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로잔대회 ‘서울선언’ 발표 이후 비판 확산…김형국 목사 “복음주의, 더 이상 복음의 언어 아냐”
지난 4차 로잔대회에서 채택된 ‘서울선언’이 발표 직후 국내외 복음주의 진영에서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한국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선언문의 내용과 작성 방식 모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국제 로잔본부를 향해 전면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비판의 핵심은 서울선언이 로잔운동이 수십 년간 지향해 온 ‘총체적 선교’의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로잔운동은 복음을 개인의 회심에만 국한하지 않고,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간의 화해를 추구하는 선교의 전인적 의미를 강조해왔다. 하지만 서울선언은 이러한 방향에서 크게 후퇴하며, 선교의 개념을 지역 교회 중심의 제자훈련 수준으로 축소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복음주의운동연구소 이강일 소장은 CBS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선언은 전통적인 복음주의의 틀로 회귀해 하나님의 선교라는 총체성이 개인의 총체성으로만 국한되는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며 “선교단체와 교회의 파트너십이 무너지고 전 세계 복음주의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선언문 발표 방식 역시 논란이다. 현장에서 충분한 의견 수렴이나 공청회 없이 대회 첫날 일방적으로 공개됐고 초안에 참여했던 관계자들도 최종본이 초안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며 투명성을 요구하고 나섰다.
국제 로잔본부는 이후 의견 수렴 창구를 마련하고 수정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실질적인 개정 작업은 지금까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이에 한국의 신학자와 선교 지도자들은 서명운동과 함께 공식 서한을 다시 국제 본부에 전달하겠다는 입장이다.
성서번역선교회 이사장 이문식 목사는 “역사적으로 선교운동이 중앙 집권적으로 흐르면 기구는 커지지만 역동성은 사라진다”며 “돈 많은 교회의 영향력에 사로잡힌 지금의 구조는 방향성을 잃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서울선언 개정 요청에는 ‘케이프타운 서약’의 대표 집필자 크리스토퍼 라이트를 비롯해, 전 세계 430여 명의 신학자 및 선교 지도자들이 서명했다. 특히 로잔운동 내부에서조차 “이번 선언은 기존 로잔 선언문보다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으며 오히려 퇴행했다”는 성찰이 나오고 있다.
하나복DNA네트워크 대표 김형국 목사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한국 복음주의와 서울선언에 대한 깊은 실망과 회의감을 토로했다.
“복음주의란 단어를 버려야 하나 고민 중이다. 신앙 초기 서구 복음주의자들의 글을 통해 근본주의의 답답함을 넘어서고, 자유주의의 텍스트 무시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복음주의는 더 이상 복음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특히 “서울선언은 마닐라, 케이프타운 선언보다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오히려 후퇴했다”며 “대회 이후 이어진 10.27 기도회와 한국 보수교회의 우경화는 복음주의의 퇴색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 복음주의는 복음을 믿는 사람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중립적 단어가 아니라, 왜곡된 정체성의 이름이 되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목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이 아직 있을 것”이라며, 보이지 않는 이들과의 영적 연대 속에서 복음의 본질을 붙드는 소망을 밝혔다.
한편, 서울선언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한국로잔위원회는 “선언문 개정은 국제본부의 소관”이라며 사실상 책임을 회피하고 있어,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여전히 요원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