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수로보니게 여인의 대화 다시 읽기

Matthias Gerung (1500–1570)
Matthias Gerung (1500–1570)

익숙한 본문에서 낯설음을 발견하는 일은 흥미롭다. 예수의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 단순히 2천 년 전 로마 지배 하의 고대 이스라엘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사회를 재구성하며 비유에 더 구체적으로 공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예수의 비유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올 것이다.

이제 예수와 수로보니게 여인의 대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마태복음 15:27)

이 구절은 예수와 두로 및 시돈 지역, 곧 수로보니게에 사는 가나안 여인의 대화이다. 이 이야기는 구약에 나오는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와 닮았으면서도, 예상치 못한 반전과 깊은 울림을 전한다.

 

시대적 편견을 넘어서기

엘리야 시대와 예수 시대에 두로와 시돈은 국제적인 무역 도시였다. 반면 갈릴리와 길르앗은 상대적으로 시골 지역이었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의 눈에는 길르앗 출신 엘리야나 갈릴리 출신 예수가 변변치 않은 시골 사람처럼 보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점에서 자긍심과 우월감은 이방인 여인들이 더 크게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Higgs, Peter (2001), "Roundel from a mosaic floor decorated with a dog and a gilded askos", in Cleopatra of Egypt: From History to Myth, edited by Susan Walker and Peter Higgs,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Higgs, Peter (2001), "Roundel from a mosaic floor decorated with a dog and a gilded askos", in Cleopatra of Egypt: From History to Myth, edited by Susan Walker and Peter Higgs,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개’에 대한 다른 시선

이 대화에는 유대인이 가진 선민 의식과, 유대인이 ‘개’로 취급하던 이방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깔려 있다. 이러한 차별의 인식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가려져 있다. 그러나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가 말한 ‘개’라는 표현을 단순한 인종적 차별 언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는 장면을 유대인과 이방인의 대결 구도에서, 애완견을 키우는 부잣집으로 옮긴다. 그 집에는 주인, 주인의 자녀, 주인의 개가 있다. 자녀와 개 모두 주인에게서 먹을 것을 공급받는다. 주인의 존재감이 강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여기서 다시 시선을 돌리면, 유대인의 눈에 하나님의 자녀로 보이는 유대인과, 개처럼 보이는 이방인이 함께 자리하는 현실이 보인다.

고대 로마의 문헌과 비문들은, 고대 로마 사회에서 반려견이 단순한 애완동물을 넘어 감정적 동반자이자 충성스런 가족 구성원으로 자리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오늘날의 반려동물 문화를 떠올리게 한다.

따라서 예수와 이 여인의 대화에 등장하는 ‘개’라는 표현 때문에, 예수가 여인을 비하했다거나, 여인이 스스로를 개와 같은 존재로 낮췄다고 오해할 이유는 없다.

 

믿음의 재발견

이 대화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마가복음 7장 27-28절을 살펴볼 수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여기서 우리말 성경의 ‘개'는 헬라어 성경에 '작은 개’(κυνάριον)라는 표현을 담고 있다. 단순한 들개나 경멸의 대상이 아니라 집에서 기르는 개를 의미한다. 당시 반려견의 밥과 자녀의 식사는 다르겠지만, 반려견은 아이들이 남긴 부스러기를 먹을 수 있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말은 자신을 유대인으로 여겨 달라는 것이 아니며, 유대인이 받을 몫을 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자신을 주인의 가족과 함께하는 ‘작은 개’에 비유하며, 그에 합당한 몫인 부스러기를 구한다. 여인의 시선은 하나님을 향해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고, 그 옆에 하나님이 아끼시는 ‘작은 개’들이 있는 풍경을 그리고 있다.

여인은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을 주인의 보호 아래 있는 존재로 낮추면서도, 동시에 주인에게 속한 자임을 드러낸다.

 

Pieter Lastman (1583–1633)
Pieter Lastman (1583–1633)

새로운 의미

어떤 점에서 여인의 믿음은 놀랍다. 예수와 이 여인의 대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그것은 단순히 이방인에 대한 멸시와 차별을 넘어서고 있다. 유대인과 개 같은 이방인이라는 차별의 언어를, 자녀와 애완견이라는 구별의 언어로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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