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일그러진 자화상, 로마제국의 기독교”
초대교회란,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님나라운동을 이어가는 교회 공동체를 설립하기 시작하여, A.D 476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할 때까지의 기독교를 말한다. 그 이후부터는 일반적으로 중세교회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러한 시기를 구분할 때 하나의 큰 분기점이 되는 것은, A.D 313년 로마의 코스탄티누스 황제가 이전까지 불법이었던 기독교를 공인한 사건이었다. 이때부터 기독교는 로마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던 종교에서, 그와 반대로 박해를 하는 제국의 종교로 바뀌게 되었다.
한국교회의 역사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 하에서 ‘신사참배’를 강요받으며 박해를 받던 기독교가 1945년 해방이 되고 미군정의 통치가 시작되면서, 미국의 보호 아래 엄청난 특혜를 누리는 종교로 바뀌게 된다. 한국에 있던 일본 제국주의의 ‘적산’ (敵產) 중에서 일본 ‘신사와 천리교’가 소유하고 있던 재산과 땅을 모두 기독교인들에게 무상으로 불하해 주었다. 이때부터 한국 기독교는 일본제국주의로부터 박해를 받던 종교에서, 미군정과 국가의 보호 아래 엄청난 특혜를 누리는 기득권의 종교로 바뀌게 되었다.
소위 한국 ‘대형교회’의 토대는 이처럼 미군정의 특혜에서 시작되었다. 한국기독교는 진보든 보수든,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 땅에 세웠던 제국 종교의 ‘신사’(神社)와 일본 불교인 천리교의 ‘절’ 터 위에다가, 그곳을 다시 리모델링 해서 ‘교회’를 세운 것에서 출발한다. 이때 세워진 교회 중에서 가장 상징적인 곳이 ‘예장 통합’을 대표하는 <영락교회>와 ‘기장’을 대표하는 <경동교회>다. 한국교회들은 이전까지 지하 단칸방에서 숨어 지내다가 갑자기 서울 도심의 한복판에 빌딩을 갖게 된 것이었다. 한국이든 유럽이든, 기독교의 역사에서 다시 한번 뒤돌아보고, 그 모습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고 성찰해봐야 할 지점이다. 교회 ‘건축’이란 제국의 종교가 되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초대 기독교 공동체에서 건물이나 건축은 존재할 수가 없었다. 로마제국의 기독교가 되면서 그리스 로마의 ‘신전’이 교회가 되었고, 한국에서는 미군정 하에서 일본제국의 ‘신사’와 ‘절’이 교회가 된 셈이다.
물론 기독교의 역사에서 이런 모습이 전부는 아니다. 초대교회와 종교개혁의 정신을 잇는 기독교가 현재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로마제국과 국가 권력에 저항했던 그리스도교 공동체운동의 전통을 계승해가는 교회들이 있다. 대표적인 교회가 재세례파 운동을 이어가는 메노나이트와 퀘이커 공동체 등이다.
“제국이 박해하고 무시하던 시절의 초대교회, 하나님나라의 모습에 가장 가까웠다”
지난 2,000년 역사에서, 교회가 고통과 박해를 받으며 가장 ‘하나님나라의 모습’에 가까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 교회는 기득권자들에게 무시받고 천대받았지만, 약하고 소외받는 가난한 사람들의 희망이었으며, 세상에서는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종교였다. 이 시기의 기독교를 우리는 ‘초대교회’라고 부른다. A.D 300 년 이전까지, 교회는 로마제국의 국가 권력으로부터 조직적인 박해를 당했고, 로마의 기득권자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았다. 로마의 엘리트 지식인들은 속칭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천한 종류의 인간으로 취급했고, 이들이 모이는 공동체를 경멸하고 무시했다. 그러나 이처럼 교회가 ‘개고생’을 하던 시기의 기독교 공동체는 지금까지 있었던 그 어떤 시기보다 가장 하나님나라의 모습에 가까웠다.
