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는 듯한 연설

지금부터 37년전 1968년 4월 4일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테네시 주 멤피스에 있는 로레인 텔 2층 발코니에서 불의의 흉탄에 맞아 사망했다.  그의 비보는 전세계에 타전되었고 인류의 양심은 그의 죽음을 한 마음으로 애도했다. 그는 비폭력 저항운동인 흑인 민권운동의 선봉장 이었으며 20세기 미국과 세계의 정의와 평화실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 중의 한 사람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특히 미국의 유색인종들과 이민자들에게는 민권법, 투표권법, 이민개혁법의 권익을 누릴 수 있도록 지대한 기여를 했다.

킹목사는 사망하기 하루 전 4월 3일 테네시주 멤피스에 있는 메이슨 템플에서 그의 생애 마지막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은 멤피스시의 청소노동자  파업을 지지하기 위한 것 이었다. 그는 이 연설은 끝 부분에서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언이라도 하듯 출애급기에서 모세가 죽음 전에 느보산 정상에서 약속의 가나안 땅을 보았던 장면을 연상시키는 “나는 산 정상에 갔었습니다”라는 발언을 격정적으로 토해냈다. 

● 가난한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며

킹 목사는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의 정당성을 설파하며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제는 불의입니다. 문제는 멤피스가 청소노동자인 공무원을 대하는 데 있어 공정하고 정직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울러 그는 시위자들에게 폭력에 관여하지 말 것을 설득했다. 폭력이 발생하면  폭력만 이슈화 되고 정작 문제의 본질인 차별과 불의가 무시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킹은 평화적인 시위가 최선의 행동 방침이며, 그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고 답변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설파했다.  아울러 그의 동지이자 동역자인 제시 잭슨 목사의 말을 인용하여 “지금까지는 청소노동자들만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고통을 나누어야 합니다.”라고 연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 “미국이여 헌법에 쓰여진 것을 실행하라!”

민권 운동과 관련하여 킹목사는 미국이 미국 헌법과 독립 선언서에 약속된 대로 모든 시민의 기본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으며 이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결코 저항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했다.

“(미국 헌법의) 어딘가에서 집회의 자유에 대해 읽었습니다. 어딘가에서 언론의 자유에 대해 읽었습니다. 어딘가에서 언론의 자유에 대해 읽었습니다. 어딘가에서 미국의 위대함은 정당한 권리를 위해 저항할 권리라고 읽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듯이, 우리는 경찰견이나 물대포가 우리를 포기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불의한 가처분 명령도 우리를 포기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전진해 나갈 것입니다.”

●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연대성을 강조하다

킹목사는 청소노동자들과의 연대를 강조하면서 성서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인용했다. 이 성서의 이야기는 민권운동 과정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구절이었다. 인종간의 차이와 갈등을 넘어서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레위인이 한 첫 번째 질문은 "내가 이 사람을 도우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였습니다. 하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은 그 질문을 뒤집었습니다. "내가 이 사람을 돕지 않으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것이 오늘 밤 여러분 앞에 있는 질문입니다. "내가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을 도우면, 목사로서, 변호사로서, 전문직으로서 나에게 어떤 손해가 일어날까?"가 아닙니다.질문은 "내가 청소노동자를 돕지 않으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입니다. 그것이 올바른 질문입니다.

● 죽음과 시대의 어둠을 넘어 ‘약속의 땅’을 보다

연설이 끝나갈 무렵, 킹은 과거 자신이 당했던 생명의 위협을 언급했다. 1958년 할렘에서 ‘자유를 향한 행진’ 책 싸인회를 하는 도중 한 여인이 편지봉투를 자르는 칼로 킹목사의 가슴을 찌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칼 끝이 킹 목사의 대동맥  바로 앞에서 멈추었고 만일 기침만 했어도 그가 사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킹 목사는 임박한 죽음을 예언적으로 예고하는 말을 했지만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청중들을 향해 사자후를 토해냈다. 

