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이민역사와 함께한 ‘어머니 교회’, 세대를 잇는 믿음의 공동체
[시카고=최병인 기자] 시카고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담긴 102년 된 교회, 시카고한인제일연합감리교회(Chicago First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 1923년 개척 이래 시카고 지역 한인 사회의 영적 중심이자 연합감리교단 내에서도 상징적인 교회로 자리매김해왔다.
초대 담임목사였던 고(故) 김창준 목사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으로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미국 땅까지 이어갔던 인물이다. 신앙과 민족의식이 교회의 DNA 속에 깊이 새겨졌기에 이 교회는 ‘어머니 교회’, ‘민족 교회’, ‘장자 교회’로 불려 왔다.
1920년대 극히 미약했던 한인사회에서 교회는 이민자들의 언어적·문화적 고향이 되어 주었다. 예배당은 독립운동의 열정을 나누던 장소이자 신앙 공동체로 서로를 위로하던 피난처였다. 그 정신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교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기둥으로 남아 있다.
지난 주일(14일) 드려진 창립 102주년 기념예배는 교회의 역사를 돌아보고 새로운 세대를 향한 사명을 다짐하는 자리였다. 담임 조선형 목사는 우주와 별의 신비를 비유로 삼아 인간 존재의 보잘것없음을 강조했다.
“천억 개의 별을 가진 은하가 수조 개 존재하는 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 지구는 티끌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작은 지구 위에, 그것도 시카고 땅에 하나님께서 102년 전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가 존재한다는 사실 앞에 겸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 목사는 교회다운 교회의 조건을 “예수님처럼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성도들이 자유를 권리로 사용하지 않고 사랑으로 서로 종이 될 때 교회가 참다운 공동체가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예배에서는 50년 이상 교회를 섬겨온 장기근속 교인 12명을 위한 감사의 자리가 마련됐다. 이들은 오랜 세월 묵묵히 기도와 봉사로 교회를 지탱해 온 보이지 않는 신앙의 기둥들이었다.
“1975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이었다”, “걸음마다 은혜였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53년간 교회를 섬길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는 각각의 장기근속자 고백이있었다.
특히 맹숙영 권사는 무려 64년간 교회를 지켜온 최장기 근속 교인으로 소개되며 큰 박수를 받았다. 교회는 감사패를 전달하며 “그의 삶은 뿌리 깊은 나무처럼 교회를 든든히 세운 신앙의 증거”라고 기렸다.
조 목사는 “102년의 역사는 곧 이분들의 눈물과 헌신의 역사였다”며 “장기근속 교인들의 발자취는 교회 전체의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기념예배는 다양한 순서들로 더욱 빛났다. 김기석 목사, 김영봉 목사, 손태환 목사, 정희수 감독등이 축사를 전해 교회의 102주년을 축복하며 “시대마다 복음의 증거가 되는 교회”가 되기를 당부했다.
또한 차인홍 교수가 간증과 함께 바이올린 연주를 선보였다. 그는 신앙의 여정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며 아름다운 선율로 회중의 마음을 울렸다. 교인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100년을 넘어 지켜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다시금 고백했다.
예배 후 이어진 임직식에서는 서우진 장로 임직과 권사·집사 임명이 있었다. 새로운 일꾼들이 세워지는 순간, 교회는 과거 102년의 신앙 유산을 이어받아 미래 100년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다졌다.
“교회는 권리를 주장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 종이 되어 섬기는 공동체입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와 자유를 이제 사랑으로 사용하며, 세대를 아우르는 교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조 목사의 당부처럼, 임직식은 교회의 새로운 헌신과 비전을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102년 전, 작은 한인 공동체의 언어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세워진 교회, 어려움도 있었지만 이젠 세대를 이어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신앙의 구심점으로 자리 잡아가고있다. 우주적 차원에서는 보잘것없는 존재일지라도, 하나님의 목적과 은혜 안에서는 그 의미를 헤아릴 수 없음을 이날 모든 성도들은 고백했다.
조 목사는 마지막으로 “우리가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신다는 사실을 경험한다”며 “앞으로도 교회다운 교회, 주님의 종으로 서로 섬기는 공동체가 되자”고 권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