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카고 공립도서관 리틀빌리지 지점 박영은 도서관장.
“아름다운 공간은 우리를 더 사유하는 인간으로 만든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의 말이다. 그는 인간의 내면을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장소들 가운데 하나로 ‘이곳’을 꼽았다.
아르헨티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역시 ‘이곳’을 깊이 사랑했다.
시력을 거의 잃었을 때에 그는 천국을 상상하면 ‘이곳’이 떠오른다고 했다.
두 작가가 공통으로 떠올린, 사유와 위안을 주는, 영원의 성소 같은 공간.
바로 ‘도서관’이다.
이런 공간에서 20년을 살아온 사람이 있다.
시카고 공립도서관 리틀빌리지 지점의 박영은 도서관장.
그는 이민자 공동체, 어린이, 시니어, 그리고 언어가 다른 사람들을
도서관으로 연결해온 현장의 기록자이자 해설자다.
천천히, 도서관이라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본다.
그리고 그 세계를 20년간 품어온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시카고에 계시다고 하면, 당장 괜찮냐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네, 바로 요즘 이민자 단속 문제로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지역에 제가 일하는 도서관이 있어요. 시카고 공립도서관(Chicago Public Library,CPL) 산하 리틀빌리지(Little Village) 지점인데 제가 지난 6월에 관장으로 부임해 일하고 있어요. 리틀빌리지는 시카고 남서부에 위치한 지역인데 발령받기 전에는 제가 시카고에서 20년 넘게 살면서도 한 번도 와 본 적 없는 동네였어요. “중서부의 멕시코”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인구의 80%가 멕시코 출신 이민자이고, 아담 톨레도(Adam Toledo) 사건 등 뉴스에서 곧잘 다루어지는 지역이에요. 사실 이 지역은 갱단 총격으로 악명 높은 지역이라, 예전엔 저도 관심을 갖기보다는 피해 갔어요. 그런데 막상 제 일터가 되고, 도서관장으로 리틀 빌리지 지역 리더 중 한 사람이 되니, 위험해 보이기만 하던 그 길목들이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어떻게 달리 보여요?
리틀빌리지로 오는 길목들이 매일 오가는 친근한 길로 바뀌었어요. 그 길 위의 모든 사람이 제가 돌봐야 할 이웃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그들의 동네가 우리 동네가 되는 경험을 했어요. “여기가 우리 동네구나. 저기 서 계신 분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이렇게요.
요즘은 사회 정치적으로 이민자가 특히 주목받고 신분 문제로 심한 압박을 받는 때라서 도서관에서 이민자들을 위해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영어 수업이나 시카고 지역 주민들에게 발급하는 시티키 카드(CityKey Card) 발급 같은 행사가 연방 정부의 정책과 엇갈려 참가자들이 혜택을 받기 위해 도서관에 오기를 두려워하는 이상한 상황이 되기도 해요. 그래도 저는 지역 주민들께 필요하고 도서관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고 있습니다. 리틀 빌리지 지역에서 일하는 바람에 제일 어려운 분들을 직접 도울 수 있어서 감사하지요.
그전까지는 어디에서 근무하셨어요?
시카고 공공도서관(CPL)은 지점이 81개, 그리고 연간 550만 명을 서비스해요. 저는 시카고 북부 알버니 파크 지역에서 17년을 근무했어요. 그다음엔 다운타운에 있는 헤럴드 워싱턴 도서관 센터(Harold Washington Library Center)에서 일했는데, 본점은 규모나 시스템이 엄청나서 지난 3년 내내 새롭게 배우며 재밌게 일했죠. 그런데 이번에 다시 지점으로 나와 보니 또 느낌이 달라요. 무엇보다 지점이 위치한 지역의 커뮤니티를 알아야 제대로 섬길 수 있으니까, 멕시칸 커뮤니티를 이해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찾으려고 고민하고 있어요.
멕시칸 커뮤니티에 맞춰 뭘 준비하고 계세요?