“앞으로 힘든 날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산 정상에 갔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약속의 땅을 보았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거기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오늘 밤 여러분께 알려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는 언젠가 약속의 땅에 도착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내 눈은 주님의 재림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 돌아가신 킹 목사가 살아있는 우리에게 주는 구원의 메시지

킹 목사는 단순히 인종 차별만을 극복하기 위해 싸운 사람이 아니다. 그는 미국의 제국주의 전쟁을 반대한 평화 운동가였고 가난과 계급의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 싸운 빈민 및 노동 운동가였다. 킹 목사는 미국의 3대악을 ‘차별, 전쟁, 가난’이라고 갈파했고 이 세가지 모순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사망하기 정확히 1년전인 1967년 4월4일 뉴욕 맨하탄의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저 유명한 ‘베트남을 넘어서 -이제는 침묵을 깨야할 때’라는 연설로 반전 평화운동에 적극 투신할 것을 선언했다. 아울러 가난과 빈곤의 문제를 타파하기 위하여 ‘가난한 이들의 캠페인’ 운동을 시작했고 1963년 “나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로 유명한 워싱턴 대행진에 이어서1968년에 거대한 또 한번의 대행진을 워싱턴 디씨에서 개최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킹 목사가 생애 마지막 연설을 통해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는 우리가 ‘약속의 땅’에 도달하려면 미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인 “차별, 가난, 전쟁’을 타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최근 한국과 미국에서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을 보여주는 대대적이고 평화적인 시민 항쟁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12.3 군사 쿠데타 세력에 맞서 수백만의 시민들이 4개월 여의 ‘빛의 혁명’을 통해 내란 수괴 윤석열을 탄핵하고 파면을 이끌어 냈다. 그날이 우연히도 킹 목사 사망 추모 기념일인 4월 4일 이었다. 미국에서는 다음 날인 4월 5일에  트럼프 행정부의 반민주, 반헌법, 반이민 정책에 반대하며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전국적 시위가 개최되었다. 미국 50개주 1500개 지역에서 약 150만명의 시민들이 ‘손 떼라!’ (Hands Off!)라는 구호를 외치며 트럼프 행정부의 민주주의 파괴, 재벌 감세, 저소득층 지원 삭감, 과도한 관세, 패권주의적 외교정책, 이민자 탄압, 언론자유 탄압, 소수자 탄압등에 격렬히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집회들에서 “한국인들처럼 저항하자”  “한국의 민주시민들을 본받자”라는 구호들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극우 파시즘의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는 시대에 K-민주주의가 긍정적인 시대의 표징이자 민주주의의 표본이 될 것으로 희망한다.

● 킹 목사의 비전 ‘사랑의 공동체’와 ‘약속의 땅’

킹 목사가 살아계셨다면 한국과 미국의 거대한 깨어있는 시민들의 집회를 보시며 뭐라고 하셨을까? 당연히 열정적으로 지지하고 칭찬하고 연대하셨을 것이다. 킹 목사의 사회적 비전인 ‘사랑의 공동체’와 ‘약속의 땅’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된 사회라고 믿는다. 같은 의미로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코넬 웨스트 교수는 “민주주의는 공적 영역에서 사랑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라고 정의한다. 

킹 목사의 가장 탁월한 연설로 꼽히는 1963년 워싱턴 대행진에서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 중에서 킹 목사는 자신의 사회적 비전인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킹 목사에 대한 진정한 추모는 진정한 민주주의와 정의 평화의 실현을 위해 함께 참여하고 연대하는 것이라 굳게 믿는다.

“지금은 민주주의의 약속을 실현할 때입니다. 지금은 차별의 어둡고 황량한 골짜기에서 정의의 햇살 가득한 언덕으로 올라갈 때입니다. 지금은 우리 나라를 불의의 수렁에서 형제애의 견고한 바위로 들어올릴 때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을 위한 정의를 실현할 때입니다."

박동규 변호사 / <이민자보호교회 네트워크, 법률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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