당시 로마에는 최고 문명을 자랑하는 종교들이 있었다. 전통적인 그리스의 종교, 이집트 문명의 종교, 터키의 종교 등이 모두 들어와 있었다. 로마는 세상과 우주의 중심이었고, 그곳에 역사적으로 최고 문명을 자랑하는 종교들이 결집해 있었다. 이런 제국의 문명에서 초대교회는 미신 혹은 이단을 믿는 3류 종교로 취급 받았다. 그런데 어떻게 모든 고등 종교들을 물리치고, 로마제국의 ‘기독교’가 될 수 있었을까? 약 300년 동안의 로마 역사에서 초대교회는 어떤 변화와 발전을 했던 것일까? 당시 사람들은 어떤 이유 때문에 가장 천한 종교로 취급받았던 기독교를 주류 사상과 신앙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오늘날 기독교가 제국의 종교, 기득권의 교회가 되어버린 현실에서 어떻게 하나님나라의 모습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 초대교회의 하나님나라 이야기에서 그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 모습을 갖는 원리는 그 때나 지금이나 동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종교가 되는 것은 세월이 흘러도 같은 원리일 것이다. 그 원리란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가 복음으로 선포되는 것이며, 그 복음 안에서 하나님나라 운동이 펼쳐지는 것이다.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는 ‘어둠과 혼돈에서 빛과 질서를 만들어가는 이야기’이다. 창조 이야기는 한 번만 있었던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는 연속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어둠과 혼돈에서 끊임없이 빛과 질서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창조 이야기이며, 이것이 기독교 신학과 하나님나라 운동의 핵심 사상이다. 로마제국주의가 ‘팍스-로마나’라는 거짓 평화를 이루었을 때에도, 그 어둠과 혼돈에서 새로운 빛과 질서를 만들어내는 ‘새창조’ 이야기가 초대교회의 하나님나라 운동이었다. 지금도 그 하나님나라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져야 할 것이다.
“초대교회의 하나님나라 운동은 어떤 이야기인가?”
성경에서 하나님나라의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이야기가 <이사야>에 나온다. “그는 주님을 경외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 그는 눈에 보이는 대로만 재판하지 않으며, 귀에 들리는 대로만 판결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을 공의로 재판하고, 세상에 억눌린 사람들을 바르게 논죄한다. 그가 하는 말은 몽둥이가 되어 잔인한 자를 치고, 그가 내리는 선고는 사악한 자를 사형에 처한다. 그는 정의로 허리를 동여매고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는다.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리 아이가 그것을 이끌고 다닌다.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이다”(이사야 11장 3-9절).
이 본문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코스모스’(cosmos)의 세계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세상의 모습이 하나님나라가 꿈꾸는 세상이다. 사자가 양을 잡아 먹지 않고, 어떻게 ‘풀’을 뜯어 먹고 사는 것이 가능할까? 약육강식이나 승자독식이 사라지는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예언자 이사야는 주님의 영이 임하고, 주님을 아는 지식이 세상에 가득차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인간의 역사가 제시하는 ‘혁명’의 방식은 이와 정반대다. 어린 양이 반란을 일으켜서 사자의 목을 베고, 그가 사자의 자리에 올라서서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다. 성경은 이러한 혁명의 방식을 지지하지 않는다.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공존하는 비폭력의 평화로운 세상을 제시한다.
초대교회 사람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 ‘비폭력’ 평화운동이었다. 이들은 예언자 이사야가 제시한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신앙의 핵심 사상으로 받아들였다. 예수님이 예언자 <이사야>의 말씀을 복음의 핵심 사상으로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에서 그대로 실천하였다. 신앙과 삶의 윤리를 서로 구분하지 않았다. 종교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는 <기독교 승리의 발자취> 책에서 초대교회 사람들의 신앙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어떻게 죽을 인생에 불과한 사람들이 피부가 벗겨지고 그 위에 소금이 뿌려지는데도 끝까지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일까? 어떻게 사람이 꼬챙이에 꽂힌 채로 서서히 구워지는 데도 신앙을 지킬 수 있었을까? 이러한 행위는 사실상 초자연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것을 지켜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손이 순교자들 위에 함께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이교도들 또한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순교자들의 고문 장면을 지켜보거나 또는 고문에 직접 가담하면서, 그들의 신앙에 대해 존경심을 품게 되었다. 이러한 종류의 불편함과 경이로움이 종종 새로운 개종자들을 위한 길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순교는 로마제국의 사람들에게 큰 충격과 감동을 가져다 주었다. 로마가 제국을 유지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은 ‘폭력’이었다. 국가 권력의 폭력은 대중들을 통치할 때에, 그들을 굴복시키는 강력한 무기로 사용된다. 로마제국은 그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 미천한 사람들로 취급받던 그리스도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황제가 실수를 하거나 인기가 없을 때에도, 그것을 만회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리스도인들을 희생 제물로 삼았다. 이러한 로마제국의 폭력 앞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를 당하였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순교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폭력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기독교 신앙을 버릴 수밖에 없는 배교자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이 끝까지 그리스도 신앙을 고백하며, 그 고통의 자리에서 희생과 죽음을 받아들였다.
“초대교회 순교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순교의 자리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 그 생명은 주변의 어둠을 몰아내고 또다른 빛과 질서를 낳는다. 비난과 조롱을 하던 사람들이 질문을 하게 된다. 죽음의 공포와 고통도 이겨내는 저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순교자들의 신앙고백은 모두가 하나의 목소리였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불리는 사실을 아무도,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다”라고 고백했다.