우선 말씀드린 것과 같이 이민자, 디아스포라, 나그네들을 섬기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또, 멕시코 이민자 가정을 보면 아이들이 정말 많아요. 제 또래면 벌써 할머니이신 분들도 많고, 저희 지역 인구의 40%가 십 대 이하예요. 그래서 어린이·청소년 서비스를 어떻게 강화할지에 힘을 쏟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소속감을 줄 수 있는 건강한 프로그램이 없으면 이 지역에서는 아이들이 소속감을 찾고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쉽게 갱단에 들어가게 되거든요. 또 저희 지점에서 다섯 블록만 가면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교화소, “쿡 카운티 교화소(Cook County Department of Corrections)”가 있어요. 제가 다운타운에 있을 때부터 이민자나 수감자 등 특별한 관심이 필요한 고객을 대상으로 도서관 서비스를 확장하는 그룹에서 일해 왔는데, 여기에서 더 적극적으로 수감자와 가족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려 합니다.
아까 ‘섬긴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시카고한인연합장로교회(조은성 목사) 권사님이신 관장님이 뭔가 마음에 특별하게 품고 계신 뜻이 있는 듯 해요.
시카고 지역에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모여 기도하는 시카고 연합 기도회(Chicagoland United in Prayer)가 있어서, 1년에 한 번은 큰 집회를 하고, 매달 도움이 필요한 지역을 돌며 기도 행진을 하는데요. 예전엔 “그 동네는 위험해서 못 가겠다” 했던 곳들이 지금 보니 저희 도서관 바로 옆 골목이더라고요. 저희 지역은 교회 밀집도도 달라요. 집에서 도서관까지 오는 길에 위험한 지역을 지나오다 보면 이름만 듣던 사회 단체들을 줄줄이 나오고, 특히 도서관이 가까울수록 한 블록 건너 하나씩 교회들이 마주 보고 있는데, 처음에 그 풍경을 보고 눈물이 났어요. “이 도시가 폭동 없이 버텨 온 건, 여기 교회들이 필요를 채우며 사랑을 꾸준히 실천했기 때문이구나.” 저도 성도이고, 나름 이웃을 돌본다고 했는데, “나는 그동안 이 도시의 작은 이웃들을 위해서 뭘 했지?” 돌아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가 붙잡은 비전이 바로 그렇게 이민자를 섬기는 일, 어린이 프로그램 강화해서 아이들이 자기 보호를 갱단에서 찾지 않도록 돌보고 진로를 열어 주는 일, 교도소·수감자 사역, 마지막으로 제가 속한 교회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공번된 교회를 위해 제게 주어진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의 공공선을 실천하는 일, 이렇게 네 가지를 마음에 품게 되었지요
한국에서는 화학을 전공했고, 문예 창작을 공부했다.
이후 연극과 공연 예술을 선택해 박사(수료)를 마쳤고,
강사로 강단에 서서 드라마와 제작을 가르쳤다.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온 것이 2002년 7월,
처음엔 공부를 좀 더 계속해 볼 계획이었다.
■ 개인과 공동체를 변화시킨 도서관
공부하고 활동해온 분야가 도서관 쪽과 전혀 달라 보이는데, 미국 오셔서 어떻게 도서관 쪽과 연결이 되었어요?
미국 와서 처음 한 일은 방송국 기자였어요. KBC TV 같은 한국 방송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라디오 방송국에서 제 이름으로 한 시간씩 생방송을 제작하고 진행했어요. 그때 취재를 하다가 도서관에서 일하시던 한인 1세대 선배님들을 만났는데, 그분들이 시카고 공립도서관 안에서 중책을 맡고 계셨던 분들이었죠. 미 주류 사회에서 일하면서 한인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후계자를 찾고 계셨는데, 그분들이 저에게 도서관에서 일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추천하셨어요. 당시에는 일단 도서관 시스템에 들어오기만 하라고 권하셔서 저는 2005년 7월에 시카고 공립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직급부터 시작했습니다. 도미니칸(Dominican) 대학교에서 도서관·정보학 석사(MLIS)를 취득하면서 제 다양한 관심과 전문성을 아우르는 직업, 즉 ‘사서’라는 길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었어요.
