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간 한 길을 걸어온 강원호 목사의 장애인 선교 신학
2025년, 미국의 개신교 수도원 공동체에서 수여하는 ‘경건한 목회자상’을 강원호 목사가 수상했다. 장애인과 평생을 함께한 그의 사역이 사회봉사를 넘어, 신학적 기반 위에 세워진 복음적 실천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강 목사는 1980년, 대학 1학년 시절 장애인 봉사 동아리 활동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45년 동안 한국밀알선교단과 미주밀알선교단에서 장애인 선교를 이어 감당해왔다. 그는 “경건함이란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환난 중에 돌아보는 것”이라는 야고보서의 말씀을 인용하며 “장애인은 그보다도 더 약자일 수 있다”고 말한다. 건강조차 잃은 이들, 혹은 지능적 어려움으로 일상적 도움조차 스스로 구할 수 없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이 일에 풀타임으로 뛰어들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냥 교회 목회하면서 도우면 된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누군가는 이 선교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특별히 장애인 선교는 그만큼 사람이 부족한 영역이었고, 더 좋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가 먼저 나섰습니다.”
강 목사는 총신대 시절 장애인 봉사 동아리에서 지금의 아내인 강미경 사모를 만났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난 그 자리에서부터 지금까지 한 길을 함께 걷고 있다. 그는 “사역의 길이 쉽지 않았지만, 아내의 헌신이 늘 큰 힘이 되어주었다”며 “외롭고 지치는 순간에도 함께 기도하고 동역해준 아내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애인 선교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던 그는 한때 ‘이 일이 과연 생산적인가?’라는 회의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의 생산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길을 찾았다. 세상은 돈과 권력을 생산의 지표로 삼지만 복음은 예수의 사랑이 삶 가운데 생산되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사람들은 장애인 선교가 비생산적이라 말합니다. 평생 자립이 어려운 이들에게 시간을 쓰는 것이 낭비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예수의 사랑이고, 그 사랑을 생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생산입니다. 이 사역은 명예도, 수익도 없지만, 사랑을 만들어내는 가장 본질적이고 신학적인 선교입니다.”
그는 이러한 인식을 통해 단순한 복지나 동정심에서 장애인 선교를 분리시킨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선택이며, 실천이고 신학적 명령이자 복음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강 목사는 총신대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이후 미국 플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신학자 김세윤 교수의 가르침을 통해 복음에 대한 기존 인식이 새롭게 재편되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복음을 ‘죄 사함 받고 천국 가는 것’으로만 배워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지 구세주(Savior)일 뿐만 아니라 주님(Lord)이시고, 우리가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야 한다는 선포가 있어야 합니다. 복음은 내세만이 아니라 현재적이고 총체적인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을 의미합니다.”
장애인 선교는 바로 그 총체적 복음을 구현하는 사역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복음은 단순히 개인의 죄 사함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회복과 공동체 안에서의 존엄성 회복 더 나아가 세상의 벽을 허무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강 목사는 “장애인도 예수를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단호히 말한다. 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해야 하며 그들의 영적 구원 또한 반드시 필요한 사역이라는 점에서 다른 선교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장애인의 삶의 현실, 즉 경제적 고난, 사회적 편견, 일상의 차별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모든 문제들이 복음 안에서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장애인 선교는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이 맞닿아 있는 선교의 장”이라고 말한다.
“장애인 선교는 신학적으로도 중요합니다. 단순한 구제나 복지가 아니라, 교회가 진정으로 복음을 실천하는 장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과정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고요.”
2024년, 그는 폐암 수술을 받으며 인생의 큰 고비를 겪었다. 아픈 몸으로 ‘받는 자’의 자리에 섰을 때 그는 장애인의 내면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항상 주는 입장에 있었기에 몰랐습니다. 그런데 수술 이후 받는 자가 되니 감사함과 함께 자존심이 상하는 복잡한 마음이 들더군요. 이 경험이 저를 더 겸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주는 방식’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진짜 사랑은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는 방식으로 주는 것이더라고요.”
그의 이러한 고백은 장애인을 ‘불쌍한 존재’로만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이들과 온전히 동행하며 하나님 나라를 함께 세워나가는 공동체 구성원으로 이해하려는 깊은 신학적 통찰로 이어진다.
강 목사는 장애인 선교가 단지 장애인을 위한 사역이 아니라, 교회를 회복시키고 사회적 벽을 허무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종, 계층, 언어, 종교를 넘어, 가장 약한 자들이 중심이 되는 공동체는 그 자체로 하나님 나라의 예표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