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문제로 분쟁 중인 분당 대형 교회, 문제 제기 교인들 '출교'
명예훼손, 건조물 침입으로 형사 고발도…ㄱ사모, 재심 청구 및 법적 대응 시사
오늘 아침 본 기사의 제목이다. 심드렁하다. 이젠 이런 현실이 교회의 일상이 되었다. 문제가 없는 교회는 없다. 그러나 그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교회를 가른다. 위 제목과 같은 경우, 해당 교회는 스스로 교회가 아님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것이다.
이 간단한 제목을 통해 우리는 맘몬의 신전이 된 교회를 확인한다. 이들이 아무리 하나님을 앞세우고,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해도 이들의 삶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를 이들은 교인수로 합리화한다. 대형교회는 성령의 사역의 결과물이라는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사고는 명확하다. 대형교회뿐만이 아니라 정통 교파나 교단, 혹은 주류라는 사실은 이들의 교회가 참 교회라는 사실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나는 분명하게 그것을 구분할 수 있다. 나는 이단 판별사가 아니라 참 교회 판별사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맘몬의 신전과 확연하게 구분된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교회다. 이들은 반드시 소유를 나눈다. 그래서 나는 참 교회의 표지가 ‘소유를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서로 사랑하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아무도 제 재물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없는 공동체가 된다. 그런데 이것이 이단의 전유물처럼 인식되는 그리스도교가 되었다. 그리고 참 교회와 이단인 교회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우맹’들이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복음은 명확하다. 그러나 인간들은, 아니 사탄은 그것을 교리로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다. 나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추구하면서 교리무용론자가 되었다. 물론 나도 한때는 교리를 신봉하는 자였고, 특히 조직신학에 매료된 적이 있다. 교리신봉자가 되면 그 근거가 되는 조직신학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교리신봉자가 되면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를 보호하기 위한 투사들이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를 보호하는 것은 인간의 역할이 아니다. 또한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가 망하는 것은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만일 정말 잘못된 교리 때문에 망하거나 소멸한다면 그런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는 망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인간이 보호해드려야 하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시다.
그러나 사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기까지 여러 단계를 지나고, 특히 가난이라는 난관을 오래 지나야 했다. 이제 나는 나를 만나자는 사람들을 가급적 만나지 않는다. 내 글을 읽고 내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정말로 내 글이 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 나는 그런 사람들을 이해한다. 그들은 내가 지났던 여러 단계들을 거치지 않았고, 특히 가난이라는 난관을 지나지도 않았다. 그들의 관심과 열정이 거짓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은 없다. 결과적으로 안락한 삶, ‘소확행’과 같은 세상이 줄 수 있는 평안을 거부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하는 방법은 글을 쓴 나를 부정하는 것이다. 내 글과 내 삶이 다르다든지, 내가 성격이 이상하다든지, 내 인격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이유로 나를 떠날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어낸다. 처음에는 이런 현상이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이스라엘이 선지자들을 대하던 전형적인 방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그런 쓸모없는 소모전을 피하기 위해 아예 만남 자체를 피하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바로 대형교회들과 소위 말하는 유명한 목사들이다. 한 예로 나는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와 같은 분을 들 수 있다. 그분과 짝을 이뤘던 복음주의 4인방이라는 분들 역시 그분과 마찬가지다. 이분들은 인격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다. 그분들이 하신 일 역시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잘못된 것들이 바로 이런 분들이었다. 이런 분들 때문에 교회가 커지는 것이 성령의 역사가 되었고, 전도폭발과 같은 폭력적인 선교방식이 일반화되어, 장인과 도제식 그리스도인 양육방식이 이 시대에 다시 소환되지 못했고, 복음의 폭발력이 사라진 중산층 이상의 세련된 그리스도교 신앙이라는 신앙의 방식이 그리스도인의 일상이 되었고, 무엇보다 코스타와 같은 사역을 통해 고지론과 엘리트주의가 그리스도교 안에 귀감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이외에도 복음적이지 않은 관습들로 구성된 인간중심의 세련된 신앙을 참된 신앙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안타깝지만 그분들은 힘과 영향력을 사용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그분들이 하신 모든 일이 그리스도가 아니라 맘몬을 위해 하는 일이 되었다.
네까짓 것이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그분들과 그분들을 추종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폄훼하고 비난할 것이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내가 단골로 지적하는 코스타의 경우, 그곳의 관련자들은 세련되게 내가 지적하는 것이 자신들이 가장 고민하며 유념하는 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하지만 결국 유학생들을 특별한 사람들로 여기는 그들의 애초의 정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나라의 평등을 허물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
나는 그분들이 그렇게 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분들은 힘과 영향력을 통해 가진 자들이 되었다. 그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사막으로 들어가야 했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분들은 가난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분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던 부자처럼 사셨다. 그분들의 교회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결국 그분들은 “온갖 호사를 다 누린” 부자들이 되었다. 자신들의 모범으로 수많은 추종자들이 똑같이 되었다는 책임을 그분들은 떠맡으셔야 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작은 자들의 나라다. 힘과 영향력을 추구하는 자들은 작은 자라도 작은 자가 아니다. 큰 자들의 겸손은 아무리 진지해도 위선이 될 수밖에 없다.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잘 살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역행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세상에 안주하게 되고, 죽음 이후의 세상도 세상에서의 삶과 동일하기를 바라게 된다. 그것은 지폐를 받고 돈(동전)을 달라고 우는 어린아이와 같다.
내가 존경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기꺼이 버리고 자신이 먼저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자가 되어 세상의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섬겼다. 큰 자가 되어 작은 자들을 섬기겠다는 것은 악마의 속삭임이다.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자들을 섬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그들보다 더 보잘 것 없어져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어려운 것은 이 길을 선택하기가 두렵고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기 위해서 택해야 할 유일한 길이며,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유일한 증거이다.
테레사 수녀님이 정초가 된 ‘사랑의 수녀회’에서 하는 “가장 가난한 자가 되어 가난한 분들을 섬기겠습니다.”라는 서약이아말로 참된 복음 이해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렇다면 가장 가난한 자(작은 자)가 되겠다는 마음의 소망이 있는지를, 그래야 한다는 성령의 속삭임을 듣고 있는지를 확인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