그분들이 도서관 일을 해보라고 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었을 텐데요. 막상 시작해보니까 어떠셨어요? 실제로 잘 맞으셨나요?”
저는 도서관 일을 하면서 “내가 배운 것들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일”을 만났다는 생각을 해요. 같은 시스템 안에서도 사서나 관장이 하는 일과 철학이 다 다른데, 저는 사서라는 일이 굉장히 크리에이티브한 일이고, 커뮤니티와 가장 가깝게 일할 수 있는 기회라고 믿어요. 제 강점은 늘 사람과 사람, 책과 사람, 일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었는데, 도서관의 본질이 정보와 사람이 만나는 곳이고 특히 공립도서관은 커뮤니티를 돕는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잘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딱 맞아떨어졌어요. 세상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재정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정말 감사해요. 또 신앙인으로서, 성경적 가치를 실천하는 소명(calling)이 “직업(profession)”이 된다는 게 제겐 큰 복이에요.
제가 잘하는 걸 하나만 꼽아 보라면, 사람들이 각자 가진 창의성을 마음껏 펼치도록 돕는 걸 잘해요. 직원들에게 “네가 진짜 좋아하는 건 뭐야?”를 묻고, 그 관심사가 현장에서 실제로 ‘일’이 되도록 길을 터 줍니다. 제가 다운타운에 있는 헤럴드 워싱턴 도서관 센터에 있을 때, 저희 부서 사서 5명에게 각자 본인 색깔의 북클럽을 만들어 보라고 했어요. 히스패닉 백그라운드가 있는 직원은 라틴 아메리카계 작가 북클럽을, 누군가는 스페인어 북클럽, 저는 한국어 북클럽과 영어가 제2 외국어인 이들을 위한(ESL) 북클럽을, 또 다른 직원은 공상과학 소설 북클럽이나 금서(Banned Book) 북클럽을 열었고요. 아주 수줍음 많은 직원은 대화를 강요하지 않는 침묵의 북클럽(Silent Book Club)을 제안했죠. 처음엔 “조용히 자기가 가져온 책을 각자 읽고 가는 게 무슨 북클럽이야?” 했는데, 1년 이어가니 오히려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됐어요. 이렇게 사람들이 품은 생각을 펼칠 수 있도록 듣고 돕는 것이 저의 방식이에요.
지역사회와 긴밀히 소통하며 교육기관, 예술가, 공공기관 등과 폭넓게 협력해왔고, 다양한 커뮤니티와의 파트너십 사례를 발표하기도 했다. 아시아계·하와이·태평양 섬 주민(AANHPI) 서비스 위원회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몇 년 간 공동위원장을 역임했고, 도서관 내 여러 리더십 그룹에서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동안 정말 여러 일을 해오셨잖아요그중에서 가장 보람을 느끼셨던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새로운 일이 벌어지고 그 일을 통해 누군가 삶이 바뀌는 경험을 지켜보는 것이 보람 있어요. 현재 저희 도서관에서 청소년 사서와 지역 단체들이 연대해서 청소년 수감자들의 그림과 시를 전시하고 있어요. 전시 제목은 <펼쳐진 성취 Unlocked Achievement>예요. 개막식 때는 출소한 아이 두 명이 와서 자기 시와 그림의 배경을 이야기했고, 참가자들이 즉석에서 답시를 써 주고, 작품에 있는 QR 코드를 이용해서 응원의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청소년·출소자 지원 단체들의 부스에서는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는 연결의 장이 만들어졌어요. 이런 식으로 필요한 사람들이 계속 필요한 것들을 만나는 장면들을 많이 경험합니다. 저희 시스템 안의 직원만 900명 가까이 되다 보니, 내부 협업도 매우 활발하고 공동 작업을 통해 보람 있는 성과를 얻는 순간이 많아요.
도서관에서 일을 하시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을 것 같은데, 그중에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분이 계실까요?
