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형을 선고받던 순간, 죽어서 나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옥문을 여신 하나님이 결국 저를 살리셨습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 긴급조치 위반으로 15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던 김경락 목사(89세). 감리교 도시산업선교회 파송 목사로서 한국 민주화운동과 노동자 인권운동에 앞장섰던 그는, 옆에서 기도와 눈물로 동행했던 아내 김순랑 사모와 함께 지난날을 회고했다. 두 사람의 증언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오늘날 한국 교회와 사회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도시산업선교와 민주화운동
1970년대는 산업화의 그늘이 가장 짙게 드리워진 시기였다. 서울 영등포 공단에는 수많은 청년 노동자들이 혹독한 근로환경 속에 내몰려 있었다. 교회는 이들을 돕기 위해 산업선교회를 세웠고, 김경락 목사는 감리교 본부 파송을 받아 사역을 시작했다. 그는 장로교 조지성 목사(영락교회 파송), 인명진 목사 등과 함께 노동자 권익을 위한 연합운동에 나섰다.
1971년, 긴급조치가 발동되자 이들은 기독교회관에서 철폐 성명서를 발표했다. “국민을 우롱하는 법은 즉각 철폐돼야 한다”는 목소리는 곧 체포와 구속으로 이어졌다. 김 목사는 징역 15년형을, 인명진 목사는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재판장에서 15년을 듣는 순간, 이제는 죽어서 나가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계 교회와 국제 인권단체들의 압박으로 그는 1년 6개월 만에 석방됐다.
목요기도회의 불씨
남편들이 감옥에 갇히자 아내들은 기도회로 맞섰다. 처음에는 작은 방이라도 빌려 모이려 했지만, 김관석 목사의 허락으로 기독교회관 대강당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 모임이 곧 ‘목요기도회’로 발전했다.
“우리는 몇 명만 모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수백 명이 몰려 강당을 가득 채웠습니다. 해외 언론까지 와서 취재했고, 경찰들도 늘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김순랑 사모)
목요기도회는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함석헌 선생이 강사로 나섰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신앙과 저항이 결합된 자리였다.
감옥의 밥상과 신앙의 씨앗
수감 생활도 고통스러지만 과거 결핵을 앓은 적이 있어, 교도소에서 제공되는 “시커먼 보리밥과 오이지”만으로는 버티기 힘들었다.
“결핵 후유증이 있어 교도소 음식만으로는 버틸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사식을 넣을 수 있어 그나마 건강을 지탱할수 있어 큰 다행이었습니다.” (김순랑 사모)
아내는 매번 면회를 다니며 남편을 위로했다. 아이들에게는 감옥의 현실을 숨기고 “아버지가 유학 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옥중에서 보낸 아버지의 편지는 자녀들의 신앙과 가치관을 형성하는 씨앗이 되었다. 훗날 장남 김광수는 미국 연방 판사로 임용됐고 차남과 며느리 역시 법조계와 변호사로 각각 활동하고있다.
“남편의 옥고는 가정에는 눈물이었지만, 동시에 자녀들에게 신앙과 정의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김순랑 사모)
도산 안창호와 흥사단
김 목사는 민주화운동뿐 아니라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상과 정신을 계승한 흥사단 운동에도 평생을 바쳤다. 대학 시절 자발적으로 입단해 훗날 뉴욕지부장, LA지부 강사로 활동했다.
“도산 선생은 세계적 리더였습니다. 목선을 타고 세 번이나 미국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한 분입니다. 그 나라 사랑과 헌신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김경락 목사)
미국에서도 그는 흥사단을 통해 이민 사회에 민주주의와 정의의 가치를 심으려 애썼다.
미국에서의 새로운 목회
1980년대 초 그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렉싱턴 신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다. 이후 뉴욕 남산감리교회, 자메이카 다민족교회 등에서 목회했고, 은퇴 후에도 교계와 흥사단 활동을 계속 이어갔다.
“고난은 많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은혜였고 자녀와 사역을 통해 돌려받았습니다.” (김순랑 사모)
김 목사는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일부 보수 교회 지도자들의 행태를 비판하며, 교회가 본래의 길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교회가 세상의 걱정거리가 되었습니다. 전광훈 목사와 손현보 목사가 반민주적 정치 행동을 앞장서고, 김장환 목사와 이영훈 목사까지 압수수색을 받는 현실을 보십시오. 교회가 권력과 결탁해 세속적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은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김경락 목사)
그는 목소리를 낮추었지만 단호하게 덧붙였다.
“교회가 건강해야 성도가 건강합니다. 우리 세대가 피와 눈물로 씨앗을 뿌렸다면 지금 교회는 어떤 열매를 맺을지 진지하게 물어야 합니다. 권력과 물질이 아니라 진리와 정의 위에 교회가 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