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이만열.홍정길.이동원.이승장.김세윤님께서 참으로 크게 회개하시고 개혁의 깃발을 높이 든다면 님들의 뜻을 따라 지금까지 개혁의 길을 헐떡거리며 따라왔던 많은 사람들이 함께 깃발을 들 것이다.”

강경민 목사님의 글에서 본 내용입니다. 강 목사님은 “님들”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정말 “님들”이시고 “님들”이실 수 있을까요?

한 마디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그분들이 나와 무리를 이끌어 전광훈과 손현보를 따르는 무리들과 한 판 대결이라도 벌려보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열두 영 더 되는 하늘의 군대가 생각납니다. 주님은 그런 일을 거절하셨습니다.

여러 생각들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저도 사실은 그분들을 존경하고 그분들에게 배우고 그분들을 따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내 노력이 성공을 향한 상향으로의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치열한 가난 속에서 저는 그것을 천천히 깨달아야 했습니다.

결국 그분들이 가신 길이라는 것이 강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개혁이나 올바른 길이 아니라 화석화된 그리스도교 안에 있는 나름 최선의 노력이었다는 것, 다시 말해 그분들이 가신 길의 본 모습을 발견한 것이지요.

분명 “님들”께서 가신 길은 ‘영광의 길’이었지만 그 영광은 그리스도의 영광이 아니라 님들 본인들의 영광이었지요. 그분들의 사역이나 인격이 잘못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화석이 된 그리스도교를 그분들이 발견하지 못한 것이 첫 번째 이유겠지만 그분들은 최소한 자신들이 그렇게 세상에서 온갖 호사를 다 누리며 살았다는 엄연한 사실을 발견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힘들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자신들이 간과했다는 사실 역시 발견해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들이 가신 길은 분명 ‘영광의 길’이었지만 그것은 분명히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 등장하는 부자의 삶이었습니다.

그분들이 자신들의 교회를 흩어 한국교회에 나누지 못한 것은 알량한 ‘자기 의’에 지나지 않았고, 그것은 자신들이 가진 힘과 영향력으로 하나님 나라를 허문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동원 목사님께서 은퇴의 자리에서 하신 회개 가운데 하나가 잘 사는 교인들이 상처를 입을까 봐 부자들에 대한 경고를 있는 그대로 전하지 못했다는 내용의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잊히지 않습니다.

참 좋은 내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은퇴 후에는 자신이 먼저 그렇게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시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달변의 설교를 통해 부자들에게 우회로를 알려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때라도 그분들을 존경하던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배은망덕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그분들을 존경했기 때문에 더더욱 안타깝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최소한 이동원 목사님이시라면 은퇴 전에 지구촌 교회를 흩어 한국교회 개혁의 마중물이 되기를 바랐지만 그것은 한낱 쓸 데 없는 바람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홍정길 목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의 실천은 놀라운 것들이었지만 그것들이 그분을 폭력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에 참석하지 않았던 신학생들에게 육두문자를 날리셨고, 더 실망스럽게 얼마 전에는 전광훈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도 하셨습니다. 젊어서는 목사들에게 박사 공부를 하지 말라고 일갈하시던 분이 자신의 교회 목사들을 박사들로 채우셨습니다. 결국 힘과 영향력에 함몰되신 것이지요.

옥한흠 목사님이 교회가 커지자 떠나는 가난한 교인들을 바라보며 강단에서 눈물을 흘리셨다는 일화를 보고, 그분에 대한 실망은 일찍 시작되었습니다. 그분이 예수의 제자라면 사랑의교회를 떠나는 가난한 교인들과 함께 사랑의교회를 떠나셔야 했고 오정현 목사님과 같은 위대한 분을(대인을) 후임자로 삼지 않으셔야 했습니다. 지배하고 통치하는 사람의 정체성이 드러난 것이지요.

하영조 목사님 역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위대한 실천을 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은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임종 전에 교인의 간을 이식하신 것은 삶에 대한 그분의 인식을 드러냈습니다. 그 일이 의식이 없어진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결정으로 이루어졌을지도 모르지만 예수의 제자라면 그래서는 안 되었습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가 아니라면 그런 결정이 내려질 수 없습니다. 그런 사고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자체를 허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했던 만큼 이분들에 대한 저의 좋은 기억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분들은 그렇게 좋은 것들 때문에 망했습니다. 제 생각이지만 아마도 “님들”께서도 바리새파 사람들이 들었던 동일한 내용을 주님께 들을 것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와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들은 버렸다. 그것들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했지만, 이것들도 마땅히 행해야 했다. 눈 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키는구나!"

저는 강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그분들이 나서시면 전광훈 무리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는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폭력을 거절하셨습니다. 힘과 영향력도 거절하셨습니다. 그분은 오직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모든 율법을 한 마디로 요약하여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관계는 일정 한계를 넘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그것으로 대형교회를 이룰 수는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강 목사님도 너무 큰 교회를 목회하시느라 이 일을 시도하지 못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형교회는 권세입니다. 그런 교회는 권력 자체가 들어설 수 없는,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저는 “님들”을 소환하시는 강 목사님의 안타까운 마음과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누룩처럼 부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와는 무관한 일입니다. “님들”이 전광훈·손현보 무리로부터 린치와 모욕을 당하시지 않도록 그분들을 소환하지 않는 것이 강 목사님이 오히려 하셔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작은 자들의 나라입니다. 저는 강 목사님이 말씀하신 “님들”께서 주님께로 돌아가시기 전에 주님처럼 모든 것을 비우고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강 목사님 말씀대로 교인들을 광장에 모아놓고 일갈하실 것이 아니라 기회가 남아 있을 때에 “님들”께서 이제까지 걸으셨던 영광의 자리에서 내려와 가장 가난한 자가 되어 가난한 자들을 섬기는 분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작권자 © 미주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