제가 사람이든 일이든 뭘 만나도 신기해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동료든 이용자든, 프로그램 발표자든 누구를 만나든 다 인상 깊었어요. 하나만 고르기가 진짜 어렵고, 거의 모든 분들이 다 잊을 수 없는 인연이에요. 수십 년 넘게 자원봉사하시면서 자기가 마실 물까지 늘 들고 오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떠오르고요. 매주 보드게임 프로그램에 오시던 분이 계셨는데, 그분의 부고를 통해 그분이 하버드 대학 경영학과 입학 때 심사관들에게 게임을 에세이로 써내었던 일화를 읽게 되었어요. 매번 다음 수를 둘 때마다 시간을 끌어서 다른 참가자들에게 구박을 받던 그 평범한 할아버지가 하버드 출신으로 경영과 사업의 대가였던 것을 돌아가신 뒤에야 알게 된 거죠. 도서관에서 만나는 분들 이야기가 하나하나 다 재미있고 뜻깊어요.
제가 북클럽을 20년 했거든요. 그동안 매달 빠지지 않고 20년째 오시는 분도 있어요. 영어가 제2 외국어인 분들을 위한 북클럽(ESL Book Club)을 만들었어요. 그 때 기존의 영어북클럽 회원들이 북친구(Book Buddy)가 되어서 영어책 읽기를 도우려고 자원해주셨는데, 10년이 지나니 양쪽이 서로 가족 같은 친구가 되었더라고요. 다양한 나라에서 처음 미국에 왔던 이민자 분들은 자원해 주신 분들 도움 덕분에 영어뿐만 아니라 삶 전반에서 큰 힘을 얻었다고 하시고요. 미국인 자원봉사자 분들은 이민자들과 책을 읽고 교류하면서 ‘내가 더 많이 배웠다’, ‘마음이 열린 경험이었다’고 하세요. 양쪽 다 삶이 바뀐 거죠.
한국 커뮤니티를 위한 활동도 하셨어요?
시카고 공립도서관 81개 브랜치 중 한국어 도서를 소장하는 네 지점을 위해 다양한 일을 했어요. 매년 한국에서 출판된 신간을 200여 권 정도 주문하고, 한국어 북클럽도 운영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미국에 와서도 한국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자리에 두셨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죠. 한국계 미국인의 삶과 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많이 진행했고, 특별히 도서관 내 아시안 문화부 활동을 통해 아시안 문화유산의 해인 5월마다 81개 지점 전체를 위한 공연·전시·토론 등으로 한국·중국·일본을 비롯한 아시안 전체 문화를 알릴 기회도 많았어요.
팬데믹 동안엔 온라인으로 프로그램을 많이 했어요. 중동 쪽 권위자인 이희수 교수님의 터키 문화 강연, 뉴욕 영화감독들의 한국 소재 단편영화 상영과 토론, 줌 인터뷰 등도 했고, 그런 콘텐츠들은 다 시카고 공립도서관 유튜브 아카이브에 남아 있어요. 유수한 상을 받은 한국 셰프를 초대해서 만둣국이나 순두부를 함께 만들며 문화 이야기 나누는 프로그램은 특히 인기였죠. 이런 경험들을 통해 하나님이 저를 한국 문화를 전하는 자리에서 계속 훈련시키셨다는 걸 느꼈어요.
코라안 아메리칸 아카이브 프로젝트(Korean American Archive Project)도 하셨다고 들었어요.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2022년에 저희 도서관 역사 담당 사서 두 분과 함께 진행한 ‘한국계 미국인 역사자료 보관 프로젝트인데요. 마침 일리노이에서 아시안 역사 교육에 관한 법령 ‘TEAACH Act’가 통과되면서 아시안 역사 교육이 공립학교에서 의무화됐지만 교재와 1차 사료가 부족했거든요. 그래서 시카고와 중서부 한인들의 기록을 우리가 직접 모으자고 한 거예요. 도서관이 고유한 컬렉션을 갖는 것도 중요했고요. 자료를 정리하고 디지털화하는 데만 2년이 걸렸고, 2024년에 1차 작업이 마무리됐어요. 지금도 매달 회의하며 업데이트하고 있어요.
도서관은 단지 책을 꽂아두는 저장고가 아니다.
