 질문으로 관심을 보여주면 관계도 돈독해진다."
성경을 눈으로만, 글자로만 읽을 것이 아니다. 레베카 맥클러플린처럼 성경 속 인물과 묻고 답하고 일상과 생각, 감정을 나누면서 읽을 것이다.
"오늘 그 여인의 눈으로 예수를 바라보자.
이보다 아름다운 모습을 한 이는 없다."(2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