순교란 무엇일까? 하나님은 순교를 원하실까? 나는 명백히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순교의 자리에 서야 한다면, 나는 곧바로 ‘배교자’의 길을 선택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뛰어난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나는 너무나 약하고 또 연약한 사람일 뿐이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어떻게 그 끔찍한 순교의 삶을 받아들였을까? 그 맥락은 도대체 무엇일까?
초대교회의 하나님나라 운동에서 발견되는 가장 큰 특징은 ‘자기의 소유를 함께 나누는 것’이었다.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두가 한결같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신분과 계급이 철저하게 지배하던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 공동체’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모두가 자신의 소유를 내어 놓고, 누구도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행동하지 않았다. 초대교회 사람들이 그리스도 신앙을 통해서 함께 지키고자 했던 그 ‘가치’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들은 단순히 종교적인 신앙고백의 차원에서 머물지 않았다. 예수님이 삶으로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신 그 복음을 삶으로 살아냈다. 그 삶의 가치가 함께 ‘나누는 것’이었으며, 이것이 신앙의 핵심이었다. 서로 나누는 ‘신앙의 힘’이 곧 ‘순교의 삶’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오늘날 기독교가 잃어버린 신앙의 가치가 바로 ‘나누는 것’이다. 이것은 흔히 종교단체와 교회들이 연말이나 성탄절에 하는 ‘구제’ 행위와 차원을 달리한다. 가진 자가 베푸는 구제 행위는 ‘나눔’이 아니라 그냥 ‘시혜’일 뿐이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단순히 베푸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소유를 모두 나누는 것’이었다.’ 그들이 로마 사람들에게 보여준 복음의 핵심은 구제나 시혜가 아니라 나누는 것의 ‘가치’였다. 오늘날 교회들이 사용하는 ‘구제 헌금’의 용어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대교회의 힘은 약자와 병자들을 섬기는 긍휼과 희생이었다”
초대교회는 물질만을 나누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입으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도 동일하게 실천하였다. A.D 251년 로마제국 사회에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디오니시오스는 이런 목회 서신을 남겼다.
“이교도들은 환자들을 내버렸고, 가족들에게서도 피신하였다. 아직 죽지도 않은 환자들을 도로에 버렸고, 매장하지 않은 시신들을 오물처럼 취급했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끔찍한 질병의 확산과 감염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 형제들은 무한한 사랑과 충성심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들을 돌봤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들의 필요를 살피면서 섬겼다. 그러고는 그들과 함께 이생을 조용히 행복하게 하직했다. 이웃의 질병을 자신이 짊어지고, 그들의 아픔을 기쁘게 받아주다가 이들도 환자들로부터 병이 전염되었던 것이다. 우리 형제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자들이 이러한 식으로 자신의 목숨을 잃었다. 수많은 장로들과 집사들, 그리고 평신도들이 위대한 경건과 강인한 신앙의 결과로써 이러한 모습으로 죽었을 때, 이것은 모든 면에서 ‘순교’의 죽음에 필적한다는 칭송을 얻었다.”
흑사병에 걸렸다가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그리스도인들의 섬김과 희생으로 살아났다는 증언을 하였다. 주변의 이교도들은 그리스도인의 순교 이상으로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초대교회의 헌금은 거의 대부분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되었다. 죽은 자들 가운데 그냥 버려지는 사람들의 장례를 교회가 치루어 주었다. 교회는 건축이나 다른 목적으로 헌금을 거두지 않았다. 오직 나눔과 이웃 사랑을 위해서만 헌금을 사용하였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여성들에 대해서도 특별한 메시지를 내놓았다. 여성들이 특별히 기독교에 끌렸던 이유는 교회가 여성들에게 당대 사회보다 훨씬 더 탁월한 삶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는 철저히 평등한 공동체를 추구하였다. 로마제국 사회에서 여자 영아의 유기와 살해가 매우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이때 교회는 엄격하게 영아 유기와 살해를 금지하였다. 그리고 출산으로부터 여성과 생명을 구하고 돌보았다.
초대교회는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나라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들의 신앙은 하나님의 창조 신앙을 실천하는 하나님나라 운동 그 자체였다. 어둠과 혼돈에서 빛과 질서를 새롭게 창조하였다. 예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그대로’ 따라 살았다. 폭력과 박해 속에서도 그리스도 신앙의 순결함을 지켜냈다. 세상에서 위기에 처한 이웃들을 섬기고 돌보았다. 특별히 가난한 자와 여성들을 우선적으로 도왔고, 온갖 질병과 전쟁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자들을 끝까지 섬기고 돌보았다.
배덕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예일신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드루대학교에서 미국교회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며, 백향나무교회 담임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교회사의 숲>, <복음주의 리포트>, <세계화 시대의 그리스도교>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침묵>, <급진적 기독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