그곳은 지식을 나누고 사람을 연결하는 가장 열린 학습의 장이며,
조용한 숨결 속에서 생각과 사람이 가장 촘촘히 만나는 사유의 공간이다.
도시의 시간을 보관하는 아카이브이자,
어떤 이에게는 일상을 잠시 피할 수 있는 피난처이며,
또 다른 삶을 배우는 두 번째 학교가 되기도 한다.
예배당이 품어오던 돌봄과 환대의 기능,
곁을 지키는 공동체의 역할 가운데 일부는
이제 도서관이라는 공공의 공간이 조용히 이어받고 있다.
■ 사람의 온기를 잇는 공동체, 도서관
도서관에서 일하시려면 항상 공부하셔야할 것 같아요.
도서관 시스템의 강점 중 하나가 직원들의 지속적인 전문 교육(Professional Development) 프로그램이에요. 지식을 다루고 전달하는 게 우리의 일이다 보니, 지식의 트렌드나 저장 매체가 바뀌면 우리가 먼저 배워야 해요. 선거철이면 시민 교육, 최근에는 이민, 자기 권리, AI처럼 시대가 바뀔 때마다 우리는 늘 반 걸음 앞서 준비해야 합니다.
요즘은 멕시코 문화 탐구에 빠져 있지 않으실까… 어떠세요?
얼마 전 멕시코시티를 다녀왔어요.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했고요. 저만 배우는 게 아니라, 멕시코 대사관이나 멕시코 국립대학(UNAM)의 시카고 지점과 협력해서 스페인어 수업을 여는 걸 추진 중이에요. 토요일에는 언어 교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고요. 또 제가 이쪽 지역으로 옮겨 와서 보니까, K-Culture처럼 자기 문화를 화려하게 드러낼 기회가 ‘죽은 자의 날’ 같은 행사를 빼고는 별로 없어요. 멕시코 문학과 문화를 알릴 기획을 하고 있고요. 무엇보다 저희 지점에서 한국어 클래스를 열어보려고 해요. 시카고 지역 히스패닉 커뮤니티 구성원들을 보면, 한국 분들이 주인으로 있는 세탁소나 음식점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어를 알면 의사소통에서 덜 고생할 수도 있고, 자기 목소리를 잘 전달할 기회도 생길 텐데 싶어서 늘 안타까웠어요. 이제 한국인은 전문가도 너무 많고, 또 미국에서 자란 한국인 2세 중에는 스페인어를 잘하는 분들도 많으니까 그런 분들이 리틀 빌리지 지역을 함께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멕시코 사람들을 비롯한 미국인들이 요즘 한국을 정말 좋아해요. 작년에는 시카고 한국 영사관과 시카고 한인회에서 다운타운 데일리 공원에서 ‘한국의 날’ 행사를 했는데, 만 명 이상이 왔어요. 저희도 그때 시카고 공립도서관 부스를 설치해서 하루에만 500명 이상에게 도서관 카드를 발급했고요. 너무 큰 성공이었어요. 이제는 ‘우리 한인 커뮤니티가 받은 게 많은 만큼 나눌 때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특별히 지금처럼 히스패닉 커뮤니티가 어려울 때 베풀고 한인들이 계속 우리보다 부족한 커뮤니티들을 도우며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겨요.
관장님께서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오셨는지 느껴집니다. 마지막으로, 관장님께 의미 있는 책 한 권을 골라달라고 부탁드려도 될까요? 혹시 한 권만 고르는건 너무 무리일까요?
제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올 때만 해도, 집 형편도 넉넉하지 않았는데 한쪽 벽을 꽉 채울 정도로 책을 챙겨 왔어요. 아마 5천 권 가까이 됐을 거예요. 그냥 책을 놓고 온다는 생각을 못 했죠. 그런데 하나님이 그걸 다 내려놓게 하시더라고요. 집에 홍수가 나서 못 쓰게 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정리하게 됐어요. 또 도서관에서 일하고 책을 쉽게 찾을 수 있게 되고 보니 집에 두고 싶은 책은 오히려 줄어들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제 책장에 남아 있는 책들은 아마 저한테 큰 영향을 준 많이 중요한 책들일 수밖에 없겠죠. 성경은 말 그대로 책이라기보다 제 삶의 근원 같은 살아 있는 양식이고요. 성경 다음으로는 제가 C.S. 루이스의 책들을 정말 좋아해요. 무슨 질문이 생길 때마다 루이스의 다른 책들을 꺼내 보게 돼요. 하나만 꼽기가 정말 어려울 정도예요. 『피고석의 하나님』같이 우리가 부딪히는 문제들에 관해 구체적으로 논쟁하는 책을 보면서 요즘 같은 때야말로 이런 식의 토론이 가능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해요.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악한 사람인지 자꾸 잊어버리려고 하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같은 책을 다시 꺼내 보게 되고요.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때는 C.S. 루이스의 『헤아려 본 슬픔』을 세 번은 읽은 것 같아요. 『나니아 연대기』도 처음에는 그냥 어린이 소설인 줄 알고 읽었지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다시 읽으니까 전혀 다르게 보였어요.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말씀과 연결되고, 왜 그런 말을 하고 행동하는지가 성경이랑 1대1로 대응되는 걸 보면서 정말 놀랐어요. 그래서 제 인생의 책을 꼽으라면 결국 성경과 C.S. 루이스 책들이에요.
진짜 마지막으로, 하나 더 여쭐게요. 요즘 관장님의 기도 제목은 뭔가요?
제가 요즘 기도할 때 제일 중심에 두는 건 ‘분별력’이에요. 한동안은 정부의 정책과 제 신앙적인 신념이 부딪히기도 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이름은 있는데 하나님의 뜻과 다른 일들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어요. 심지어 도서관에서 하는 일과 정책은 대개 맞닿아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달라졌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러다 보니 혹시 오늘 도서관에서 사건이 생기면, ‘매니저로서 내가 따라야 할 프로토콜’은 따라가야겠지만, 제가 자신 있게 행동하기 위해서 ‘성도로서 내가 취할 태도와 저것이 아닌 이것을 선택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답이 필요해요. 그게 요즘 늘 기도 제목이에요. 내가 알고 있는 것, 경험한 것에 매달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서 모든 상황을 분별할 수 있게요.
또, 저는 직장에서 하나님을 직접 말할 수 없는 환경이기에 성경 말씀이 먼저 제 귀와 몸과 마음과 삶에 배어서 제 모든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진짜 말씀으로 살아내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게 제 가장 큰 기도죠.
그리고 항상 겸손하기를 기도해요. 제가 지금은 관장이지만, 20년 전에는 도서관에서 제일 낮은 직급으로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반납한 책을 제자리에 꽂는 일부터요. 당장 한국 국회도서관에 가도 내 논문이 몇 편 있는데, 여기서 왜 책을 꽂고 있어야 하나 갸우뚱했는데,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훈련시키셨구나’ 생각하게 됐죠. 지금 리더나 멘토 역할을 할 때 바닥부터 시작한 그 경험들이 제 안에 힘이 돼요. 도움을 줄 때도 그냥 ‘도와주는 척’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실제로 도울 수 있는 힘이 생긴 거죠.
돌아보면, 진짜 하나님이 어떻게 이렇게 계획하셨나 싶을 때가 많아요. 그리고 하나님이 제게 하시는 말씀은 늘 같았던 것 같아요. ‘오늘, 지금, 네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해라.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너를 향한 내 계획이다.’ 지금은 제가 있는 리틀 빌리지, 이 작은 마을에 하나님이 저를 도서관장으로 두셨으니 여기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죠.
박영은 관장과 인터뷰를 마친 그날 저녁, C.S. 루이스의 《The Four Loves》를 다시 펼쳤다.
그리고 이 문장에서 눈길이 멈췄다.
“이웃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며, 우리가 가장 먼저 부르심 받은 자리에서 시작된다.”
그의 책상이 있는 곳, 그가 걸어 다니는 길, 그가 맞이하는 사람들 모두 그 문장의 증거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